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학선거, 정치판과 다른 게 뭐지?

뉴라이트 후폭풍, 계속되는 무관심, 비방전에 골머리 앓는 총학선거

등록 2006.11.23 16:33수정 2006.11.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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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매년 11월 중순부터 각 대학들은 총학생회 선거를 실시한다.

매년 11월 중순부터 각 대학들은 총학생회 선거를 실시한다. ⓒ 김귀현

"제 다음으로 들어올 OOO 총학생회장 후보는 올해 총학생회 집행부로서 잘못한 일이 많습니다." (A후보)
"운동권에게 다시 총학생회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B후보)


총학생회장 선거(아래 총학선거) 운동이 한창인 지난 22일 한양대. 강의실 유세를 하는 총학생회장 후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상대에 대한 비방으로 말문을 열었다.

매년 11월의 캠퍼스엔 늦가을의 쓸쓸함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총학생회 선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총학선거는 심한 몸살을 않고 있다.

각 후보들의 상호비방, 흑색선전, 의혹제기 등 기존 정치판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학생들의 혼란과 불신만 늘어가고 있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까지 더해져 올해 11월의 캠퍼스는 여느 때보다 스산하다.

운동권-비운동권의 지루한 싸움... 학생들 "둘 다 싫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싸움은 올해도 계속됐다. 성균관대의 한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는 '지난 6년간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다른 선본은 '운동권이 총학생회를 맡았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때 학교는 난장판이 되었다'고 맞섰다.

총학선거에서 운동권, 비(非)운동권, 반(反)운동권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1997년 IMF가 터진 후.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학생회에서 탈피해 복지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이 많은 학교에서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들의 다툼은 공약보다는 상대 후보를 비방해서 얻는 반사이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운동권 선본에서는 주로 비운동권의 '정체성'과 '조직성'을 문제 삼았고, 비운동권 선본에서는 운동권의 '정치성'을 꼬집었다.

한양대에서 출마한 한 후보는 유인물의 상당 부분을 비운동권인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으로 채웠다.


"10개월 전 총학생회 선거자료집을 펼쳐본다. OO(비운동권 선본)은 학교발전과 학생복지가 등록금 협상의 최우선이라며 등록금을 '완전정복'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10개월 후 우리의 교육은 이토록 참담하다."

이 학교는 6년째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는 비운동권 선본에서 투표 이틀을 앞두고 "한총련은 대학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세움 간판 등을 교내 곳곳에 게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는 '학생회비가 한총련의 정기회비로 쓰인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한양대생 이아무개(기계공학부 02)씨는 "정말 지겹다, 입학할 때부터 시작된 싸움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싸움이 거듭될수록 서로 비방만 앞서는 것 같다"고 비판한 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 기권하겠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생 김상국(경제학부 00)씨는 "6년이나 지난 일을 들먹이며 상대 선본을 비방하는 것은 정말 보기 좋지 않다"고 말하고 "이전의 선거 때는 참신한 공약도 많아 좋았는데 올해는 서로 욕하는 것만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a 성균관대 학생회 선거 운동 모습.

성균관대 학생회 선거 운동 모습. ⓒ 최훈길

학생들 무관심에 선본들 '눈 가리고 아웅'

21일 첫날 투표를 마친 서울대의 투표율은 9.29%였다. 3일 동안 투표 참여자를 다 합하더라도 50%의 투표율로 정수를 넘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7팀의 선본이 선거에 출마해 다른 학교보다 참여율이 높지만, 투표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는 적었다.

학교 게시판에는 '이런 투표율로는 연장투표를 해도 소용없다', '또 3월까지 가야 하나' 등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학교는 작년에 투표율 미달로 그 다음해인 올해 3월에 재투표를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총학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극에 달하고 있다. 후보들이 누군지 알고 기권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후보가 누군지, 몇 개의 선본이 출마했는지 모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연세대생 김아무개(경영학부 05)씨는 "아무리 공약이 좋으면 뭐하나, 거의 안 지켜지는데, 후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짜증만 난다, 토익 공부와 학과 공부 등 선거 말고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고 "현재 후보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단국대생 박노현(전자전기 00)씨는 "학교에서 선거유세를 할 때 너무 시끄럽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또한 같은 학생들에게 90도로 허리 굽혀가며 인사하는 것도 보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학생들의 무관심을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국민대의 경우 2004년 부총학생회장이 2005년의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하고, 2005년의 부총학생회장이 다시 2006년의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대생 이아무개(법 06)씨는 "계속 단일후보로 부총학생회장이 총학생회장으로 나오면서 선거가 계속 파행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말한 뒤 "가는 길을 막고 투표했느냐고 막무가내로 묻고 투표소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고 거리의 호객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다"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단일후보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쩔 수 없이 투표를 안 하게 되는데 투표하라고 무조건 강요한다"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단일후보는 투표율 50%만 넘으면 무조건 당선되기 때문에, 반대의사를 표명할 학생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상황이다.

한성대에서 단독으로 출마한 총학선본은 매년 개최하던 학내 언론사 정책 공청회도 생략했다. 그래서 단독으로 출마했기 때문에 선거를 안일하게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교내 게시판을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일고 있지만,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비난의 소리는 허공 속의 메아리로 그치는 분위기다.

캠퍼스 파고 드는 보수의 물결과 터져나오는 의혹들

a 총학생회 선거에 뉴라이트 개입 의혹이 제기 되고 있는 한 대학의 커뮤니티.

총학생회 선거에 뉴라이트 개입 의혹이 제기 되고 있는 한 대학의 커뮤니티. ⓒ 인터넷 화면 캡처

대학 총학생회에 뉴라이트 조직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당 대학들의 총학생회장단 선거도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치러지고 있다.

숙명여대의 A선본은 뉴라이트 조직이 상대후보 측에 개입해 있다는 의혹과 관련, 교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에 사실을 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A선본이 '뉴라이트 쪽에서 선거준비를 하고 있는 학교들 중에 숙명여대도 언급되었고, 실제 여름에 진행된 뉴라이트 선거 학교에 06년도 졸업생이 참가한 사실도 확인하였습니다'라는 글을 본 후 중선관위에 이 글에 대한 사실규명을 요청한 것.

그러나 중선관위는 선거과정에서 다른 선본명이나 후보 명칭을 거론하는 것은 이미 주관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근거를 들며 '깨끗한 선거가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답해 실질적으로 사실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마찬가지로 한 후보가 뉴라이트 조직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된 서울의 명지대학도 사실관계를 밝히라는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했다. 그러나 선거 기간 동안 중선관위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대자보를 떼어내, 학생들의 의혹을 사고 있다.

명지대생 이재윤(경영 02)씨는 "뉴라이트의 개입 의혹이 밝혀진 상태에서 선거를 해야 제대로 된 여론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밝힐 것은 밝히고 투표를 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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