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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우리에게 세월을 느끼게 한다. 동토의 마른 가지에 연록 잎새들이 피어나는 경이를 우리는 봄이라 한다. 잎새는 자라고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또 햇살을 받아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가을에 잎새들은 조용히 낙하하여 땅에 뒹굴고 마침내 썩어 뿌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기다림의 때를 갖는다. 잎새들이 내려 뒹구는 시간을 우리는 가을이라 한다.
시인 호머는 "사람은 나뭇잎과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비웃는 자나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다 가지이고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이라고 노래한다. 사람을 나뭇잎과 꽃으로 보는 것은 많은 시인들의 노래의 일부이다.
파운드(E. Pound)는 그의 시 '지하철정거장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군중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까맣게 젖은 나뭇가지위의 꽃잎들"(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of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로 노래하고 있다. 아름다운 얼굴들을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에 비유하며, 축축한 검은 가지와 환한 꽃잎의 얼굴과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사람을 꽃잎으로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향가 '제망매가'의 시인은 "이에 저에 떠딜 잎다이 아으 미타샬 맛보올 내 도닦아 기다리고다"라고 읊고 있다. 여기 저기 떨어진 잎새들을 누이를 포함하여 사람들로 비유하고 있다.
가을은 사람이 한 꽃잎, 한 잎새인 것을 느끼게 한다. 낮아져 겸허하고 그 외로움을 자신은 물론 남과 같이 하게 한다. 존재를 나누고 외로움을 나누게 한다. 가을은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에게 "가을 깊은데/옆방은 무엇하는/ 사람인가"라고 노래하며 자신의 근원적 고독을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나누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할 것이다.
가을을 흔히 독서와 사색과 결실의 계절이라 한다. 천고마비와 등화가친의 계절이기도 하다. 옷깃을 다소 세운 멜랑콜리한 분위기와 한 잔의 진한 커피나 독한 위스키나 럼주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일상과 퇴락의 시간들과 친숙하여 생동감이 줄어든 공간보다는 약간 낯설고 엑조틱한 분위기, 그것이 비싼 것이 아니라도 새로운 곳으로의 일탈을 생각하기도 한다. 균형 속의 파격이라고 우겨보기도 한다. 헐렁한 외투 사이로 찬바람이 불어들어 오면 갑자기 어린 유년의 생각과 고향의 뒷동산이 그리워지고, 어머니와 잊혀진 옛사랑의 기억을 되뇌이게 된다.
어느 늦가을 나는 연병장의 한 모퉁이를 쓸어가는 많은 낙엽들의 군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여가수의 '옛 시인의 노래'를 전율하며 듣고 있었다. "마른 나무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그대가 나무라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우리들의 사이엔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요/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 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젊은 날 밤이면 한 잔의 술을 마시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를 읊곤 한다.
낙엽지는 만추의 가을은 우리에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여름과 아슴한 추억의 옛일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열심히 일만하던 개미 쳇바퀴의 일상에서 약간의 일탈과 균형 속의 파격으로 베짱이의 노래를 찾아보려는 방랑과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은 영원히 가을이여라"고 외치던 한 시인처럼 처연한 존재의 회의를 느끼는 계절이 이기도하다.
낙엽은 만상에 자연의 법칙이 있음을 알려주고, 이에 순응하는 인간과 만물의 길을 보여준다. 낙엽은 우리를 겸허하게 하며, 기도하며 사색하게 한다. 다가올 겨울과 또 봄을 그리고 지난 여름을 느끼고 대비하게 한다. 동시에 가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움켜지고 감추는 것의 허위를 나무와 낙엽에서 배우게 한다.
낙엽지는 이 가을에는 푸른 하늘 휘돌아가는 바람을 느끼며 먼 유년의 옛날을 생각해 볼일이다. 스러져가는 햇살들을 모아 오롯이 영그는 결실을 기다릴 때이다. 열락과 광휘의 시간들을 주어 모아 내밀히 안을 들여다보고 깊은 침잠과 인동의 겨울을 준비할 때이다. 잎만 무성히 가을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이기보다 열매 풍성한 가을나무이기를 바라자. 차라리 조금은 훌훌 벗고 나나히 나나히 바람과 알몸으로 자유로이 서걱이는 벗은 나무이기를 바라자. 뒹굴며 노래하는 낙엽들의 군무와 노래를 들으며 더 높이 날아오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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