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정치 톺아보기 147] 양김의 평양 '차내 대화'와 노·DJ의 '사저 대화'

등록 2006.11.24 13:33수정 2006.11.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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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27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마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공항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고 있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27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마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공항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고 있다.청와대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경향이 있다. 개인과 개인은 물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23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미국 CNN의 '토크 아시아(Talk Asia)' 프로그램에 출연해 17개항의 질문에 답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이 녹화 인터뷰는 10월 7∼9일 동안 4회 방영되었다.

필자는 그 인터뷰를 보면서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의심과 불신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CNN의 인터뷰어는 세 번째 질문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일 유명하고도 사람들이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대통령님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과의 대화는 바로 북한 공항에 내려서 공항에서 차를 타고 두 분이서 함께 가실 때 나눴던 대화가 아닐까 싶은데 실제적으로 그 때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입니다. 지금 대통령님께서 당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밝혀주실 수 있습니까?"

남북정상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27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은 마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공항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했다. 국가원수가 공항까지 영접을 나온 것도 이례적인데, 의장대 사열을 마친 김 대통령이 리무진 승용차의 오른쪽에 오르는 순간, 김 위원장이 왼쪽문을 통해 옆자리에 앉는 파격이 연출되었다. 첫 만남이 곧바로 '차내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셈이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차내 정상회담'에 대한 의심

두 정상을 태우고 10시 50분에 공항을 출발한 링컨컨티넨탈 리무진이 김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영빈관에 도착한 것은 11시 40분이었다. 그리고 정상회담 첫날부터 제기된 이 '50분간의 차내 정상회담'에 대한 궁금증이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지금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북한 당국이 미국 첩보위성의 도청을 따돌리기 위해 '차내 정상회담'을 가졌고 거기서 '연방통일안'에 합의를 봤다는 얼토당토 않은 소문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의 대북송금 특검 진술에 따르면, DJ는 2000년 3월 17∼18일 상하이에서 개최한 1차 예비회담 때부터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을 통해 박태준 총리와 보스워스 미국 대사 등에게 접촉 사실을 설명토록 했다. 그러고도 DJ는 박 전 장관에게 "회담 현장에 있었던 숨소리까지 사실 대로 알려주라"고 지시할 만큼 미국을 배려했다.

'차내 동승 대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차내 동승이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인데다가 연도에 환영 나온 주민들의 함성 소리가 시끄러워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 대통령특사의 자격으로 정상회담을 비밀리에 추진한 박지원 문광부장관과 정상회담을 총지휘한 임동원 국정원장 그리고 정상회담 전 과정을 언론에 전한 박준영 청와대공보수석의 일관된 증언이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의심이 지속되니 오죽했으면 DJ가 질문한 CNN 기자에게 '버선목'까지 들먹이며 이렇게 답했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설명해도 잘 납득이 안 되는 그런 경우에는 '버선목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참 답답하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사실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올지 안나올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나왔는데 국빈으로서 외국에 가면 영접한 차는 내가 혼자 타는데 내가 차에 타고 있으니까 누가 차에 '턱!' 앉더라고요. 보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타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약 60만명의 사람들이 도로에 나와서 소리치고 꽃대를 흔들고 만세를 하는데 말해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고 또 나는 아직 김정일 위원장과는 일면식도 없고 그런 중대한 대화를 할 때는 상당히 긴장하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 두 가지, 즉 말을 해봤자 안들리고 또 말할 심정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서로 밖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또 말할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거의 한마디도 못하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한 번은 '잘 모시겠다'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있고 대화가 실제로 없었습니다."


DJ의 '호남표 몰아주기'와 노 대통령의 '햇볕정책' 지속 '맞교환'?

노무현 대통령은 11월 4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전자방명록에 "치열한 삶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셨습니다. 치밀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월 4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전자방명록에 "치열한 삶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셨습니다. 치밀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할 것입니다"라고 썼다.연합뉴스
지난 11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최근 개관한 전시실을 둘러보고 사저를 방문해 부부 동반으로 오찬을 함께 했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토요일임을 감안해 이날 일정에는 이병완 비서실장과 부속실 직원들만 동행했다.

이어 11월 7일엔 노 대통령이 지역혁신박람회가 열린 광주를 방문했고, 그 다음날엔 DJ가 유엔 ESCAP(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 교통장관회의가 열린 부산을 방문했다. 둘 다 오래 전에 확정된 행사였다. 더구나 ESCAP 교통장관회의는 유엔의 국제행사로 DJ는 오래 전에 기조연설을 요청받았다. 따라서 광주·부산 행사에 노 대통령의 사저 방문 일정이 '끼어들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 상대방의 정치적 고향을 교차 방문한 것은 '정계개편의 신호탄'이라고 썼다. 그러자 이병완 비서실장은 6일 기자들에게 "영부인들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했겠냐"면서 "북핵문제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 쭉 말씀하셨고 노 대통령께서는 주로 들으셨다"고 말해 정계개편이나 대북특사 이야기를 일축했다.

이병완 실장은 오찬 배경에 대해서는 "사전에 김대중전시관을 관람하기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차 마시고 환담하기로 돼 있었다"면서 "그쪽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차만 마시고 갈 것이 아니라 식사라도 하자는 제의를 받아 목요일(2일)쯤 일정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6일 기자들에게 "김대중도서관 방문에 대해 억측이 많은데, 방문 제안은 지난주 초(10월말)였고 최종 확정은 지난 목요일(2일)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병완 실장은 "(도서관 방문기사가) 동정 수준으로 나올줄 알았다"면서 "기자들의 창의적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오찬 대화' 내용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의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8일 "향후 정계개편의 동력(動力)이 두 사람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군불'을 땠다. 한나라당은 "(만남 자체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정치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정치권에서는 심지어 이날 오찬에 이병완 실장뿐만 아니라 전날(3일)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동석해 국내정치 현안을 논의하면서 DJ의 '호남표 몰아주기'와 노 대통령의 '햇볕정책' 지속이라는 '맞교환'이 이뤄졌다는 그럴 듯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DJ 사저 방문은 빚 지고는 못사는 노 대통령의 '결벽증' 때문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사저를 방문했으며 두 사람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한 마디로 요약해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빚 지고는 못사는 노 대통령의 '결벽증' 때문이다.

청와대측에 따르면 오찬 일정이 확정된 것은 목요일(2일)이다. 이날 노 대통령과 DJ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노 대통령은 2일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에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정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평화의 전략, 그리고 나아가서는 미래 동북아시아의 어떤 공동체를 향한 통합의 전략, 이런 부분들은 결코 거역할 수 없을 것"이라며 "(김영삼 대통령처럼) 대화의 단절을 선택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통령은 한국에서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은 연세대에서 김대중도서관 후원회가 열린 날이다. 이날 후원회에 참석한 김 전 대통령은 축사에서 "오늘 이 자리가 있기까지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컸고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10월 27일 이병완 실장을 보내 김대중도서관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사저 방문의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10월 10일 북한 핵실험과 관련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한 오찬에서 DJ가 겪은 '수모'에 대한 노 대통령의 '죄송함'이었다.

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한 것은 지난 2004년 1월 이후 두 번째이다. 그때는 김대중·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3인이 참석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건강을 이유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특별한 이유를 대지 않은 채 불참했다.

와인 세 병이 곁들인 이날 만찬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했다. 이날의 만찬 풍경은 이진씨가 지은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에 잘 나타나 있다.

전두환 "전직 대통령으로서 체면 있게 사람대접 받은 건 DJ 때"

전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난 옛날에 김대중 대통령과 사이가 나빴잖아요. 사귈 기회도 없었고, 근데 내가 형무소에 있을 때에요. 그때 교도관들의 90%가 호남사람들인데 나한테 그리 잘해줘요. 전직 대통령으로서 체면 있게 사람대접 받은 건 김 대통령 때였어요. 난 김 대통령이 그렇게 할줄 몰랐어요. 외국 갔다 오면 초대해서 설명도 해주시고 해서…"

말이 길어지려고 하자 이순자 여사가 눈치를 주었다.

"좀 잡수시면서 말씀하세요."

전 전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김 대통령 덕분에 중국에 가서도 대접을 무지 잘 받았어요. 김 대통령이 술을 못하시니까 마오타이를 사올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덜렁덜렁 돌아왔는데 이 자리에서 정말 감사드려요. 뒤에서 그렇게 봐주셔서…." (중략)

환담이 계속 길어지자 김 전 대통령이 자리를 정리했다.

"바쁘신데 잘 먹었고, 건강하십시오."

노 대통령이 화답했다.

"이리 재미있는줄 알았으면 진작 모셨을텐데 말입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2년 가까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 출감했다. 그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체면 있게 사람대접 받은 것 김 대통령 때였어요'라고 말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DJ는 당선자 시절 수감중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 5공청문회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다. 이진씨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와 덕담만으로도 전·현직 대통령들의 만남은 유의미했다'고 평가했다.

YS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무현이'를 국회의원 시킨 것"

지난 10월 10일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초청 오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 10월 10일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초청 오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청와대

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지난 10월 10일 전직 대통령들을 오찬에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이날은 김대중·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 3인이 참석했다. 건강이 안좋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불참했고, 이번에도 안올줄 알았던 YS는 발언할 메모까지 준비해 참석했다. 이날 오찬은 YS가 주도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찬 회동과 관련 전직 대통령들의 원론적인 대화 내용만 간략히 소개했다. 그러나 YS는 작심하고 온 듯,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김대중 정부와 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심지어 "두 정권이 8년7개월 동안 4조5800억원의 돈을 퍼 줘서 마침내 북한이 핵을 만들게 됐다"면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공개 사죄해야 하며 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엄청난 사안이다"고 말해 오찬 분위기는 썰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DJ는 YS에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으며 노 대통령은 주로 묵묵히 듣기만한 것으로 전해진다.

YS는 전·현직 대통령의 면전에서 '할말'을 한 것만으로는 성이 안찼는지, 아니면 청와대가 자신의 발언을 언론에 소개하지 않을 줄 예상하고 그랬던지, 이날 일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을 상도동 자택으로 불러 오찬 발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동아일보>와 정식 인터뷰를 해 "노 대통령은 국민에 용서 구하고 포용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언론사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YS는 이날 기자들에게 노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무현이'를 국회의원 시킨 것"이라면서 "선거자금 달라고 해 내가 줬더니 그 돈으로 나중에 서울에 아파트를 샀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YS가 인터뷰 내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대통령' 호칭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부르는 것을 듣다 못한 기자들이 지적하자 "내가 ○○이를 ○○이라고 부르지 그러면 뭐라고 부르냐"고 반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대통령은 다음날 전남대 초청 강연차 광주를 방문한 DJ에게 전화를 걸어 YS와 한 자리에 불러 그같은 수모를 당하게 한 '결례'에 대해 사과하고 대북포용정책의 골간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어제 불편하게 했던 일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창 "노 대통령이 DJ 만나고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지난 10월 29일 8년만에 고향 전남 목포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상경 전에 환송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8년 만에 고향을 방문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됐고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며 "이 고장 출신으로서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에 얼마나 행복하고 떳떳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9일 8년만에 고향 전남 목포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상경 전에 환송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8년 만에 고향을 방문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됐고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며 "이 고장 출신으로서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에 얼마나 행복하고 떳떳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전남도청

DJ는 이날 특강에 앞서 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에 대해 DJ는 "대북포용정책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긴장완화를 위한 것이고, 대북관계를 악화시킨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고, 노 대통령은 "전적으로 동감한다. 참모회의에서 그런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 대통령의 김대중도서관 전시실 및 DJ 사저 방문은 전직 대통령 기록문화에 대한 노 대통령의 관심과 자신의 '결례'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노 대통령의 도서관 지원에 대한 DJ의 감사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결과일 뿐이다.

DJ측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오찬에서 주로 북핵문제와 부동산정책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장관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는 대체로 청와대 발표와 일치한다. 두 사람은 특히 반 장관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DJ는 노 대통령 방문 전에 반 장관 내외를 사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 바 있다.

다만, 북핵 문제의 연장선 상에서 미국 중간선거(7일) 결과에 따른 미국 '네오콘'의 입지 축소와 그에 따른 한미관계에서의 대북정책 공간의 확대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선거를 앞두고 미국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이 부분은 브리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부산대 특강에서 최근 공주대 초청 강연까지 두 달 동안 10여 차례의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가졌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국내 정치에 대해 언급하거나 특정 정파를 비판한 적이 없다. 다만, 대북정책과 관련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미국의 '네오콘'을 비판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국내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DJ 사저 방문을 계기로 DJ의 '호남표 몰아주기'와 노 대통령의 '햇볕정책' 지속이라는 '맞교환'이 이뤄졌다는 그럴 듯한 '소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한물 간' 정치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소설'을 '사실'로 단정해 DJ를 비난하고 자신의 정치적 발언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일 한 초청 강연에서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단정짓고 "역사의 험난한 파도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왔고 대한민국의 버팀목이 된 자유의 정신을 요즘 허물어뜨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거기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또 자신을 지는 해에 비유하자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YS와의 회동을 추진하다가 여론을 의식해 연기하더니, 최근에는 한 강연회에서 "최고책임자가 횡설수설하니 잠이 안 온다"면서 DJ 사저를 찾은 노 대통령과 DJ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들에게는 고향을 방문한 DJ가 환영행사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른 것도 '호남표의 결집'으로 해석된다. 이 '홈 커밍 데이' 행사의 주최는 전남도와 목포시청이었다. 주최측이 8년만에 고향을 찾은 노정객의 향수를 달래려고 '목포의 눈물'을 틀어놓았는데, 그러면 '손님'으로 간 DJ가 '목포의 눈물'을 따라 부르지 않고 혼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도 불러야 한다는 말일까.

DJ의 말처럼 이들에게 '버선목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이들에게는 노정객의 '고향 방문'도 대통령의 '사저 방문'도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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