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댁 따님이 장군의 아들에게 시집간다네

[태종 이방원 4] 평생 혁명 동지와의 만남 ①

등록 2006.12.02 16:52수정 2006.12.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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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산 골짜기가 떠들썩한 결혼식

개경의 진산이 송악이라면 안산은 용수산이다. 북쪽의 송악산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외로운 산이라면 남쪽의 용수산은 뭐든지 받아 줄 것 같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산이다. 개경의 중심 번화가 십자로에서 연복사를 지나 회빈문으로 가다보면 민제의 집이 있다. 훗날 본궁으로 불리는 민대감 댁이다.


용수산 골짜기가 떠들썩하다. 열일곱 살 대감댁 둘째 딸이 시집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신랑은 두 살 아래 열다섯 살. 장군의 아들이란다. 무반 집 다섯째 아들답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 신랑감이다. 그것도 무과가 아니라 문과에 붙어 장래가 촉망되는 훌륭한 신랑감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잘 생겼으리라 믿고 싶다. 그래도 가슴이 설렌다. 어떻게 생겼을까? 잘 생겼을까? 못 생겼을까? 하지만 못생겼어도 가야하는 시집길이다. 부모님이 그것도 아버지가 맺어준 배필인데 거역할 수가 없다.

예의판서 민제. 신부의 아버지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과거 급제하여 국자직학(國子直學), 판전의사(判典儀事), 지춘추사(知春秋事), 판소부시사(判小府寺事)를 거치며 잘 나가는 관료다. 이색, 정몽주, 이숭인과 같은 석학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실력 있는 유학자다. 이렇게 명망 있는 민대감 댁 둘째 딸이 무반(武班)댁에 시집을 간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대감댁 따님이 장군의 아들에게 시집간다네

당시 유학자들은 무반을 한수 아래로 봤다. 특히 성리학에 심취한 학자들이 더했다. 의(義)를 숭상하고 도덕(道德)을 지상 최대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성리학자들의 입장에선 무반은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불의(不義)를 알면서도 명령이라는 이름하에 합리화하는 무인(武人)들을 하위개념으로 평가 절하했다. 모르고 저지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과거에 급제한 신랑이 친영을 나왔다. 북방을 침범하는 여진족과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도망간다는 장군 집 아들이다. 말 그대로 장군의 아들이다. 선죽교 건너 안정방 어배동 신랑 집에서 왔으니 30여 리를 말 타고 왔다. 판서 대감댁 앞마당에 초례청이 설치되었다. 여염집 혼례와 달리 유학자 대감댁 혼례는 격식이 엄격하고 절차가 까다롭다.

잘 나가는 대감댁 혼례라 온 동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신부댁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사람들로 메워졌다. 과거에 급제한 장군의 아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다. 기러기 한 마리를 싼 보자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신랑 집(훗날 목청전)에서 나온 사람이 앞장섰다.


대감댁에서 마중 나온 처남의 안내를 받으며 꼬마신랑이 대문을 들어섰다. 구경나온 사람들이 '장군의 아들이 어떻게 생겼나?' 호기심 어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무질이도 넋을 놓고 쳐다보느라 콧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다.

장군의 아들이라서 그런가? '잘 생겼네'

옆에 선 아낙이 "너의 매형 될 사람이야"라며 옆구리를 찔러도 누나하고 매형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잔치가 좋을 뿐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다. 며칠 전부터 장만한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군침이 돈다. 이렇게 만난 음식을 먹게 해준 매형이 고마울 뿐이다. 훗날 그 매형의 손에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멍석 위에 돗자리를 깔고 마련한 대례청에 신랑과 신부는 시선을 내리깔고 마주 섰다. 전안위(奠雁衛)에 기러기를 올려놓고 꼬마 신랑이 두 번 절을 했다. 전안례다. 대감댁 할멈이 기러기 보자기를 치마로 감싸듯이 받아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시루로 엎어 놓는다. 치마로 감싸는 것은 다산을 기원하며 떡 시루는 장수를 바라는 축원이다.

신랑신부 교배례가 이루어졌다. 맞절이다. 신부의 절은 다소곳하고 고왔지만 신랑의 절은 거칠었다. 아버지가 전장을 떠돌다 보니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랑신부가 합근례를 치르고 잔치가 벌어졌다. 대감댁 잔치라 그런지 먹을 것이 많다. 산해진미가 그득하다.

풍악이 울려 퍼지고 마당 한쪽에선 무희패가 재주를 넘느라 요란하다. 여기저기 잔칫상을 받아든 동네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신랑이 잘 생겼다" "신부가 손해 보는 것 같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진다. 서문 밖 거지들도 몰려오고 예성강 나루터 떨거지들도 몰려왔다. 대감댁 잔치는 먹을 것이 많다고 소문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잔칫집에선 가리지 않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상 거하게 차려준다.

관상의 대가 하륜을 불러 신랑의 관상을 보니

"그래, 어떻게 보았소? 말 좀 해 보시구려 하공."

하륜과 주안상을 마주한 신부의 아버지 민제가 마른 침을 넘기며 채근했다. 궁금하고 답답하니 빨리 얘기를 해달라는 뜻이다. 하륜은 민대감이 오늘 혼례에 신랑의 관상을 봐 달라고 특별히 초대한 손님이다.

고려 말 혼란기에 도참설이 극성을 부렸다. 개경의 지기가 다 되었으니 천도를 해야 하고 누구는 조상의 묘를 이장하여 입신출세했다는 등 벼라 별 설과 소문이 횡횡했다. 이러한 개경에 도참 3대가가 있었으니 권중화와 하륜 그리고 무학대사였다. 권중화는 왕릉을 관리하는 조정의 관리였고 무학대사는 정처없이 떠도는 스님이었다.

하륜은 공민왕 때 문과 급제하여 감찰규정과 고공좌랑을 거쳐 풍수지리와 관련이 없는 밀직사 첨서사로 있었지만 도참설의 대가였다. 훗날 한양천도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특히 풍수도참 외에 관상에 정통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민대감이 하륜을 특별히 초대한 것이다.

귀 좀 빌려주세요

"우선 따님의 혼례를 경하드립니다."
그리고 말이 없다. 하륜의 입을 바라보고 있던 민대감이 답답하다는 듯이 안절부절이다.

"자, 자. 내 술 한 잔 더 받으시고 어서 말해 보구려."
민대감이 하륜의 술잔에 그득히 술을 친다. 입가에 웃음을 흘리던 하륜이 술잔을 받쳐 들고 단숨에 목으로 털어 넣는다.

"대감 나으리 귀를 좀 빌려 주셔야겠습니다."
술잔을 내려놓은 하륜이 민대감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 무슨 귓속말씩이나?"
"이 얘기는 천기를 누설하는 말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륜이 정색을 하자 민대감이 귀를 하륜에게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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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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