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멍멍이 변천사

등록 2006.11.28 16:14수정 2006.1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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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는 목적은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 처치하거나 집 지키는 용도로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강아지를 그것도 집안에서 사는 애완견을 키우게 된 사연은 아주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91년이었던가? 친구가 느닷없이 강아지 한 마리 키우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했다.

"우리 집 모모가 강아지 다섯 마리를 낳았거든. 그래서 한 마리 남기고 모두 분양을 했는데 아 글쎄 우리 올케가 똥오줌 못가려 싫다고 한 달만에 되돌려 보냈단다. 너 그 놈 가져다 키우지 않을래?"

"그 후라이팬으로 두둘겨 맞은 것처럼 코 납작한 놈?"

"그래. 그 놈이 퍼그란 종자야. 중국 황실 애완견 출신이라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이름을 아롱이, 다롱이, 초롱이로 지어줬는데 쫒겨 온 놈은 초롱이란다."

길바닥에 오가면서 몇 번 본 퍼그종은 볼따구가 축 처진 게 꼭 심술단지 놀부 마누라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단칼에 거절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친구 소개에 따르면 이 퍼그 새끼 값이 암컷은 30만원을 육박하고 수컷도 15만원은 받는다니 우선 돈욕심이 덜컥 생긴 까닭이다.


차마 친구가 키우라고 준 것을 냉큼 받아와 팔아 먹을 수는 없지만 성견이 되면 애견센타에 암컷 파트너로 출장 서비스를 보낼 수 있지 않다던가. 한 번 교배에 10만원은 받을 수 있다니 잘 키운 종견 하나 똥개 100마리 부럽지 않을 터였다.

좁은 아파트에 무슨 애완견이냐고 펄펄 뛰는 남편의 상대역으로 아이들을 동원했다. 강아지 데려오지 않으면 밥을 굶겠다는 새끼들 앞에 버텨봐야 며칠 가겠는가. 과연 내 계산대로 방방 뛰는 두 새끼 앞에 남편은 이틀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아이들 대동하고 당장 친구집으로 달려가 초롱이를 인수했는데 첫번째 집에서 쫒겨나면서 가져온 가재도구 일체가 공짜로 따라왔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꼴이었다. 이굴루 같이 생긴 강아지 집, 밥그릇, 핧으면 물이 쪽쪽 나오는 물통, 삼푸, 빗... 어디 그것뿐이랴. 옷도 3벌에다 양말까지 갖춰 있었다.

세상에 어떤 여편넨지 돈도 많네. 사람 새끼도 이렇게 갖춰 키우기 어려운데 강아지 새끼를. 난생 처음 본 강아지 혼수감이 너무 엄청나 흡사 딴 세상 같았다. 어쨌든 초롱이를 맞은 우리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고 나도 길거리에서 본 퍼그종보다는 훨씬 귀엽게 생긴 초롱이가 마음에 들어 그때부터 즐거운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행복한 동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선 털이 짧은 퍼그종의 문제가 장난이 아니었다. 짧은 털이 온 집안에 휘날려 옷이면 옷, 이불이면 이불 집안 전체가 초롱이 털로 뒤덮였다. 기관지 약한 아들놈의 바튼 기침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게다가 생기기는 귀엽게 생겼는데 어찌나 미련맞은지 제 똥 제가 먹는 놈이었다.

한 번 쫒겨 온 것을 제 새끼 소박맞은 것처럼 속상해 하던 친구. 그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키워야 하는데 잔기침 해대는 아들놈 생각하니 묘책이 없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채 두 달이 안돼 나는 눈 딱감고 초롱이를 후배집에 떠맡겼다.

두 번이나 파양을 당하는 초롱이 신세가 가슴 아프기는 나도 매일반이라 후배한테 잘 키워 달라고 사정사정 했는데 이 놈 복쪼가리가 약에 쓸래도 없었는지 그 집에서도 몇 달 못 버티고 또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마지막 입양처인 수영 코치 집에서 엄청 사랑을 받고 게다가 수영까지 배워 애견수영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단다.

남편이 아이들과 박자 맞춰 공모한 사건은...

초롱이 죽기 한달 전 사진
초롱이 죽기 한달 전 사진조명자
두번째는 96년도 일이다.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한 지 두어달 됐을까? 남편이 갑자기 산책이나 나가자고 꼬셔 데려간 곳이 애견센타였다. 아파트 인근지역 넓은 공터에 임시로 지은 막사. 애견센타 이름이 '베토벤'이었다. 강아지 구경이나 하자길레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나섰더니 웬걸? 남편의 의뭉한 속셈이 곧바로 드러났다.

가뜩이나 강아지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들을 앞세워 귀떼기와 꼬리에 분홍물을 들인 말티즈 새끼 앞에 진을 쳤다.

"야, 조 놈 참 이쁘다. 자경아, 인장아 저 강아지 정말 귀엽지?"

당연히 아이들은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남편을 그런 아이들과 박자를 맞추며 나를 흘끔흘끔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셋이 공모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보, 강아지를 키우면 아이들의 정서에 그렇게 도움이 된대. 우리 이 놈 사면 어떨까?"

그러더니 내 의견은 들은 척도 않고 카드를 턱 꺼내 15만원을 할부 10개월로 긁는 것이었다. 참 살다살다 강아지 할부로 사는 인간은 처음 봤다. 그때부터 울화통이 치밀어 눈이 곱게 떠지지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한번만 안아보라고 난리를 치는 강아지를 옆으로 휙 떠밀쳐 버리며 구박을 했더니 아 며칠 후부터 이 강아지새끼가 앓아눕는 것이었다.

사람처럼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지 비실비실 엎어져 있는 게 꼭 죽을 것처럼 보였다. 할부가 시작도 안했는데 죽으면 어쩌나? 정신이 번쩍 들어 아픈 놈 끌어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세상에 제일 꼴불견이 길바닥에서 강아지 끌어안고 입 쪽쪽 맞추는 그런 여자들이었는데 내가 그 짝이 났다니.

주사 맞고 약 타고. 얼마예요? 물었더니 1만5000원이란다. 아, 머리통에서 스팀이 뿜어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 진료비도 몇 천원이면 족한데 강아지 치료비에 기만원이라니. 꼭 사기당한 기분이라 한 번 더 오라는 걸 무시했더니 이 놈이 다시 도졌다.

애면글면 품에 끌어안고 병원 나들이를 하는 동안 정이 들었는지 그때부터 나의 초롱이 사랑은 아무도 못말렸다. (아이들이 첫번째 정을 못잊어 둘째 놈도 초롱이로 지었다) 우리 네 식구의 초롱이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던지 초롱이를 본 수의사들이나 애견센타 주인들은 첫 마디가 "이 놈 엄청 사랑받고 사네"였다.

그런 놈이 6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초롱이를 잃은 상실감이 얼마나 컸던지 한 일년간 무진장 마음고생을 했다. 말티즈 종자만 보면 초롱이 생각이 나 눈물을 주체 못했다. 이별이 너무 힘들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골로 이사 와 진돗개 '몽이'를 다시 키운다.

몽이의 망중한
몽이의 망중한조명자
몽이도 주책없는 주인의 사랑이 차고 넘쳐 제 놈이 마치 사람인 줄 착각하고 사는 놈이다. 주인 말도 안 듣고 제 멋대로 응석 부리고. 무슨 진도개가 이 모양이냐고 다른 놈으로 바꾸라고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하지만 우리 식구들의 몽이 사랑은 가히 병적일 정도다.

지난 여름에는 이 말썽꾸러기가 '사상충'에 감염됐다. 아는 수의사는 치료비도 엄청 들고 그냥 놔둬도 2~3년은 갈테니까 대충 그냥 놔두라고 했지만 죽어가는 놈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있나. 해서 그 큰 놈을 대학 부설 동물병원으로 끌고 가 거금을 들여 기어코 고쳐놨다.

그 놈의 정이란 게 무서운 것이라 하찮은 동물이라도 내 식구면 사람과 진배가 없는 것 같다. 무슨 개새끼한테 그렇게 정을 주냐고 사람들이 타박을 하면 이렇게 말한다.

"그런 소리 말아요. 우리 몽이가 우리 막내인데. 이 놈 없으면 외로워서 못살아요."

뭘 찍어쌓고 난리야...주둥이가 댓발 나온 몽이
뭘 찍어쌓고 난리야...주둥이가 댓발 나온 몽이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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