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가 아이를 키운다"

[서평] 박영숙의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등록 2006.12.03 08:53수정 2006.12.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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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그리고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걸까. 우리는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때는 그 말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관념으로만 그렇다고 여길 뿐,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위한 책읽기가 즐거울 리 있겠는가. 방학이면 꼭 책을 몇 권 읽고 독후감 숙제를 해야 했고, 일기도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고 써야 해서 일기 쓰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매일이 아니라 며칠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몰아서 일기를 쓰며 몸과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을 놀이가 아닌 숙제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목적이 있는 책읽기는 잘 되지 않는다. 목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책을 읽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해서 내게도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책을 두고 독후감을 쓰라면 당연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단지 줄거리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면 백이면 백 그런 책을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는 힘들 것이다. 독후감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쓸 때, 바로 진정한 독후감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책 속에서 책과 함께 놀기

저자는 바로 그런 점에 착안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놀이로 책을 접하게 하는 것, 처음에는 책을 읽지 않고 여기저기서 장난만 치더라도 언젠가 다가와 책을 읽어달라고 조그만 입을 오물거릴 수 있게 만드는 힘, 바로 그것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흔히 조용히 앉아서 책 읽는 모습을 상상하기 쉬울 텐데,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다르다. 아이들의 도서관이니만큼 책을 읽다가도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오밀조밀 모여 여러 가지 놀이도 한다. 매주 수요일이면 ‘이야기극장’을 열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잘 안다. 어떻게 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도, 그러니까 어른들이 무섭게 혼을 내고 심지어 매를 드는 건 그다지 쓸모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 아이들인데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를 혼내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릴 때마다 지금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면 꼭 그리 효과가 있을 성싶지 않다.


혹시 그렇게 해서 예의 바른 아이가 된다고 해도 나 같으면 오히려 그걸 참기 힘들 것 같다. 그건 아이들에게 힘으로 누군가를 억누르고 거기에 맥없이 따라가는 관계를 가르치는 셈 아닌가. 차라리 제 감정을 못 이겨 화풀이를 한 거라고 털어놓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셈이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진짜 용기다." (122~123쪽)


아이를 기르다 보면 화낼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려고 해도 힘든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저자에게도 힘든 일이 많아보였다. 이혼이나 빈곤의 이유로 방치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아이, 사랑을 받지 못해 엇나가는 아이들을 거두며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단다.

‘목숨을 지니고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 권리를 누릴 환경을 만드는 게 바로 어른들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저자는 기실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제 아이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운 마당에 동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며 책과 친구가 되도록 힘쓴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타고난 호기심에 굳은살이 박이기 전에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할 수는 없을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전에 어울리는 기쁨을 누리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이 오늘의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나고 보면 누군가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물음을 가끔 할 때가 있다. 최소한 나쁜 사람으로는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자는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을 만나서 기분이 좋다. 새싹 같은 아이들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도록 어른들이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알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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