잡탕식 독서가들의 충분한 보양식

[서평] 최성일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3>

등록 2006.11.21 18:23수정 2006.11.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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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3>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군대에서 처음 책 맛을 들인 나는 지금까지도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전공분야처럼 따로 정해놓은 목록은 없고 골고루 좋아한다. 내 입맛은 기본적으로 인문과 종교 쪽이지만 그렇다고 따지진 않는다. 그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유쾌하게 읽는 편이다.

'잡탕식' 독서가 내겐 좋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여러 가지 분야를 접하기 때문에 한 분야에 대한 정통성이 그만큼 흐려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깊이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주름잡고 이야기하는 것도 뒤떨어질 수 있다.


이런 잡탕식 독서를 즐겨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의 흠집을 보완해줄 책이 나왔다. 이른바 이 땅을 거쳐 간 수많은 사상가들이 쓴 책을 일목요연하게 읽어 볼 수 있도록 해 준 책이다. 최성일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6)이 그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시리즈의 셋째 권을 엮게 돼 실로 감개무량하다. 지금까지 국내외 저자 140명의 한국어판 저서를 리뷰하였다. 이로써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시리지의 첫째 마디 매듭을 얼추 지은 셈이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는 10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머리말)

그러니까 이번 책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3권에 해당한 셈이다. 벌써 1권과 2권은 나와 있고, 앞으로도 연이어서 펴낼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출판마케팅에서 찍다보니 꼭 바람 몰이처럼 책을 펴내는 것 같지만, 최성일은 정말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독서기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나온 1·2권은 버트런드 러셀이라든지 '자크 데리다 그리고 간디와 하워드 진 같이 유명한 외국 사상가들이 죄다 포진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3권에서는 김산과 리영희, 박노자와 서경식 등 한국의 사상가들도 빼 놓지 않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잡탕식 독서를 좋아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다.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과 그들이 쓴 책을 마음껏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책을 소개하고, 생각이 생각을 열어 준다고 하는데, 꼭 그런 식이다.


그 가운데서, 이 책을 통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점들을 보완해 준 부분이 몇 몇 있었다. 우선 아베 피에르 신부에 대한 나의 편견이었다. 프랑스인들은 그를 현존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한다고 하는데, 신부라는 직함과 국회의원이라는 명함이 내 마음에 못내 걸렸던 게 사실이다. 이른바 정치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가 왜 정치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게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정치적인 색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참되게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피에르 신부는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게릴라 전사로 순교한 라틴 아메리카의 카밀로 토레즈 신부나 다름 없는 자유의 투사다. 피에르 신부는 2차 대전 중 항독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아베 피에르는 레지스탕스 시절 사용한 가명 가운데 하나다. 그의 본명은 앙리 앙투안 그루에다."(71쪽)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브루스 커밍스에 대한 부분이다. 최성일은 그가 쓴 <김정일 코드>를 읽어나가면서 정말로 섬뜩한 부분을 지적해 준다. 이유인 즉 6.25를 겪은 대부분의 어른들은 미국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은덕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맥아더의 전략도 놀라 자빠질만한 일이요, 미국이 의도하는 바도 청천벽력같이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고 있는 바이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경질한 것은 핵전쟁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핵무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은 우리의 허를 찌른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맥아더의 실로 과격한 전략 계획이다. 나는 30개에서 50개 정도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여…만주의 목을 끊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압록강에 50만 국민당 군(중국의 장제스가 이끌던 군대)을 투입시킨 뒤 우리 뒤쪽에 -동해에서 서해에 걸쳐-방사능을 내뿜는 코발트 폭탄을 살포한다…코발트의 효력이 60년대에서 120년이니까, 최소한 60년 동안은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침략도 없을 것이다."(124쪽)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더 든다면, 님 웨일즈가 썼다는 <아리랑>에 관한 부분이다. 그 책은 중국의 조선 혁명가인 김산을 인터뷰하고 쓴 것이다. 어찌됐던 김산과 <아리랑>은 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그만큼 김산과 그 책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산의 최후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고 한다. 이를테면 중국공산당 핵심의 의심을 사 일제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옌안에서 살해되었다는 설과, 숙청보다는 돌연사 했다는 쪽의 팽팽한 무게가 그것이다. 어느 시대에건 주류적 시각에서는 으레 시샘 섞인 폄하를 하는 게 다반사인데, 이에 대해 최성일은 이렇게 중심을 잡고 있다.

"이에 대해 백선기는 님 웨일즈가 김산에 대해 1990년에 쓴 두 편의 글을 토대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그녀는 김산도 중요했지만, 장정의 영웅들이 보다 중요했으며, 특히 모택동과 주은래의 경우, 그녀는 김산에 대한 애정 이상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도덕적 이미지를 도저히 훼손할 수 없었던 것이다."(180쪽)

아무쪼록 나 같은 잡탕식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매우 유익한 정보가 될 것 같다. 인류사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상가들과 그들이 쓴 책을 낱낱이 소개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어려운 원문이 아닌 쉬운 우리말 번역본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이 책을 읽다보면 전혀 새로운 작가, 새로운 사상가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쓴 책 가운데에는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책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라도 그들이 쓴 책을 접한다면 그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요, 잡탕식 독서를 즐겨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충분한 보양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3

최성일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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