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완창판소리 그리고, 포복절도 창작 판소리

국립극장 25일은 판소리 'old & new'의 날

등록 2006.11.27 16:41수정 2006.11.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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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에도 전통음악과 뉴에이지가 존재하듯이 한국음악에도 그렇고 판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통음악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즐기는 현재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온고지신은 필수적 조건이 된다. 마침 판소리 ‘OLD & NEW’라 할 수 있는 날이 있었다. 지난 25일 국립극장 두 극장에서 열린 각기 다른 판소리 무대가 그렇다.

한쪽에서는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시리즈로 올드무대가 섰고, 다른 쪽에서는 창작판소리 뉴무대가 열린 것.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두 무대가 국립극장 내에서 겹친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a 만정제 춘향가 6시간 완창에 성공한 유수정

만정제 춘향가 6시간 완창에 성공한 유수정 ⓒ 김기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대)이 매달 마지막 토요일마다 달오름극장에서 여는 완창판소리 11월 순서를 기다린 사람이 많았다. 판소리 귀명창들 머리 속에는 박동진 명창처럼 6시간, 8시간 하는 완창이 심어있기 때문에 만정(김소희)제 춘향가 6시간 완창에 도전하는 유수정 명창의 무대는 오래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국립창극단 중견단원인 유수정 명창의 완창은 평소 공연보다 1시간 이른 오후 3시부터 시작되었다. 소리는 홀로 할 수밖에 없으나 고수는 3명이 나누어 북을 잡았다. 창극단 후배인 김학용이 첫 북을 떼고, 이후 전문고수인 이태백 그리고 고법 인간문화재 김청만 선생이 북채를 바꿔 쥐었다. 유수정 명창의 6시간 완창은 수년간 없었던 의미있는 도전이자 귀명창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무대였다.

유수정은 만정 생전에 15년 세월을 슬하에 머물며 소리를 배웠다. 그럼에도 6시간 분량 모두를 받지 못하였고, 어사출도 대목부터는 선배이자 스승인 안숙선 명창를 통해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남원춘향제 판소리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명창 반열에 이름을 새기더니 그 명색을 제대로 살리고자 6시간 완창에 도전했다.

a 만정 슬하에 15년 있으면서도 6시간 바디를 다 받지 못해 어사출도부터는 안숙선 명창으로부터 받았다.

만정 슬하에 15년 있으면서도 6시간 바디를 다 받지 못해 어사출도부터는 안숙선 명창으로부터 받았다. ⓒ 김기


마라톤 완주와 비길 바는 아니지만 판소리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체력이 없어서도 안되겠지만 체력만으로 어찌 음악이 되고, 연극이 되겠는가? 예컨대 춘향이 몽룡과의 달콤한 사랑이야기 이후 길게 이어지는 이별과 정조를 지키기 위한 고통에는 단지 음악만으로는 청중의 심금을 울릴 수 없다.

일제강점기의 임방물 명창이 <쑥대머리> 한 곡으로 전무후무한 음악사의 기록을 세운 것만 봐도 그렇다. 잘 들어보면 느끼겠으나 춘향가 중 이별가, 옥중가 들은 그저 소리가 아니라 소리꾼의 내장을 토해내는 듯한 몰아의 감정이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이 부분에서 목이 상하기 일쑤다. 그러나 제대로 공력을 쌓아온 소리꾼이라면 그렇게 후련하게 자기 속을 내놓고 나면 오히려 목이 나기 마련이다. 유수정이 딱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이 나고 공력이 발휘되어 소리귀 열린 귀명창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6시간 소리를 마친 유수정은 아직도 겸손했다. “빼먹지 않고 제대로 하는 완창이라는 것이 결코 욕심으로 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이것이 소리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공부이며, 또한 중간에 나갈까 걱정도 많았는데 이런 무대를 기다리는 많은 청중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앞으로도 의미있는 무대들을 만들겠다”고 했다.


유수정은 작년 춘향제 대통령상을 계기로 소리꾼으로서의 전환기를 맞는 것 같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는 심청가 완창무대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안숙선 명창은 “유수정은 진작에 저렇게 소리에 매달렸어야 했다. 창극단 들어와서부터 저런 옹골진 자세였으면 지금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소리공력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도 결코 늦은 게 아니니 지켜보고 또 도와줄 것이다”며 칭친했다.

a 판소리를 6시간 동안 한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선 공력이 요구된다. 진정 제대로 공력을 쌓았다면 시간이 갈수록 목이 나기 마련. 유수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수려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판소리를 6시간 동안 한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선 공력이 요구된다. 진정 제대로 공력을 쌓았다면 시간이 갈수록 목이 나기 마련. 유수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수려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 김기


유명창의 공연이 열리고 한 시간 뒤, 국립극장의 실험무대 별오름극장에서는 24일에 이어 이틀째 열리는 박성환의 창작판소리2 <우리시대 이야기>가 열렸다. 박성환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 대학을 졸업한 후에 소리길에 들어선 늦깍이 소리꾼이다.

박성환에게 판소리판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만들어내는 창작판소리들이다. 또한 대본구성에도 솜씨를 발휘하고 있어 올해 국립창극단 두 개의 정기공연인 <15세나 16세 처녀>와 <청>의 대본을 짰다.

24일에는 박성환 홀로 창작판소리 ‘대고구려’를 불렀고, 이틀째인 25일에는 동료 소리꾼들에게 창작사설 혹은 곡까지 붙여서 준 소리들을 소개했다. 이날 처음 발표되는 것만은 아니고 전주소리축제 창작판소리 대회 등에서 수상하는 등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로 창작판소리 작가 박성환의 지난 몇 해의 성과들을 정리하는 의미를 가졌다.

a 24일 대고구려, 25일에는 자신이 사설을 쓰고, 아내인 염경애가 곡을 붙인 통일가를 부른 박성환

24일 대고구려, 25일에는 자신이 사설을 쓰고, 아내인 염경애가 곡을 붙인 통일가를 부른 박성환 ⓒ 김기


유수정의 6시간 춘향가, 박성환의 창작판소리 2시간 양쪽 모두 의미와 재미를 듬뿍 주었다. 청중 몇 사람은 양쪽을 오가며 판소리 식성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국립극장 신선희 극장장은 상대적으로 다소 관심이 덜 가는 창작판소리 무대를 찾아 묵묵히 젊은 소리꾼들을 격려하였다. 사실 판소리 귀명창이라면 우선 바탕소리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창작판소리가 193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수행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전통문화 주변환경의 요소들로 인해 창작판소리는 긴 생명력을 갖지 못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관순가>라든가 <똥바다> 등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은 세인의 이목에 연연치 않고 갈 길을 가는 소리꾼들의 고집스러운 행보 덕분이다.

이날 소개된 창작판소리 중 국립창극단 우지용이 부른 1시간 분량의 부자전은 초연으로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문제의 역사성을 친일파로부터 접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설을 두 달 전에 받아 곡을 짜고 300번 가량 불렀다는 우지용은 “국민이 죽어가는데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 시를 쓴다면 그것은 죽은 노래고 죽인 시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 땅과 집이 없어 고통받고 있다. 이 고통 뒤에 숨겨진 친일역사의 단면을 해학과 풍자로 엮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라며 박성환 사설을 들고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a 일제 압잡이가 독립군을 잡아 받은 상금으로 서울 근교 땅을 사 후손이 졸부가 된다는 내용을 담은 부자전을 노래하는 우지용. 그는 국립극장 노조위원장이기도 하다.

일제 압잡이가 독립군을 잡아 받은 상금으로 서울 근교 땅을 사 후손이 졸부가 된다는 내용을 담은 부자전을 노래하는 우지용. 그는 국립극장 노조위원장이기도 하다. ⓒ 김기


이미 소개된 이덕인의 <아빠의 벌금>, 김지영의 <백두산 다람쥐> 역시 시대의 모순과 아픔을 담고 있다. 강원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극화한 <아빠의 벌금>은 부조리극의 형식으로청중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백두산 다람쥐>는 수궁가 형식을 빌어 반전의 내용을 대입하고 있다.

박성환의 판소리 창작작업은 당장은 큰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분명 미래를 위한 중요한 터닦음이고, 종자를 남기는 일에 분명하다. 판소리만해도 신채효가 정리한 12바탕 중 일곱을 잃고 지금은 겨우 다섯만이 전해지고 있다. 정말 판소리가 좋은 것이라면 어떻게 다섯바탕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물론 유파별 차이와 특징이 존재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또한 바탕소리들은 사설 자체가 너무 어렵고,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올드앤뉴가 새의 좌우날개처럼 안정운항을 하기 위해서는 공감 가는 내용과 따라 부르기도 수월한 창작판소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성환에게 그 한쪽의 역할을 버겁겠지만 기대해본다.

a 박성환의 창작판소리에 동참한 소리꾼들, 왼쪽부터 김지영, 우지용, 이덕인, 박성환 그리고 고수 성우경

박성환의 창작판소리에 동참한 소리꾼들, 왼쪽부터 김지영, 우지용, 이덕인, 박성환 그리고 고수 성우경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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