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거부할 가능성 높은 제안 왜 했나

노 대통령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 '여야 등거리 정치'에 나서나

등록 2006.11.26 20:15수정 2006.11.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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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은 왜 한나라당이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했을까.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인 박재완 의원은 2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내일 오전 최고위원회를 통해 거부한다는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전시 작전통제권, 장관 인사 등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요구한 것은 다 거부해놓고 이제 와서 협상하자고 하니 진정성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청와대가 전효숙 후보자를 사퇴시키고 정연주 사장 임명을 무효화하면 저절로 다 풀린다"는 입장이고, 이재오·전여옥 최고위원은 '전효숙 인준안 포기와 정연주 자진사퇴'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조건부 참여'를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사실상 거부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여당도 모두 식물상태로 만들려는 한나라당이, 이번 협상제의를 수용해서 노 대통령이 정국의 중심으로 서는 데 들러리 서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상황임에도, 청와대는 "이면의 다른 생각이 없다"면서 제안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전한 26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성사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여야 간에 합의된 사항들이 많이 있었지만 사학법 문제로 합의가 실천되지 않고 계속 표류돼 왔다"면서 "보다 큰 틀에서 이런 현상을 이제 종식시키고 대타협, 대협상의 길을 열어 보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 "다른 뜻 없다, 오로지 교착국면 타개가 목표"

이전부터 노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낮은 지지도 때문에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아도 꼭 필요한 법안들이 거부 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런 고민에서 청와대는 이달 초,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 통과를 위해 '입법상황 점검회의'를 주 단위로 열기로 했다.


정계개편 논의가 한창 벌어질 무렵 정태호 청와대 정무팀장도 "(정계개편 문제가 아니라) 국회에 상정돼 있는 법안을 처리하는 게 주업무"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 국회에서는 2004년 국회 제출 법안 중 비정규직 3법 등 12건과 국방개혁법, 로스쿨, 사법개혁 등 65건 등이 처리가 지연되는 등 총 253건의 법안이 의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진정성과는 별개로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거부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제안에 대해, 청와대 한 핵심관계자는 "미국 부시 대통령이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부시-펠로시 회동을 둘러싼 미국의 상황은 현재의 한국 정치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대패를 당한 이틀 뒤인 9일 하원의장이 확정적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났다. 중간선거 과정에서 인신공격까지 가는 공세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은 두 사람은 9일 회동에서는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가뜩이나 지지도가 떨어진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퇴임 때까지 레임덕을 줄이기 위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인 민주당의 도움이 필요했다. 원내 다수당이 된 민주당도 2008년 대선승리를 위해 국정운영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양쪽의 '초당적 협력'선언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었다.

이를 위해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 팔이었던 럼스펠트 국방장관을 경질하는 대가를 치렀다. 또 논란이 됐던 최저임금 인상법안에 대한 협의도 수용했고, 민주당의 상징색인 푸른색 넥타이를 매는 성의도 보였다.

a 부시 미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9일 하원의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9일 하원의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 백악관 홈페이지


부시-펠로시 회동을 한국에 대입해 보면...

부시 대통령이 소속된 미국 공화당과는 달리 노 대통령이 속한 열린우리당은 원내 1당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정국운영 능력을 상실하고 통합신당 추진을 선언한 상태다. 더욱이 자신을 배제한 신당창당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보다 훨씬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 있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당면한 각종법안 처리와 함께 대선이 있는 내년 정국 운영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협조가 긴요한 상황이다.

청와대가 '정치협상회의'의 협상대상에, 법안처리뿐 아니라 '향후 정국운용기조와 그 방식'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이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임기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이 제시한 여러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야를 떠난 등(等)거리 정치'를 시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결국 정계개편 등의 '정치'보다는 '정책'쪽에 치중하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은 키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의 문을 계속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민병두 의원은 "여당과 야당의 관리내각, 중립내각에 대해, 국회계류 법안에 대한 여야 합의 등을 조건으로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고 한 것과 이번 제안은 연결되는 것"이라면서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여당 소속으로 국정운영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여야 모두와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가겠다는 뜻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정계개편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포"

민 의원은 또 "이것이 가능하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 과정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이번 제안에는 그런 뜻도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이 바로 수용하기를 바라겠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한계점까지 한나라당도 계속 이대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노 대통령이)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협상의 논의주제가 될 수 있다"는 이병완 실장의 언급은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이 상당히 많은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것에는 전효숙 인준안 포기와 사학법 재개정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시절, 자칫 후보자리를 잃을 수 있음에도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 협상을 수용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도 이 같은 제안을 마냥 거부하기만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지도 40%를 훨씬 상회하는 '집권야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선 유력후보 1, 2위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인 상황에서 계속 여권의 실정에 기대 반사이익만을 얻으려는 것이냐는 비판도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노 대통령으로서는 지금이 한나라당에 손을 내밀기에 적절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법안처리 시한 등 시간에 쫓기게 되는 연말에 이 같은 제안을 할 경우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입지가 취약해진 것과는 별개로, 퇴임 때까지 원활한 국정운영을 원하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한나라당이 거부한다 해도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계속 비슷한 제안을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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