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수 추풍낙엽은 왜 생길까

나무의 겨울나기 준비... '저온 스트레스' 줄이고자 잎 떨어뜨리고 몸 최소화

등록 2006.11.28 16:34수정 2006.11.2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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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8일 낙엽에 뒤덮여버린 차량들 ⓒ 최미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색을 뽐내던 단풍잎들이 싸늘해진 바람결에 맥없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있다. 다정히 팔짱을 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연인들이나 책갈피로 삼고자 찢기기 않은 은행잎을 주워드는 여인네들에게는 한없이 낭만적인 가을 끝자락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작 반나절을 주차시켜 두었을 뿐인데 은행잎을 뒤집어쓰고 샛노랗게 변해 버린 차 때문에 우왕좌왕해 본 사람들이나 쓸어도 쓸어도 다시 거리 곳곳에 수북이 쌓이는 낙엽을 지켜봐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황 아무개(52)씨는 혹여 낙엽에 미끄러져 안전사고를 당하는 아이가 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용케 미끄럼틀 위까지 자리 잡고 앉아있는 낙엽들을 끌어내린다.

가을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낙엽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아무리 아기 손같이 연약한 단풍잎이라지만 그렇게 쉬이 나뭇가지를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뭇잎 속에는 엽록소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오렌지와 황색의 색소군인 카로테노이드(carotenoid)계의 카로틴(carocene), 크산토필(Xanthophyll), 자주색이나 청색 같은 강렬한 색을 띠는 플라보노이드(flavonoid)계의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도 들어있다.

단풍과 낙엽에 담긴 '호르몬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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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8일 유치원 앞 미끄럼틀에 흩뿌려진 은행잎 ⓒ 최미화

가을이 되어 엽록소가 분해되어 버리면, 엽록소 색소보다 더 안정성이 높은 카로테노이드 색소가 가을 낙엽의 특징인 눈부신 오렌지와 황색을 띠는 이유가 된다. 안토시아닌이 많은 단풍잎은 붉어지고, 카로틴이 많은 은행잎은 노랗게 변하게 된다. 엽록소가 사라지고 잠시 동안 카로테노이드 색소로 남아 있다가 탄닌계 물질들이 많이 생성되면서 갈변이 되면 갈색 낙엽으로 채색되기도 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의 생체활동도 호르몬으로 조절된다. 호르몬은 합성 부위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농도가 아주 낮더라도 생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절 화합물이기에, 몇 미터나 되는 큰 키의 나무들에게도 호르몬의 신호는 절대적이다.

식물 호르몬에는 생장촉진호르몬인 옥신(auxin), 사이토키닌(cytokinin), 지베렐린(gibberellin)과 생장억제호르몬인 에틸렌(ethylene), 아브시스산(abscisic acid)이 있다. 이 중 에틸렌은 잎의 탈리(식물이 성장 억제 호르몬 등을 분비하여 잎, 꽃, 씨, 열매 따위를 떨어뜨리는 것)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많은 식물종의 잎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쇠하다가 겨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즉 요즈음처럼 기온이 섭씨 5℃ 이하로 내려가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온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무는 저온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증산작용으로 수분을 많이 소모하는 잎을 떨어뜨리고 몸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휴면 물질인 아브시스산을 축적하고 에틸렌을 발생시켜, 능력이 없는 잎부터 엽병(잎자루)을 조르기 시작한다.

엽병 아래 부분에 잎의 목구멍 같은 탈리층이 있는데, 전분이 침전하면서 이곳의 양분 통로를 막아버린다. 결국 잎에는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잎은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무에서 떨어지고 만다.

환경의 신호에 무엇보다 예민한 이들은 에너지와 양분을 조금 더 종자에 쏟아 붓기 위해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거리를 붉게 물들인다. 내년 봄에 찬란하게 피어나 뜨거운 여름날 매미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드는 셈이다.

꽃잎이 쉽게 떨어져 버리면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화훼업자들은 묽은 티오 황산은염 용액을 잎에 뿌리며 막 잠에 들고자 하는 잎들을 깨운다. 은염은 에틸렌 수용체와 직접 작용하여 에틸렌의 작용을 억제하며, 그 결과 노쇠를 지연시켜 더 오랜 기간 동안 제품이 팔리도록 한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싫어서일까. 굳이 화훼업자가 아니라 해도 아기 단풍잎에 힘을 실어주고픈 11월말의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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