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어뢰', 터미네이터로 변신하나?

[해외리포트] 호주 수영영웅 이안 소프 전격 은퇴선언

등록 2006.11.22 14:31수정 2006.11.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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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게 이루었다"며 은퇴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안 소프.
"충분하게 이루었다"며 은퇴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안 소프.<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수영선수는 은퇴선언도 남다르게 했다. 불세출의 수영 영웅 이안 소프(24)의 얘기다. 11월 21일 정오 은퇴기자회견을 시작해서 12시 30분에 끝낸 것. 더욱 특이한 것은 그가 기자회견 도중에 "19일 오후 2시 53분에 은퇴를 결정했다"고 발언해서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시종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마치 수영장의 결승점을 통과 하듯이 "This is my life"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단호함도 보였다. 미련 없이 물 밖으로 나와 버린 '인간 어뢰', 그는 다음 목표물로 무엇을 조준하고 있을까?

인간어뢰 "여기까지가 나의 수영인생이다"

이안 소프가 밝힌 은퇴사유도 시간만큼이나 명료했다. "수영은 이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더 이상 기록을 경신하는 일이 무의미해졌으며, 이런 상태에서 수영을 계속하는 것은 진실하지 못한 태도"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서 "일요일 오후에 무심히 시계를 쳐다보다가 은퇴를 결심했다, 정확하게 오후 2시 53분이었다"며, 마치 연극배우가 대사를 외우듯이 은퇴결심의 순간을 극적으로 밝혔다.

호주국민들도 그의 은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85%가 그의 결정에 찬성한 것. 그가 그동안 이룩한 각종 업적에 대한 찬사가 넘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우선 해외에 체류 중인 존 하워드 총리는 "이안 소프는 위대한 선수다. 그의 조기 은퇴가 아쉽지만 그가 호주에 기여한 공로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고,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그랜 휘케트는 "그는 영원히 호주인의 가슴에 영웅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안 소프의 강력한 라이벌인 미국의 마이클 펠페스는 "그는 수영을 인기종목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선수다, 그의 장래가 행복하기를 빈다"는 찬사와 기원을 함께 보냈다.

한편 <채널9>의 '투데이'에 출연한 한 코미디언은 "이안, 자유형이 힘들면 배영으로 바꾸면 되잖아!"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어린 수영선수는 "이안이 은퇴했지만, 그는 나의 아이돌이고 내 앞날의 변함없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은퇴발표 하루 전날 약물조사단 방문 받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해 역영하고 있는 '인간어뢰' 이안 소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해 역영하고 있는 '인간어뢰' 이안 소프.호주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
기자회견의 장소는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시드니였다. 이안 소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자유형 400m, 계영 400m, 계영 800m)를 획득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2개의 금메달(자유형 200m, 자유형 400m)을 획득했다. 총 5개의 금메달, 호주에서 역대 최고의 성과다. 게다가 그가 수립한 13개의 세계신기록은 그의 성가를 한껏 높였다.

이안 소프는 아테네 올림픽 이후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 잠정적인 은퇴생활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그가 워낙 슈퍼스타이다 보니 언론의 추적보도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체중이 불어난 모습이 TV카메라에 잡혀서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 그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그의 조기은퇴까지 점쳐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는 돌연 호주로 나타나서 훈련을 재개했다. 안타깝게도 훈련성과는 지지부진 했고 괴질(열이 오르는 병)까지 도져 결국 은퇴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한편 지난 20일 오후 호주스포츠약물방지위원회(ASADA) 관계자가 그의 집을 방문해서 국민들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은퇴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미스터리 여인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의 초점이 약물에서 그 여인으로 옮겨갔다.

'미스터리 여인'의 정체는 스포츠 심리학자

이안 소프가 기자회견장에서 그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대부분의 호주언론은 하루 동안 '미스터리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그가 약물관련설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고도의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의 유일한 전국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이 이안 소프가 "경이로운, 정말 경이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맥콰리대학교의 스포츠&레크리에이션 담당 CEO 데이드레 앤더슨이라고 보도한 것.

오랫동안 스포츠 심리학자로 활동한 앤더슨은 22일 오전 <2UE 라디오>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그는 정상에서 무려 10년 동안 머물렀다. 그곳은 불안하고 고독한 곳이어서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금메달을 2개나 딴 호주의 여자수영선수 쉐인 굴드의 예를 들었다.

굴드는 16살에 참가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나서 호주로 돌아오자마자 은퇴했다. 그후 그녀는 20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더욱 아이러니컬 한 것은 그녀가 물 공포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녀가 약 한달 전 이안 소프를 데이드레 앤더슨에게 데리고 갔다.

몇 주 동안 이안 소프의 심리상태를 점검한 앤더슨은 "지금 은퇴하라"는 권유를 했고 이안 소프는 고뇌 끝에 권유를 받아들였다. 앤더슨은 "이안은 정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지금부터 더 큰 업적을 이룰지도 모른다, 인생은 여러 채프터가 있다"고 말했다.

앤더슨의 권유를 받아 은퇴를 결심한 이안 소프는 "어떤 운동선수가 선수생활을 그만 두고 싶으면 나에게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러면 나는 그를 앤더슨에게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고, 쉐인 굴드도 "앤더슨은 운동선수의 은퇴시점(transition time)을 가장 잘 조언해주는 전문가"라고 덧붙였다.

할리우드 액션배우로 변신?

영화배우인가, 수영선수인가... 뛰어난 외모까지 겸비해 할리우드 진출설이 나도는 이안 소프.
영화배우인가, 수영선수인가... 뛰어난 외모까지 겸비해 할리우드 진출설이 나도는 이안 소프.호주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은퇴를 발표한 이안 소프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은퇴를 기념하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장래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데일리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가 이르면 다음 주부터 폭스텔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호주 젊은이들은 어떻게 호주의 미래를 만들어갈까?'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아니더라도 이안 소프가 TV나 영화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그가 그리스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한 직후 휴식을 취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미국 LA에 머문 것도 그런 사실과 무관치 않다고 호주언론은 보도했다.

<채널9>의 연예리포터 리차드 앤더슨은 "이안 소프가 어쩌면 차기 터미네이터(Next Terminator)가 될지도 모른다, 현재 할리우드엔 대형 액션배우가 없다"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실베스터 스탤론 등은 이미 한물 간 배우들"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안 소프의 인기가 유난히 높은 일본에서는 '소피도'라는 상표의 음료수가 생산된다. 또한 같은 명칭의 수영복도 인기가 높아 그가 사업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은퇴 후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요즘 그것 때문에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고 능청을 떨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그가 사회사업가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젊은이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서 '이안 소프의 젊은이를 위한 샘물(Ian Thorpe's Fountain for Youth)'을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미래적 전망을 잃고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버린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청소년들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도 그가 약속했던 일 중의 하나다. 그는 바쁜 틈을 쪼개서 호주북부지역을 돌며 애보리진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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