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죠>의 '하얀 재' 장면.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장면이다.서울문화사
'마구 메이저리그 볼' 시리즈 등, 현실을 벗어난 설정을 선택한 <거인의 별>은 다소 어린 독자들의 인기를 얻었고, 그런 설정은 훗날 <피구왕 통키> 등의 다른 스포츠 분야를 그린 만화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에 반해 <내일의 죠>는 황당한 만화가 아니다. 오히려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거인의 별>이 '판타지'를 통해 꿈과 희망을 줬다면, <내일의 죠>는 현실적인 비장미로 일본의 젊은이들을 울렸다.
<내일의 죠>의 이야기도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대단히 상투적이다. 주인공 '야부기 죠'는 '야생마'의 삶을 살고 있던 천애고아였으며, 권투선수를 길러내는 '단페이'와 소년원에서 라이벌 '리키시'를 만나 권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흥미는 곧 '투지'로 연결된다.
<내일의 죠>는 초반부에서 '리키시'를 집중적으로 주목한다. 그는 '죠'를 이기기 위해 페더급에서 밴텀급으로 감량하면서 피눈물나는 인내력을 과시했으며, '죠'와의 대결에서는 '승리 후 사망'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끌어낸다.
<내일의 죠>의 팬들은 그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리키시'를 위해 캐릭터 장례식까지 벌인다. 1970년 3월 당시에 출판사인 고단샤 건물의 강당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전국에서 모인 수백명의 팬들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부르고 , '리키시'의 영정 사진을 앞세우며 실제의 장례식처럼 엄숙하게 치룬 것이다.
만화에서는 리키시의 죽음이 '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으로 권투를 할 수 없게 된 '죠'는 기구한 길을 걸은 끝에 다시 링으로 복귀해 '호세 멘도자'와 대결을 벌이면서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연출했다. 앉은 자리에서 '하얀 재'가 돼 편안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이 '하얀 재'는 '죠의 죽음'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 편안한 미소로 인해 '결코 죽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 사람도 많았다. 작화를 맡은 치바 데쓰야는 죽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그리고 '내일을 위해 웃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 모두를 고려한 것이다.
열혈, 시대를 말하다
특히나 <내일의 죠>는 적군파 계열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하네다 공항에서 항공기를 납치해 북한 입국을 시도하며 일본 최초의 비행기 납치사건을 벌인 그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어떠한 투쟁 앞에서도 오늘처럼 자신과 용기와 확신이 충만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자. 우리들은 '아시다노 죠'다."
<내일의 죠>가 해석과 관점에 따라, '투쟁'을 위한 교과서로도 받아들여졌음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열혈 스포츠 만화'는 이미 그 시대적 사명을 다 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스타일을 표방한 만화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 '새로운 스타일'은 결국 우리 시대의 현실이다. '열혈'은 의미를 잃었고, 그 반대의 쿨한 이미지의 연예인과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열혈에 대한 패러디'가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나카지마 노리히로의 <아스트로 구단>나, 오와다 히데키의 <폭렬갑자원>이 대표적이다.
물론 '열혈'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다. '열혈'은 모험을 즐기는 소년 만화의 틀에 살아있으며, 애니메이션 <자이언트 로보>는 극단적으로 열혈을 추구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의학만화 <헬로우 블랙잭>은 열혈을 감각적으로 소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열혈'은 남성들의 로망이다. 남성들에게는 한번쯤 피가 펄펄 끓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며, 목숨을 걸고 투지를 불태우고 싶어하는 속내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동경하는 면도 있다. '열혈'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는 남성들의 그런 본능적인 내면의 영향일 것이다.
결국 '열혈'과 그에 대한 '반발'이 동시에 유행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감성이 더욱 폭넓어졌고, 그것을 끄집어내는 만화작가들의 시선도 비례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화는 그렇게 '시대와 독자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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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의 최첨단 변화구 '마구 메이저리그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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