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새들의 동북아 허브, 천수만은 지금

서산 천수만 세계철새기행전 참관기

등록 2006.11.21 19:58수정 2006.11.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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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수만 간월호의 하늘을 가득 메운 새들의 군무

천수만 간월호의 하늘을 가득 메운 새들의 군무 ⓒ 박정민

곤충들은 알로, 애벌레로 숨어들고 나무는 홀가분한 몸으로 입선(立禪)에 든 겨울, 그러나 대자연은 생태순례객을 그냥 놀리지 않는 법이니 바야흐로 겨울철새의 계절입니다. 겨울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탐조의 적기로 꼽힙니다. 추위를 견딜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말이죠.

한국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로는 충남 서산의 천수만, 전북의 금강 하구, 그리고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를 꼽습니다. 모두 물이 많고 사람이 적은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거니와, 한 곳만 제외하면 따뜻한 남쪽이라는 부분도 같습니다. 제외되는 한 곳인 천수만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중간기착지의 성격이 강해 한겨울보다는 10~11월과 2~3월이 최성기로 꼽힙니다.


a 겨울 천수만의 진객 중 하나인 큰고니. 천연기념물 201-2호입니다. 노파심에 덧붙입니다만, 천연기념물을 해치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원 이상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겨울 천수만의 진객 중 하나인 큰고니. 천연기념물 201-2호입니다. 노파심에 덧붙입니다만, 천연기념물을 해치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원 이상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 박정민

탐조라는 취미는 아직까지는 소수의 것이지만 점차 보급되는 추세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웰빙 바람과 자녀들을 위한 교육열이 상호작용하는 까닭이겠지요. 지자체들도 이런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지라 주요 철새도래지마다 이를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입니다.

천수만의 경우 서산시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1주일 남짓 하는 ‘철새 페스티벌’을 한 달이 넘게 열 정도니까요. ‘서산 천수만 세계철새기행전’이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올해의 경우 10월 27일부터 12월 4일까지 열리며, 탐조버스 운영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니까요. 평일조차 탐조버스가 거의 만원사례일 정도니 흥행은 일단 성공이라고 봐야겠습니다. 확실히 넓은 호수에 “물 반 새 반”으로 가득한 새떼를 보는 것만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간간이 수천수만 마리의 기러기떼가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탄성이 터질 밖예요.

a 철새기행전 행사장 입구. 왼쪽부터 장다리물떼새, 가창오리, 노랑부리저어새의 모형입니다. 하나같이 귀하기 이를 데 없는 천수만의 손님들이지요.

철새기행전 행사장 입구. 왼쪽부터 장다리물떼새, 가창오리, 노랑부리저어새의 모형입니다. 하나같이 귀하기 이를 데 없는 천수만의 손님들이지요. ⓒ 박정민


a 천수만 생태관 내부. 새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 충실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천수만 생태관 내부. 새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 충실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 박정민

행사 자체에 대해서는 좋은 방향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곳의 환경 자체가 간척사업 결과 새로 형성된 것인데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농민들이 새가 먹을 낙곡을 남겨두는 등 보전 노력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사람들이 제한적인 접근을 하는 정도는 적절한 타협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기자의 바람은 오히려 탐조의 내용이 좀 더 알찼으면 하는 쪽입니다. 지금은 일괄적으로 버스를 이용해 1시간 반 동안 A지구(간월호)를 돌아보는 식입니다. 세 곳에 철새조망대가 있지만 대개 한 곳만, 그것도 10분가량만 내려서 탐조를 합니다.(쌍안경과 망원경은 제공됩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구경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참가자에 따라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할 수 있겠으나, 아무래도 수박 겉핥기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행사기간 동안 개별 탐조가 금지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초급자 코스와 중급자 코스를 따로 마련해 운영한다든가 하는 것도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보다 진지한 탐조를 원하는 이는 행사기간이 아닌 때 방문하든가 행사대상지가 아닌 B지구(부남호)를 찾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불법어로행위입니다. 두 지구 모두 일체의 어로행위를 금지한다는 경고 팻말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도 호수 주변은 어딜 가나 그물 투성이입니다. 물고기만 잡히는 것이 아니라 잠수를 해서 먹이를 구하는 새들마저 그물에 걸려 비명횡사한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내자의 말로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군요.


a 불법어로행위 금지 경고문

불법어로행위 금지 경고문 ⓒ 박정민


a 불법어로행위를 위한 그물더미. 오른쪽 윗편으로 예의 경고문이 계면쩍게 서있습니다.

불법어로행위를 위한 그물더미. 오른쪽 윗편으로 예의 경고문이 계면쩍게 서있습니다. ⓒ 박정민

무료도 아니고 1인당 5000원씩을 받아 탐조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새들에게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라고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옆에 넓은 바다도 있는데 굳이 불법어로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습니다. 농약을 이용한 밀렵과 함께, 행사 주최측이 솔선해서 좀 더 강력히 단속을 할 수는 없을지요.

인간과 자연의 평화공존,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현실적인 방안은 적절한 타협과 합리적인 대안 마련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인식전환이 급선무입니다. 지자체들은 보존된 자연환경이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일반인들은 꾸미지 않은 자연환경 자체가 좋은 관광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말이지요.

동강의 사례에서 보듯 한동안은 삐걱거리고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꾸준히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이 있지 않을까요.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인 듯한 천수만과 유명 철새도래지들의 페스티벌 사업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a 해질 무렵의 천수만 간월호

해질 무렵의 천수만 간월호 ⓒ 박정민



천수만 기행메모

- 천수만 철새기행전 공식 홈페이지를 찾으면 행사와 관련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서울에서 천수만을 찾으려면 강남터미널이나 남부터미널에서 서산행 버스를 탄 후, 서산터미널에서 간월도행 시내버스로 갈아타면 됩니다. 종점인 간월도 바로 옆에 행사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근처에 숙박과 식사를 위한 시설은 충분합니다.

- 주변의 각종 유적지를 돌아봐도 좋을 듯합니다. 행사장 지척에 간월암이 있으며, 서산시 일대에는 개심사, 서산마애삼존불, 해미읍성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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