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미항. 김남희와 박상규의 그림자.김남희
[이 여자 김남희] "우리 이미 죽은 거야?"
이럴 줄 알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내 마음은 다시 라이더로 복귀했는데 내 몸은 문지방 넘을 힘도 없는 노인이다.
끙끙거리며 페달을 밟는 나를 본 이 남자, 아직 몸이 안 풀려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 내 몸은 내가 안다. 이건 안 풀려서가 아니라 너무 풀려버린 탓이다. 내 말을 듣지 않는, 기운을 쓰지 못하는 이 다리로 다시 자전거를 타야 하다니!
다행히 약간의 오르막을 거치고 나니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을 미끄러져 내려오니 첫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서귀포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왕복 3차선 도로에서 좌회전을 해 12번 도로로 진입하는 고난도의 테스트다. 넓은 도로에서의 첫 좌회전이라 몸이 굳어오고 있다.
"선배, 차 와. 오른쪽으로 붙어요."
"응? 뭐라고?"
그때 난 이미 좌회전을 위해 1차선 쪽으로 자전거를 튼 상태였다.
"안 들려! 뭐라 그런 거야?"
"오른쪽으로 붙으라니까!"
이 남자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고 높아진다. 내 몸이 다시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들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반대로 노는 경지다. 머릿속으로는 오른쪽인데 자전거는 왼쪽으로 가고 있다. 요란스러운 빵빵거림이 들려온다. 결국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도로 한 가운데 서 버렸다.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내게 뭐라고 외친다. 돌아보니 거대한 트럭이다. 길을 건너온 이 남자가 말한다.
"선배, 그거 알아? 우린 이미 죽은 거야."
"근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그거야 저 운전자의 엄청난 관용과 양보 정신 때문이지."
휴, 죽을 뻔 했다. 도대체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긴장 상태를 견뎌내는 걸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신례리를 향해 달려가는 길. 이 남자가 외친다.
"앗, 라이더다."
"진짜? 어디?"
"저기 왼쪽 길 건너편."
그동안 얼마나 찾았던 동료 라이더인가. 반가움에 고개를 한껏 빼고 두리번거린다. 왼쪽이라고? 짐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계신 동네 할아버지다.
"야, 너 죽을래?"
"왜? 진정한 라이더잖아."
그래, 어쩌면 저분들이야말로 이 남자의 말처럼 운동과 일, 삶과 여가가 일치된 경지의 진정한 라이더인지도 모른다.
'라이더의 가장 위험한 적' 개떼들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