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속 언니들의 모습이 진화했다. 언니들의 시커먼 속내를 당당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전통 여성상은 안녕!”을 외치는 듯, 드라마 속 여성들은 진화했다. 아니 변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상의 커플>에 나오는 안나 조가 바로 그렇다. “꼬라지 하고는...”이란 말을 상대에게 직접 대놓고 말하는 안하무인 행동은 상대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더 나아가 그녀는 돈에 집착하고, 자신의 욕망을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오만방자, 안하무인, 유아독존 여러 수식어보다 “싸가지”라는 말이 딱 그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여성상은 극의 재미를 위해 좀 더 과장되게 포장되고는 있지만 안나 조에게 여성은 대리만족을, 남성들은 새로운 여성상을 꿈꾸는 독특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전 <내 이름은 김삼순>의 뚱뚱하고 백수였던 김삼순. 애인에게 차이고,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여성. 현실에서 최악이라 불릴 만큼 잃을 것이 없는 그녀였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욕구를 내뱉었다. 기존 청순가련형이나 악녀와 같은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적당히 이기적인 복합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냈고, 이는 모든 이들에 공감을 얻어낸 바 있다.
청순한 언니들은 가라!
안나 조는 삼순이 언니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시대가 원하는 바일지도 모른다. 사실 한때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할 만큼 긴 생머리에 새하얀 얼굴, 그리고 착하디착한 전형적인 콩쥐 캐릭터의 청순한 여성을 원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대가 지나면서 ‘청승’이라는 말도 대변되고 있다. 드라마에서 악녀에게 당하지만 애써 웃는 캔디형 주인공들의 시대는 한물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존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가난한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신데렐라가 된다.
하지만 신데렐라의 법칙이 적용되는 가운데 여러 에피소드가 나열되는데, 늘 수모와 고초를 겪는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의 공식이 철저하게 지켜진 대표적인 드라마 <사랑을 그대품안에>라는 작품을 기억하는가? 신데렐라 드라마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드라마 주인공 여성은 백화점 판매직원이다. 그곳에서 적절하게 터프하고, 적절하게 신사적인 재벌 2세를 만난다. 그리고 재발 2세와 사랑의 처음은 대부분 티격태격이다. 원수지간처럼 으르렁 거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재벌 2세의 자상함에 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는 집안의 반대 혹은 재벌 2세를 좋아하는 제2의 여성이 등장한다. 돈으로 뭐든지 해결된다고 굳게 믿는 재벌 사모님이 신데렐라를 찾아가 돈을 주며 거래를 하려든다. 혹은 제2의 여성은 태생부터 악했던 것처럼 신데렐라를 괴롭혀주기 위해 잔꾀를 부리며 곤경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데렐라의 행동이다. 두 사람의 압력에도 늘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꿋꿋하게 이겨나간다. 그리고 끝내 사랑을 쟁취해 신분 상승을 이룬다. 이렇게 신데렐라 드라마의 여성은 착한 심성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이것을 시청자들이 조금 지겨워하자, 착한 심성을 가진 신데렐라에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프로근성의 이미지를 심어주어 사랑을 쟁취하는 동시에 일에서도 성공하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여성은 순종적이고 여성스럽고, 착해야 했다. 이를 배반하는 여성은 악녀 혹은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모성애가 비뚤어진 재벌사모님 역 밖에는 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삼순이 언니로부터 철저하게 깨졌다.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는 언니들 대환영
극중 삼순이는 자신의 사랑을 극복하기 위해 첫사랑 유희진에게 당당하게 떠나라고 요구한다. “추억은 힘이 없다”라는 말로 첫사랑은 과거로 국한시키고 자신의 사랑이 현재라 말하고 있다.
또한 재벌집에 시집을 가지만 전혀 재벌사모님에게 꿀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식품업에 종사한다. 삼순이네 방앗간을 합니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과격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자신의 성적인 욕구까지도 거침없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지금의 안나 조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뱃속에서부터 부와 명예를 가졌고 "저것을 가지고 싶어“라고 생각하면 뭐든지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안나 조의 행동은 자기 멋대로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들은 ‘된장녀’라 비하한다. 하지만 ‘된장녀’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지 않는 꼭두각시가 이제는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만들어낸 말이다.
오히려 안나 조는 여성들의 또 다른 욕망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싸가지’는 꼭 남자 재벌 2세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싶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지만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순종’과 ‘청순’을 응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대리만족을 주는 경향이 있는 듯싶다. 또한 일부 남성들도 싸가지 언니들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적어도 응석받이 안나 조는 이제까지 여성에게 강요했던 것에 대한 반대의 중심에 서 있다.
이것은 과거 여성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여성이라는 이름아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가꾸고 키울 수 있는 힘이 여성에게도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웃음을 위해 싸가지라는 코드와 연결되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에 있어 주체성을 가진 여성이기에 안나 조는 반갑다. 그래서 안나 조는 이 시대의 여성상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또한 '된장녀'라 부르는 성적차별을 행하는 남성들을 향한 조소도 잊지 않고 있다. 사실 이같은 성적인 차별의 말은 써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안나 조의 등장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변화는 안나 조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캐릭터가 나왔다는 점도 드라마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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