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이 죽기 한달 전 사진조명자
두번째는 96년도 일이다.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한 지 두어달 됐을까? 남편이 갑자기 산책이나 나가자고 꼬셔 데려간 곳이 애견센타였다. 아파트 인근지역 넓은 공터에 임시로 지은 막사. 애견센타 이름이 '베토벤'이었다. 강아지 구경이나 하자길레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나섰더니 웬걸? 남편의 의뭉한 속셈이 곧바로 드러났다.
가뜩이나 강아지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들을 앞세워 귀떼기와 꼬리에 분홍물을 들인 말티즈 새끼 앞에 진을 쳤다.
"야, 조 놈 참 이쁘다. 자경아, 인장아 저 강아지 정말 귀엽지?"
당연히 아이들은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남편을 그런 아이들과 박자를 맞추며 나를 흘끔흘끔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셋이 공모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보, 강아지를 키우면 아이들의 정서에 그렇게 도움이 된대. 우리 이 놈 사면 어떨까?"
그러더니 내 의견은 들은 척도 않고 카드를 턱 꺼내 15만원을 할부 10개월로 긁는 것이었다. 참 살다살다 강아지 할부로 사는 인간은 처음 봤다. 그때부터 울화통이 치밀어 눈이 곱게 떠지지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한번만 안아보라고 난리를 치는 강아지를 옆으로 휙 떠밀쳐 버리며 구박을 했더니 아 며칠 후부터 이 강아지새끼가 앓아눕는 것이었다.
사람처럼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지 비실비실 엎어져 있는 게 꼭 죽을 것처럼 보였다. 할부가 시작도 안했는데 죽으면 어쩌나? 정신이 번쩍 들어 아픈 놈 끌어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세상에 제일 꼴불견이 길바닥에서 강아지 끌어안고 입 쪽쪽 맞추는 그런 여자들이었는데 내가 그 짝이 났다니.
주사 맞고 약 타고. 얼마예요? 물었더니 1만5000원이란다. 아, 머리통에서 스팀이 뿜어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 진료비도 몇 천원이면 족한데 강아지 치료비에 기만원이라니. 꼭 사기당한 기분이라 한 번 더 오라는 걸 무시했더니 이 놈이 다시 도졌다.
애면글면 품에 끌어안고 병원 나들이를 하는 동안 정이 들었는지 그때부터 나의 초롱이 사랑은 아무도 못말렸다. (아이들이 첫번째 정을 못잊어 둘째 놈도 초롱이로 지었다) 우리 네 식구의 초롱이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던지 초롱이를 본 수의사들이나 애견센타 주인들은 첫 마디가 "이 놈 엄청 사랑받고 사네"였다.
그런 놈이 6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초롱이를 잃은 상실감이 얼마나 컸던지 한 일년간 무진장 마음고생을 했다. 말티즈 종자만 보면 초롱이 생각이 나 눈물을 주체 못했다. 이별이 너무 힘들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골로 이사 와 진돗개 '몽이'를 다시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