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도 셰익스피어도 이런 건 못해봤을 걸"

[현장] 소설가 박민규와 그 친구들의 특별한 콘서트

등록 2006.11.25 11:42수정 2006.11.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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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요즘 소설가들이 독자와 만나는 방식은 특이하다. 김영하가 <빛의 제국>을 내고 낭독회를 열었다면, <핑퐁>을 낸 박민규는 락 음악이 작열하는 콘서트를 열었다.

기타광으로 소문난 소설가답게, 소설가 박민규는 기타를 메고 독자들을 만났다. 기타만 친 게 아니라 노래도 불렀다. 기타 연주를 배경으로 자신이 쓴 책도 낭독했다. '작가와 대화'라며, 미리 뽑아온 질문에 시종일관 유머를 섞어 답했다.


'박민규와 그 친구들의 특별한 콘서트'가 23일 오후 8시, 홍대 앞 '캐치 라이트'에서 세 시간 넘도록 열렸다. 박민규의 신작 소설 <핑퐁>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박민규의 친구들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김형태와 황신혜밴드', 그리고 '성기완과 3호선버터플라이', '신윤철과 서울전자음악단'이었다.

박민규의 책 <핑퐁>을 산 이들에게 콘서트 초대권이 나눠졌다. 이렇게 초대된 독자 아니 청중 900여명이 이날 콘서트장을 꽉꽉 메웠다. 소설가가 주최한 콘서트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소설가 박민규가 나타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느 인기 가수 부럽지 않았다. 박민규 스타일도 여느 가수 못지 않았다. 빨간색 셔츠에 특유의 고글을 쓰고 긴 머리를 질끈 묶었다.

혼자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거대한 오토바이가 어울릴 것 같은 차림이지만, 그는 자전거를 탔다. 바퀴가 조그만 자전거였다. 혼자 탄 것도 아니었다. 그의 등 뒤에서 사람 크기만한 여자 인형이 흔들거렸다. 소설 <핑퐁>에 잠깐 등장하는 전신 고무인형 캐서린이 떠올랐다. 작가의 위트 같았다.

깊이가 없단 평가 받아 좋아


a 소설가 박민규, 그가 기타 치고 노래했다.

소설가 박민규, 그가 기타 치고 노래했다. ⓒ 창비

박민규는 쑥스러운 웃음을 띠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가 특유의 어눌한 듯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수를 위해 쓴 작품도 아닌데, 두 명의 중학생 정도를 위해서 쓴 소설인데, 이렇게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이 터졌다. 그는 "하루 저녁 정말 놀고 싶었을 뿐"이라며 "제 독자들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홀로 묻고 답했다. 이름은 '작가와 대화'였다. 인터넷으로 받은 질문을 뽑아왔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묻고 답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그렇고 <핑퐁>도 그렇고 유독 공놀이에 몰두하는(웃음) 이유는 뭘까요?"

그는 자신은 어려서 공놀이보다 복싱광이었다며, "그렇다고 복싱을 소재로 소설 쓰진 않겠다. 스포츠는 이제 그만이다"고 말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질문이 있었다며 스포츠 게임도 하나 추천했다. <굴려라 왕자님>이란 게임이었다. 작가는 지금도 밤마다 굴린다고 했다.

질문은 이어졌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글은 깊이가 없다는 비평을 받기 일쑤인데, 박민규님 글은 책장이 잘 넘어간다"며 "어떤 의도로 읽어야 쉽게 작가 본연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나?"란 질문에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저는 깊이가 없단 평가를 받아 좋아요. 한국 사회는 모자라는 부분을 자꾸 보충하라고 권유하는데 전 모자라는 걸 보충하기보다 제가 잘하는 걸 계속 잘하고 싶습니다. 깊이 있고 무거운 게 중요하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가벼움도 그만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겠습니다."

말투와 달리 말하는 바는 확실했다. 단호했다. 그는 우리가 받은 국어교육이 무의식적으로 뭔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게 만든다며, "작가 의도를 파악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제가 쓴 글은 제가 죽었다 다시 환생하고 읽어도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습니다. 전 그냥 쓸 뿐이고, 의도라는 건 읽는 분들 몫이 아닐까요. 파악 안 해도 되고요 전 의도 없어요. 하나의 정서로 생각해주십시오."

학창시절 딴 생각만 하던 게 지금의 나를?

그는 또 특이한 의상이나 안경 같은 코디는 누가 하냔 질문에, "제가 제일 많이 입는 의상 종류는 추리닝"이라며 "의상은 제 집사람이 건네주면 전 입으라는 대로 입는다"고 밝혔다. "집사람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다. 집사람이 디자이너 출신인데, 옷도 골라주고 여러 가지를 해주신다"는 말에 객석에서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이어서 "<핑퐁>에 작가의 학창 시절이 투여된 거 아니냐지만, 전혀 아니다"며 "난 그야말로 멍하니 보낸 학생이다. 수업 시간엔 먼 산 보고 딴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딴 생각이나 놀기를 많이 해서 지금 이걸 하며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의미심장한 소릴 덧붙였다.

그는 또 "'음악 잘 하시나요?'란 질문이야말로 내 아킬레스건"이라며 콘서트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제 글을 읽어준 독자분들하고 꼭 한 번 같이 힘차게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생각해보니, 그런 경험을 해본 작가는 없는 거 같더라구요.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도 톨스토이도 셰익스피어도 자기 글을 읽은 독자들과 콘서트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보진 못했던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꼭 하고 싶었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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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나중에 불러달라고 하면 꼭 힘차게 불러주십시오. 제 꿈입니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자랑할 거 같아요. 헤멩웨이나 톨스토이 만나면 당신들 글은 잘 쓰지만 이런 거 한 번 해봤냐. 그래서 아주 행복합니다."


이어서 그는 "김천 얼짱 박민규와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읽고는, 자신이 이게 무슨 소린지 잘 몰라 인터넷을 뒤져 찾았다며, 네티즌이 올린 얼짱 박민규 소개를 또박또박 읽기까지 했다. '포스', '후광', '쓰러짐' 이런 단어들로 가득한 소개를 읽은 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이름 가지고 이렇게 한 지역을 평정한 얼짱 분도 계신데…,(웃음)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듯, 낭창낭창한 달변으로 일관한 '작가와 대화'가 끝났다. 박민규는 이어서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고 좋아하는 음악"이라며 "그분들 음악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었다"는 말로 본격적인 콘서트 시작을 알렸다.

형태형이야말로 나의 브라더

"우선 첫 번째, 괜히 20세기에 나타나가지고요. 장난스런 밴드로 취급받고 그러는데요. 21세기에 나타났으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을, 정말 대단한 밴드입니다. 황신혜밴드입니다.

황신혜밴드 리더인 김형태 형이랑은 오랜 친분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들국화가 라이브 공연에서 'He ain't heavy - he's my brother'를 불렀는데, 형태형이야말로 제게 있어, 'He ain't heavy - he's my brother'라고 생각합니다. 길은 멀고 험하지만, 즐겁게 노래하시고 춤춰주시기 바랍니다."


황신혜밴드가 '짬뽕', '사랑은 쌍방과실', '문전박대' 등을 불렀다. 소문난 대로 김형태는 짜릿짜릿한 말발과 노래로 청중을 춤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는 것은 기타를 치기 위해서야!" 그의 톡 쏘는 선언에 환호 소리가 몰아쳤다.

황신혜밴드 공연이 끝날 무렵 박민규가 드디어 나타났다. 꽃무늬가 잔뜩 그려진 꽃분홍색 기타였다. 기타를 들고 박민규는 기타를 치고 노래도 불렀다. 저음이 묵직했다. 처음 자신을 '음치'이자 '박치'라던 소개가 무색한 순간이었다. 밥 딜런의 명곡 'Knocking on Heaven's Door'였다. 청중을 향하여 그가 손짓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청중들도 다 함께 불렀다.

"Knock, knock, knocking on a heaven's door."

이어서 박민규는 김형태, 성기완과 함께 셋이 기타 치며 노래했다. 들국화가 오래 전에 부른 노래 '축복합니다'였다.

"오늘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당신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하얗고 조그만 탁구공이 객석에 뿌려졌다.

단편 하나는 신윤철에게 바치는 소설이었다

a 신윤철과 서울전자음악단. 박민규는 그를 "존경한다"고 했다.

신윤철과 서울전자음악단. 박민규는 그를 "존경한다"고 했다. ⓒ 창비

이어서 신윤철과 서울전자음악단, 성기완과 3호선버터플라이가 노래했다. 신윤철을 일컬어 박민규는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지구상에 이 많은 나라에 왜 하필 대한민국에 태어났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불안이 신윤철 공연을 보고나서 없어졌다고 했다. 또 그가 쓴 단편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가 신윤철에게 바치는 소설이라고 깜짝 밝혔다.

"그 소설에 처음에 강아지 뼈를 마당에 묻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윤철씨가 강아지가 유명을 달리해 굉장히 슬퍼하는 걸 보고, 처음엔 강아지가 다시 태어나 우주여행을 하는 거로 쓰려고 했는데요.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그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한다"는 신윤철과 서울전자음악단의 연주는 소문대로 신들린 듯했다. 기타가 몰아쳤다. 이어서 성기완과 3호선버터플라이가 노래했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연주하는 무대위로 박민규가 슬그머니 책을 들고 나타났다. 박민규는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읽었다. 자신이 쓴 소설 <핑퐁>의 한 구절이었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연주가 실크처럼, 책 읽는 소설가의 목소리를 감쌌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전철을 탑니다. 누구나 집을 나서면 전철을 타는 법이지만 저는 좀 다릅니다. 저는 내리지 않습니다. 전철에 앉아 있는 사람에겐 아무도 당신 요즘 뭘 하느냐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하략)"

주인공 못이 <핼리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읽은 일기의 한 구절이었다. 책은 그렇게 골방에서 나와 독자들을 만났다. 소설가는 그렇게 작업실에서 나와 독자와 함께 노래했다.

책이 음악 소릴 업고 독자들의 귀를 두드렸다. 작가와 그 친구들이 마련한 특이한 콘서트는 밤 11시가 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노래가 소설과 만나 천국으로 가는 문을 두드렸다.

핑퐁

박민규 지음,
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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