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식도 그렇게 잘 하겠느냐"

한림대 성심병원 '느린소' 사회봉사단과 독거노인

등록 2006.11.22 10:53수정 2006.11.22 10:53
0
원고료로 응원
"뭘 각꽈 (‘무엇을 가지고 와’의 충청도 사투리)."
"오면 주려고 밤 삶는 중이야."

지난 10월 중순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원장 장복림) '느린소' 사회봉사단 일행이 가져온 배 박스를 보며 할머니(73세)는 고향집 어머니처럼 살갑다.

청색봉사자 조끼를 입은 김종철(고객지원쎈터) 서포터와 한지혜(물리치료실) 김은영(경리과)팀원을 따라 간 곳은 안양시 비산3동에 위치한 'ㄴ'자로 4세대가 모여 사는 단독주택 반 지하 방이다.

일행을 따라 벌집 같은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정도의 비좁은 부엌문을 통해 들어간 방안은 두 평 남짓했다. 잘 정돈된 방안은 가구를 빼면 겨우 두 사람이 누울 정도였다.

"어! 전화기 바꿨네."
"119하고 긴급 전화만 되는 거야."

소방본부에서 택배로 배달되어 왔지만 사용법조차 모른다는 할머니는 문맹이었다. 김종철 서포터가 도움을 주려고 꼼꼼히 살펴보지만 통화제한이다. 지하라서 그런가하고 단말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보고 잠금 장치도 풀어 보았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팀원들은 "소방서에 가지고 가서 사용법을 익혀오는 수밖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어서들 먹어. 지금 막 삶아서 식으라고 물에 담갔다가 꺼냈어" 할머니는 단말기만 만지는 팀원들에게 한 톨의 밤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일일이 접시에 까놓으며 채근이다.


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야! 맛있다. 이게 진짜 토종밤이야. 달다. 달아. 엄청 맛있어요"라며 탄성을 지른다. 할머니는 "뒷산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라며 밤 줍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서포터는 "저 번에 왔던 동료들과 함께 오려고 했는데 회의 중이거나, 휴가. 그리고 문짝 고쳐준 친구는 교통사고가 나서…"라며 함께 오지 못한 이유를 일일이 설명했다.


"문은 잘 열리지요"란 물음에 할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한 팀원의 안부를 걱정하면서도 고장 난 손잡이를 고쳐줘서 여간 편리한 게 아니라며 만족해한다. 허름한 방문에 고급스런 손잡이지만 사용하는데 불편은 없어 보였다.

"무겁거나 돈 내고 버려야 할 것 있으면 주세요."
더 춥기 전에 뭐 더 손 볼 곳은 없는지 팀원들은 여기저기를 두루 살핀다.
"잘 돌봐 줘서 다른 것은 없고, 습기라도 차면 위험하니 전기선이나 좀 빼 줘."

이렇듯 시간과 기술이 요구될 때는 병원의 전기담당 직원의 도움을 받는다고. 병원에서 지원해 주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긴급할 때 구급차는 물론, 사회사업과를 통해 의료비까지 지원 받도록 여러 재단과 연계하고 있다.

"저번엔 꼭 죽는 줄만 알았어. 심장이 막 뛰고… 이러다가 죽는구나 생각했었지."
"그러면 냉장고문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하시지 그랬어요."
할머니의 무거운 표정을 보며 팀원들은 안타까워한다. 너무 아프다보니 아무 생각이 안 났다는 할머니의 고통을 통감하며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한림대 246명 직원으로 구성된 사회봉사단 '느린소'

a 한림대 사회봉사단 '느린소'

한림대 사회봉사단 '느린소' ⓒ 한림대학병원

글을 모르는 할머니의 처음 병원 출입은 답답하고 막막했다. 하지만 직원들 연락처를 들고 갔을 때는 누구를 찾아도 얼마나 친절하던지 미안할 정도였다고. 말만하면 척척 도와주는 봉사자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한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에게 "친자식도 그렇게 잘 하겠느냐"라고 자랑한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도 없어. 외롭고 쓸쓸했는데 이젠 늦복이 터진 게지"라며 흡족해 한다.

한울 팀 7명의 봉사자들은 할머니의 청소를 돕고, 외식도 함께 하며 때로는 반찬도 만들어 드린다. 피만 나누지 않았을 뿐 영락없는 한 가족이다.

'느린소' 사회봉사단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봉사자를 공개모집 한 결과 봉사단장인 양대현 외과교수를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 행정직. 기술직 등 246명의 직원들이 자원했다. 지난 7월 무료진료 2팀과 동별로 33개 팀이 결성, 출범과 함께 지원금 20만원과 상비약을 독거노인에게 전달하며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너와 내가 없는 비산3동 한울타리' 한울 팀만이 아니다. 안양시 31개 동마다 '서로 돕는 사람들의 모임 서두리를 비롯해 따사모. 사랑나누미…' 등 봉사하는 손길만큼이나 정겨운 이름들이 모였다.

지난 4월,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돕기 직원바자회'에서 700만원이 모아졌다. 여기에 병원 측에서도 흔쾌히 700만원을 보태며 활성화가 되었다고. 서포터(부서장 및 수간호사)는 팀원을 구성하고, 각 동사무소와 새마을부녀회를 통해 독거노인의 건강 상태나 주거환경을 파악하여 활동계획을 세우는 것은 팀 리더의 몫이다.

'느린소' 사회봉사단의 팀원들은 빨래, 식사준비, 시설보수, 목욕, 물리치료, 청소는 물론, 말벗이 되어 팀별로 월 1회 이상 이웃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다.

"이것은 차에 가서 먹어!"
"아니에요. 할머니 두고 드세요."

만남의 즐거움도 잠시, 일어서려는 팀원들에게 남은 밤을 주섬주섬 챙겨주는 끈끈한 할머니의 정과 극구 사양하는 팀원간에 벌어진 가벼운 실랑이가 정겹다. 급변하는 세상에 우리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우직한 '느린소'의 존재가 자원봉사란 듬직한 거목으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