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78회

등록 2006.11.23 08:24수정 2006.11.2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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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전 철담의 죽음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은 나흘 전 운중보로 오다가 혈간 옥청천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어제 동창의 당두 서교민과 신태감이 살해되었다. 또한 철담의 제자인 윤석진이 진가려란 계집과 뒹굴다가 한 몸이 되어 이승을 하직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사실 별개의 사건이었다. 철담은 자신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죽었다. 그리고 혈간은 운중보로 오는 길에 피살되었다. 그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바로 자신이 데리고 들어온 설중행과 동창에 끼어들어온 능효봉이 분명했다. 두 놈의 태도로 보아 동창의 명령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두 놈은 동창에 대해 무척 불만이 많았고, 동창의 첩형이라는 경후마저도 두 놈에 대해서는 어쩌지 못하고 꺼려하는 듯 보였다.

그런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실 철담과 혈간의 죽음 사이에는 하등 관련이 없어보였다. 다만 두 사람이 동정오우라는 점이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지금까지 이 중원 무림을 좌지우지 해왔던 인물들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가 동정오우를 노리고 있다면 간단한 일이었다. 또한 지금의 상황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한데 왜 동창에서 혈간을 죽인단 말인가? 동정오우를 노리는 자가 동창이었던가? 동창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실세가 바로 추교학의 부친이라 알려진 추산관 태감이다. 더구나 철담은 동창과 사이가 매우 좋았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별히 동창이 동정오우를 노릴만한 이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있다면 오직 하나 자식을 보주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과연 그런 것인가? 지금 상황으로만 놓고 본다면 감히 동정오우를 노릴 수 있는 권력과 힘을 가진 곳은 동창 정도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서교민과 신태감의 죽음은 동정오우 쪽의 보복이었던가? 동창에서 자신들을 노리고 있음을 안 동정오우 쪽에서 압박을 가하려고 들어온 서교민과 신태감을 죽여 경고를 발했던 것일까?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윤석진이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은 동창과 동정오우 간 암투를 은근하게 표현한 말일까? 그렇다면 철담의 죽음을 최초로 발견한 윤석진의 죽음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던가? 어느 쪽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지금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가진 연결고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의 핵심조차 파고들지 못하고 있어.”

처소인 현무각으로 돌아온 풍철한이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자책하듯 불쑥 말했다. 분명 뭔가 있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객관적으로 보면 개별적인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과 본능은 분명 관련된 사건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키고 있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나가려면 실마리가 필요했다. 그 실마리가 지금 생각해 보니 바로 윤석진이었다. 애써 찾은 그 실마리가 잘려나갔다.

- 다소 이상한 징후 몇 가지가 있소. 하지만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소. 어차피 우리는 계속 만나게 될 터이니 어느 정도 확신이 들면 말씀드리겠소.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셔야 해결이 빨라질 거요.

자꾸 윤석진의 말이 뇌리에서 뱅뱅 돌았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중얼거리며 묻기는 했지만 대답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허나 함곡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풍철한의 눈을 주시했다.

“사건이 일어난 결과만 놓고 보면 대개 팔구할은 급작스럽고 우발적으로 보인다네. 하지만 그 사건들을 조사하다보면 오히려 팔구 할 정도가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말을 꽤나 어렵게 하는군. 나는 지금 인내심이 바닥나서 자네의 장황한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네.”

함곡이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초조하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풀려가던 실마리가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비가 곧 내릴 것 같군. 바람이 부는 것이 오늘은 내내 큰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아침에 잠시 삐쭉 보였던 해가 자취를 감추고 사시(巳時)가 된 지금 사위가 어둡다 할 정도로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퍼부을 것 같았다.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면 비가 온다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네.”

“알고 있으면 되었네.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면 비가 오듯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일련의 사건들의 희생자들이 죽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라네. 그것이 또한 윤석진이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이지.”

“빌어먹을…. 흉수의 살해동기가 무엇이냐는 말이 아닌가? 흉수의 살해동기를 알아내면 흉수를 잡기 쉽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단 말이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흉수의 살해동기와 내가 말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엄연히 다르네. 쉽게 흉수의 살해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네.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그럴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미워해서 그럴 수도 있네. 하지만 자네도 느끼고 있듯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은 뭔가 계획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네. 바로 그 계획이 필연적인 이유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이네.”

“내가 보기엔 그 말이 그 말 같구먼. 좋으이. 그럼 그 필연적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자네답지 않게 너무 성급하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만 가지고는 아직 정확한 이우를 찾아내기 어렵네. 하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것인지는 분명해졌네.”

함곡의 말에 분통을 터트리려던 풍철한이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일을 진행하고 판단하는 데는 함곡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함곡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 한 번 정리를 해보세. 운중보 내부에서 철담어른과 그의 제자인 윤석진이, 그리고 동창의 서당두와 신태감이 살해되었네. 또한 이곳으로 오는 도중 혈간어른이 기습을 받고 피살되었지.”

“진가려란 계집은 왜 빼는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지만 진가려의 죽음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저 윤석진과 함께 있다보니 죽은 것이다. 함곡은 풍철한의 딴죽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이 보이는 것이네. 또한 보이는 것은 두 가지가 더 있네.”

“…!”

“하나는 사라진 구룡의 무공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네. 그것도 하나 정도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나타났고, 앞으로도 또 나머지 구룡의 무공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또 하나는?”

“지금 이 운중보에서는 보주의 회갑연을 기화로 후계자를 정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네. 보주가 물러나고 다섯 제자 중 한 명이 중원무림의 패권을 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네. 단순히 운중보 내부의 일이 아니라 중원 전체에 엄청난 파급을 가져올 사건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어차피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저 간단하게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풍철한의 재촉에도 함곡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윤석진이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을 추론해 보세.”

“뻔하지 않은가? 다섯 제자는 후계자가 되려고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고, 그러다 보니 후계자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철담어른과 혈간어른이 피살되고, 신태감까지 살해된 게 아닌가?”

“아주 좋으이. 자네가 말한 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추론해 보면 흉수의 범위가 확실히 줄어들겠군. 그렇다면 그 분들은 누구를 밀고 있었던 것인가?”

결론은 하나였다. 철담은 궁수유를 은근히 밀었다고 했다. 혈간이야 물론 자신의 장조카인 옥기룡을 후계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인물이고, 신태감 역시 노골적으로 추교학을 지원하러 온 것이 아닌가?

“대제자인 장문위가 오해를 받겠군.”

풍철한의 입에서 신음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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