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란의 웃는 춤, 스마일 어게인

춤과 연극의 절묘한 결합에 관객들 흥미 느껴

등록 2006.11.27 19:21수정 2006.11.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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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무용과 연극의 절묘한 만남으로 관객 흥미 끌어낸 권혜란의 <스마일 어게인>

무용과 연극의 절묘한 만남으로 관객 흥미 끌어낸 권혜란의 <스마일 어게인> ⓒ 김기


지난 24일과 25일 인천의 아주 작은 극장에서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권혜란의 흥미로운 실험무대 <스마일 어게인>공연이 조촐하게 열렸다. 흔히 실험하면 자체로써 대단히 난해하거나 파격적인 무엇을 떠오르기 쉬우나 권혜란의 실험은 오히려 그 반대로 쉽고 평이한 무대였다.

권혜란의 드라마댄스라고 불러야 할 작품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을 대충 보면 실험이랄 것도 없다. 오래 전부터 무용과 연극의 결합은 지속적인 시도 속에 놓여 있으며,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는 탄트 씨어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혜란의 드라마댄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연극과 무용의 점이지대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일 어게인>은 권혜란 자신을 포함해 무용수 다섯 명과 연극배우 4명이 출연한다. 무용수가 춤을 추면서 간혹 대사하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배우가 여느 연극처럼 대사도 하고 동시에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는 일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무대예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표현법에서는 언어와 몸짓이라는 상반된 길을 걷기 때문이다.

a 노래와 대사를 맡은 배우들.

노래와 대사를 맡은 배우들. ⓒ 김기


권혜란이 선택한 극장도 흥미롭다. 동사무소 4층에 설치된 학산소극장(용현4동)은 마치 시골 마을회관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객석에 커피를 들고 와도 만류하는 사람 없고, 자율상점처럼 대부분 알아서 자유롭게 관람하는 분위기였다. 관객을 가끔 죄인 취급하는 서울의 고압적 극장분위기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객석조명이 꺼지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무대에서 조율 덜 된 기타소리와 저음의 남성이 ‘트라이 투 리멤버(Try To Remember)’를 부른다. 1절을 거의 다 부를 정도에 조명이 들어온다. 널부러진 드럼통과 낡은 나무벤치에 젊은 남녀가 앉아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용수들이 현대무용 동작을 한다. 그렇게 무용과 연극이 따로 노는가 했더니 점차 이 둘의 존재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묘하게도 배우들은 상호간에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우가 대화투를 쓰고는 있지만 기실 독백이다. 4명의 배우들이 무대 곳곳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30대 중반의 결혼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토로한다. 그와 동시에 무용수들은 그 중간의 공간을 움직이며 춤을 춘다. 그러다가 한 순간 무용수와 배우들은 한데 어우러져 함께 춤을 춘다.

그렇게 폭풍처럼 대사와 몸짓이 거세게 휩쓸고 난 후에 <스마일 어게인>의 안무자 권혜란의 독무가 이어졌다. 잠시 무용인지 연극인지 헷갈리던 관객들에게 공연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심어준 권혜란의 독무는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름다운 선과 그것에 반항하는 역설적 동작을 결합하여 현대적이면서도 고전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복합구성이 돋보였다.


a 선이 아름다운 권혜란의 독무. 춤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조의 발생과 변화가 수행되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원칙은 인간 몸의 아름다운 표현에 있을 것이다.

선이 아름다운 권혜란의 독무. 춤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조의 발생과 변화가 수행되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원칙은 인간 몸의 아름다운 표현에 있을 것이다. ⓒ 김기


그렇게 연극과 무용의 요소가 따로 진행되다가 합쳐지고는 다시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쉽게 다가서게 됐다. 분명 권혜란의 <스마일 어게인>은 무용공연이다. 구성상 연극보다 무용의 요소가 훨씬 더 크기도 하지만, 안무자가 작가로서 만들고자 한 목적의 장르가 연극보다는 무용이다.

1시간 남짓의 공연이 끝나나 관객들은 눈이 휘둥그래져 믿지 못하겠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뭐 이렇게 재미있는 무용공연이 있어?’하는 투가 분명했다.


권혜란을 무용수로 오랫동안 기용했던 한국현대무용의 창시자 육완순 선생이 금요일 공연을 찾았다. 육 선생은 “아주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연극적 요소를 사소하게 다루지 않고 동등한 입장으로 받아드려 관객들의 이해와 흥미를 성공적으로 끌어냈다.”고 평했다.

a 무용수와 배우가 함께 춤을 춘다. 남자는 배우 여자는 무용수. 그 뒤는 반대 구성이다.

무용수와 배우가 함께 춤을 춘다. 남자는 배우 여자는 무용수. 그 뒤는 반대 구성이다. ⓒ 김기


무용은 재미있는 것들 천지인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장르 중 하나이다. 한 해에 수없이 많은 무용작품이 쏟아지지만 연말의 호두까기인형 등 발레를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무용공연을 찾는 일반관객은 무척 드물다.

무용계 식구들끼리 서로 품앗이 하듯이 객석을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현상의 뒤에는 작가주의가 도사리고 있지만, 대중화를 위해서 예술성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권할 수 없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문제는 예술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권혜란의 드라마댄스처럼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법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극뿐만 아니라 얼마 전 서울국제무용축제(시댄스)에서 극찬을 받은 프랑스 낭뜨 브뤼마숑 무용단의 작품처럼 음악가들과의 적극적인 크로스오버를 통해 양쪽의 팬들을 끌어 모으는 것도 가능한 시도이다.

권혜란의 이런 시도는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10년 전부터 연극쪽 안무를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연극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것을 무용에 접목한 새로운 장르적 실험에 이른 것이다. 향후 또 어떤 모습으로 실험을 완성해갈 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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