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브레히트씨, 한국에서 환생하다

브레히트 대표작 <서푼짜리 오페라>를 보고

등록 2006.11.22 09:09수정 2006.11.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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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서양 연극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 브레히트(Bertolt Brecht). 그의 서거 50주년을 맞이한 올해, 우리 연극계에도 '브레히트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 연출가 이윤택과 김광보의 연출로 각각 무대에 오른 것을 비롯해 <그래도 지구는 돈다>(원작명은 <갈릴레오의 생애>)도 이미 우리 무대 위에 섰습니다.

지난 15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서푼짜리 오페라> 역시 '브레히트'하면 먼저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무명의 연출가 브레히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지요.


베를린 앙상블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홀거 테쉬케(Holger Teschke)가 연출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된 이번 공연은 원작과 '같은 듯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a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서푼짜리 오페라> 포스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서푼짜리 오페라> 포스터 ⓒ 예술의 전당

'소외 효과'는 어디 있나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몸으로 겪은 청년 브레히트는 '이 시대, 연극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고민 끝에 그는 '극을 통하여 관객들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지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유명한 브레히트의 '서사극'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다양한 서사극 작품을 통해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관객과 소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였습니다. <서푼짜리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자본의 논리가 만들어내는 모순을 풍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비판하고 풍자하려는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관객들이 모두 그 인물에 빠져버리면 어떡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저지른 악행조차 모두 이해해버리면요?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브레히트가 활용한 것이 바로 '소외 효과'라 부르는 기법입니다. '소외 효과'란 쉽게 말해 관객들이 무대 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인물들을 '낯설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은 등장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브레히트가 기대한 것처럼 무대 위 인물들을 비판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난 19일 '예술의 전당'을 찾았을 때 아쉬웠습니다. 현재 공연 중인 <서푼짜리 오페라>에서는 그러한 소외효과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벌이는 '놀이판'은 그저 즐거울 뿐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하나됨'을 느끼게 되고요.


심지어 극 후반부에서는 한 배우가 '소외효과는 어디 있나요?'라는 푯말을 들고 나와 원작과는 다른 이번 작품의 특성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렇기에 브레히트가 표현하려 했던 사회비판 메시지를 이번 공연에서는 크게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하고 있지요.

이게 연극이야, 뮤지컬이야, 오페라야?

<서푼짜리 오페라> 공연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악입니다. 1928년 독일에서 초연될 당시 공연에 사용된 노래들이 곧바로 유행가가 됐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쿠르트 바일의 음악을 동반한 '진짜' <서푼짜리 오페라>는 그간 우리 무대에서 활발히 공연되지 못했습니다. 작품 내 음악의 비중이 매우 크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해내는 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술의 전당' 측이 이번에 큰맘 먹고 '모셔온' 사내가 바로 연출가 홀거 테쉬케입니다. 그는 브레히트가 설립한 독일 최고의 극단 '베를린 앙상블' 출신의 '순혈' 연출가입니다. 테쉬케는 음악감독 역할과 더불어 편곡, 가사 번악 작업까지 모두 책임진 한정림씨와 호흡을 맞춰 브레히트와 바일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한국 무대 위에서 살려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칼잡이 매키의 살인노래', '안락한 삶에 관한 담시' 등 번안곡은 배우들의 빼어난 가창실력 덕에 무대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연극인지,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 혼돈될 만큼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서푼짜리 오페라>. 배우들의 노래에 주목하여 극을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a <서푼짜리 오페라> 초연 당시 모습

<서푼짜리 오페라> 초연 당시 모습 ⓒ 예술의 전당 제공

자, 브레히트에 빠져봅시다!

이 밖에도 '예술의 전당'판 <서푼짜리 오페라>는 관객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참신한 안무와 사실적인 무대 디자인, 19세기 영국이라는 배경에 걸맞은 의상과 16명 연기자들의 환상적 호흡까지.

깊어가는 가을날,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브레히트의 작품을 가볍게 즐겨볼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덧붙이는 글 | <대학생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공연일자 : 2006년 11월 15일(수) ~ 12월 3일(일)
공연시간 : 화~금 오후 7:30 / 토 오후 3:00, 7:30 / 일 오후 3:00 / 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장소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덧붙이는 글 <대학생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공연일자 : 2006년 11월 15일(수) ~ 12월 3일(일)
공연시간 : 화~금 오후 7:30 / 토 오후 3:00, 7:30 / 일 오후 3:00 / 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장소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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