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국제 분쟁에 관해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자료사진)백악관 홈페이지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의제로 삼자고 먼저 제기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북한은 작년 7월 9일 김계관-크리스토퍼 힐 회동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고, 1단계 4차 회담 직전인 7월 2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화체제 구축 필요성을 공식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북한의 요구를 접한 미국은 4차 6자회담을 앞두고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 6자회담과 별도의 포럼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협의할 의사가 있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평화협정 문제가 6자회담에서 거론된 것은 북한이 원하니까 미국측이 그럴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인센티브를 먼저 제시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요구한 상응조치 가운데 하나를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결과 평화협정 체결 사이의 선후 문제를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평화협정의 체결 조건으로 '북한의 선 핵폐기'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 이는 일단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 북한의 핵실험 및 미국 중간선거에서의 완패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일방적 핵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해왔다.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의 선행조건으로 핵폐기를 고수한다면,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평화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 역시 '립 서비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북한의 핵폐기는 북한이 전적으로 협력하더라도 3년 이내에 끝낼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핵 전문가의 분석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부시 대통령의 임기는 2년 2개월을 남겨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폐기를 어느 수준으로 상정하고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핵폐기)'를 평화협정 체결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를 북한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이에 반해 핵폐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 시기나 '핵폐기' 진행 과정에서 평화협정 상정하고 있다면, 이는 대북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며, 줄곧 '동시 행동'을 요구해온 북한과의 접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러한 입장 변화의 징후를 보인 적은 없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특히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변화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