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를 오가는 유목민의 부동산

[리뷰] 3년만에 열리는 서도호 개인전

등록 2006.11.29 17:17수정 2006.11.3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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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 바람 불어와 끝없는 모험이 시작됐지요 ♪" 현대한국판 오즈의 마법사를 연출하는 설치 작품이 전시됐다. 소격동 선컨템포러리가 개최한 설치미술가 서도호(1962~)의 선(選)미술상 기념전이다.

회오리 바람을 타고 날아간 한옥이 뉴욕의 아파트에 충돌, 이식된 채로 뿌리를 내려 자리 잡는 과정을 5개 장으로 엮었다. 내년 9월 경 동화집으로 출간될 예정인 연작이다. 이 가운데 완성된 1, 4, 5장을 선보였다. 1999년 작품에서 장소를 바꾸어 이동하는 한옥이 얇은 은조사의 천으로 제작됐듯이, 서동호가 연출하는 집은 쉽게 이동 가능하고, 문화적 경계를 흩뜨리며, 합체와 분리가 가능하다.


서울대에서 동양화 석사를 받은 서도호는 미국으로 이주해 서양화로 학부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로 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 뉴욕, 첫 개인전을 가졌다. 다음 해의 베니스 베인날레, 2년 후의 이스탄불 비엔날레 등을 거쳐 스페인의 마드리드, 핀란드의 케미, 그리스의 아테네, 네덜란드의 틸부르흐, 스웨덴의 예테보리, 이탈리아의 토리노, 일본의 가나자와 등 전 세계를 돌며 활발한 전시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활동은 세계를 누비는 현대인의 유목민적 기질을 담는다고 평가받는다.

a Fallen Star: Wind of Destiny, Variable dimension, Styrofoam/ resin, 2006

Fallen Star: Wind of Destiny, Variable dimension, Styrofoam/ resin, 2006 ⓒ 김홍주선

외부의 기후 변화와 짐승들의 공격을 막아주고 사생활을 보장하는 튼튼하고 안전한 '나만의 집'을 가지려는 염원은 굳고도 깊다.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땅과 집을 전시하는 전통은 1만년 전 농업과 함께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시대의 조상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로 인류는 더 튼튼한 재료를 찾아냈다. 대한민국 최대의 히트상품이라 일컬어지는 "아파트"는 거대한 골격을 자랑했으며, 모 팰리스는 번쩍번쩍 빛나는 철갑옷을 두르고 우뚝이 서서 한국의 부촌을 상징한다.

움직이지 않는 재산, 확실한 투자, 부동산(不動産)이여! 집의 단단함이 내부의 안락함을 보장하는 만큼, 집 밖의 존재는 불안함을 체감한다. 경계가 확정되고 세습되면 경계 밖의 부박함도 세습된다. 그래서 땅을 잃은 자, 집을 잃은 자의 이야기는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거듭되어 이야기 된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살 곳을 찾아 정든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 자들. 기형도는 <조치원>에서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라고 썼다.

지구촌 사람들이 정보화 물결을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고 한다. 그러나 사적인 영역을 지키는 집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 첫번째 장 에서 한옥을 들어올린 회오리바람의 크기는, 한반도의 토지에 드리운 가족의 뿌리와도 같다. 서도호의 집이 불시착한 뉴욕의 아파트 역시 드러나지 않은 뿌리를 지반 아래 드리우고 있다. 그런 까닭에 단단한 경계에 저항하고 이국의 낯선 땅에 뿌리박는 도전은, 발칙한 충돌로 드러난다. 전작에서 천막을 사용해 한옥을 표현했던 그가 성북동 저택의 단단함을 그대로 옮겨서 뉴욕의 아파트를 들이받는다.

a Fallen Star : A New Begging(1/35th Scale), 2006

Fallen Star : A New Begging(1/35th Scale), 2006 ⓒ 김홍주선

집이 가진 권위를 조롱하는 상상력은 페루의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연상케 한다. 농민들을 착취해 대지주의 인생을 일군 에스테반은 '모퉁이 큰 집'을 짓는다.


"트루에바의 적자들로만 이루어진 대가족이 몇 세대에 걸쳐 천년만년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고전 스타일은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편의 시설을 갖춘 미국과 유럽 식의 새로운 저택들처럼 집을 짓기를 원했다."

그러나 부인 클라라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낮잠 자는 동안에 서로 얘기할 수 있도록 방 사이에 뚫은 구멍 모두 그때그때 클라라의 영감에 따라 추가되었다. 클라라는 새로 손님이 와서 묵어야 할 때마다 앞뒤 고려하지 않고 아무 데나 방 하나를 더 들이도록 했다. 제대로 매장되지 않은 시신이 있다고 귀띔해 주면 클라라는 그냥 벽 하나를 부숴버렸다. 결국 저택은 청소조차 불가능한 마법의 미로로 바뀌었으며, 국가와 도시의 법령을 한껏 무시한 무허가 주택이 되었다."

클라라가 무허가 주택으로 대저택을 변형시켰듯이, 서도호의 집은 아예 여기에 주저 앉겠다는 의지로 수염뿌리를 착실히 내리고 있다. '집'의 텃세를 조롱하는 상상력이 매순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실제 건축물을 1/8, 1/35로 정교하게 축소하여 실물을 재현한다. 서도호의 아버지는 한국 미술계의 원로화가 서세옥으로 유명한데, 서도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창덕궁 내 99칸 사대부 가옥인 연경당의 사랑채를 본떠 한옥을 짓는 작업을 목격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힌다.

a Fallen Star: Epilogue, Variable dimension, Styrofoam/ resin, 2006

Fallen Star: Epilogue, Variable dimension, Styrofoam/ resin, 2006 ⓒ 김홍주선

의 전시관 1층 위에는 회화와 드로잉이 액자에 댐겨 걸린다. 가운데에는 "Go away, Leave me alone, Welcome back, I missed you"의 문구가 폴리우레탄 고무로 제작된 깔판에 새겨져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작은 사람들이 특정 포즈를 취하고 수없이 모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환영과 배제의 상반되는 메시지는 이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드는 일종의 기운(氣雲)인 셈이다. 집을 들어설 때의 정착과 떠남, 경계의 열림과 닫힘은 어느 집의 문 앞에서나 마찬가지다.

a 도어매트 4장

도어매트 4장 ⓒ 김홍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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