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첫눈 오는 날 무등산을 찾지 않았을까

[포토에세이] 첫눈 내리는 무등산 중봉에서

등록 2006.12.04 09:41수정 2006.12.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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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흰 눈으로 도금이 된 무등산은 하얀 세상입니다.

흰 눈으로 도금이 된 무등산은 하얀 세상입니다. ⓒ 서종규

같이 동행한 서 선생은 첫눈이 내리면 무작정 시내 중심가에 나가 차를 마시고 영화만 보았던 젊은 시절이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첫눈이 내린 날 눈발과 사슴뿔과 같은 나뭇가지들의 환상, 억새마저 흰 눈으로 도금이 된 하얀 세상이 첫사랑처럼 아름다운 무등산을 찾지 않고 왜 시내만 찾았던 것이냐는 말이죠.

"젊은 시절 첫눈이 오는 날이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충장로에 나가 카페에 들려서 차 마시고, 극장에 들려서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렇게 좋은 첫눈 내리는 무등산을 찾아오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잎이 다 떨어진 철쭉에 달라붙은 눈송이들이며, 하늘거리는 억새꽃마저 하얗게 흔들거리는 이 아름다움을 찾지 못했다니요."


a 첫눈이 내린 날 무등산에 날리는 눈발과 사슴뿔과 같은 나뭇가지들의 환상을 찾아 떠났습니다.

첫눈이 내린 날 무등산에 날리는 눈발과 사슴뿔과 같은 나뭇가지들의 환상을 찾아 떠났습니다. ⓒ 서종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11명이 지난 2일(토) 광주에 내리는 첫눈을 맞아 무등산을 찾았습니다. 오후 2시에 지산유원지를 출발했지요. 지산유원지에서 출발하여 장원봉 아래 깨재를 올라 지산유원지에서 운영하는 리프트 하차장 옆을 돌아 바람재로 나아갔습니다.

이 코스는 좀 길지만 멀리 무등산 중봉을 바라보며 능선을 따라 쭉 오를 수 있는 좋은 등산로입니다. 지산유원지에서 바람재까지 능선을 타고 오르다가, 바람재에서 토끼등을 지나 중머리재로 임도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원효사 산장 쪽으로 갈 수도 있지요.

a 무수한 무등의 가을을 날렸던 억새꽃은 아직도 하늘거립니다. 그 꽃잎에 하얗게 눈발들이 붙은 모습은 하얀 눈 도금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무수한 무등의 가을을 날렸던 억새꽃은 아직도 하늘거립니다. 그 꽃잎에 하얗게 눈발들이 붙은 모습은 하얀 눈 도금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 서종규

사실 이날 코스는 무등산의 다른 코스를 산행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광주의 동쪽인 각화동 뒷산에서 출발하여 두암동 뒷산인 장군봉을 지나, 산장 가는 길의 잣고개, 장원봉, 지산동 뒷산인 전망대, 그리고 조대 뒷산을 지나 학동으로 내려가는 코스죠. 이 코스는 광주를 쭉 내려다보며 뒷산 산책하듯이 산행하는 아주 가벼운 코스입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보니 창밖에 첫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강원도나 서울에는 이미 첫눈이 내렸지만 광주에는 처음 오는 눈이지요. 아마 무등산은 이미 한두 차례 눈이 내린 것을 보았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첫사랑을 찾아 떠나듯이 우리들도 무등산 정상 쪽으로 그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a 멀리 무등산 중봉의 모습이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멀리 무등산 중봉의 모습이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 서종규

멀리 무등산 중봉의 모습이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뒤덮는 눈발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지산유원지를 출발하여 깨재에 오를 때까지 그렇게 많이 흩날리던 눈발이 쌓이지는 않았습니다. 땅에 닿지 그냥 녹아버린 것이지요.


간혹 응달쪽 소나무에 달라붙은 눈들을 보며 우리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날리다가 땅에 닿아 녹아버린 눈발들이 소나무에 달라붙어 하얗게 우리들을 맞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따뜻한 날씨 때문에 쌓이지 않고 흩날리기만 하는 함박눈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추는 춤을 따라 발걸음이 움직였지요.

a 그 모습 그대로 무등산의 바위도 흰눈 속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무등산의 바위도 흰눈 속에 우뚝 서 있습니다. ⓒ 서종규

바람재(540m)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쌓인 눈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임도를 따라 심어진 단풍나무잎은 아직도 선홍색 단풍이 아름다운데 그 단풍잎 사이로 날리는 눈발이 더욱 하얗게 반짝입니다.


우리들은 토끼등에서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중머리재를 지나 증심사로 내려가는 팀과 눈이 쌓였을 동화사터를 지나 중봉으로 올라가는 팀입니다. 광주에서 무등산을 보았을 때 완만한 능선의 가운데 있는 봉우리가 중봉입니다.

동화사터로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릅니다. 가다가 보면 무등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무더기들인 너덜겅이 있습니다. 너덜겅에 아직은 소복한 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바위 위에 내린 눈이 하얗습니다.

동화사터 오르는 길에는 많은 조릿대가 자라고 있습니다. 바람을 따라 약간씩 몸을 흔드는 조릿대잎의 움직임을 따라 내려앉은 하얀 눈들도 흔들거립니다. 조릿대의 파란 잎과 그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의 조화가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a 무등산 능선은 완전하게 하얀 세상으로 변해 있습니다.

무등산 능선은 완전하게 하얀 세상으로 변해 있습니다. ⓒ 서종규

동화사터 올라가는 길에 자란 나무들은 이제 하얀 사슴뿔을 하고 있습니다. 나뭇잎들이 다 떨어진 자리에 달라붙은 눈들이 하늘을 향하여 하얗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영락없이 사슴뿔처럼 통통하게 하늘을 향한 가지들이 내리는 눈을 계속 받아 내고 있습니다.

동화사터부터 중봉으로 향하는 길은 능선입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큰 나무들이 없어지고 잔가지를 가진 나무들이 앞에 있습니다. 사슴뿔처럼 손을 흔들던 나뭇가지들도 이제는 아주 작은 가지로 변해 있습니다.

a 파란 눈에 덮인 주목나무, 나뭇잎에 달라붙은 눈들이 얼음과자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파란 눈에 덮인 주목나무, 나뭇잎에 달라붙은 눈들이 얼음과자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 서종규

저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눈구름들이 순간적으로 변합니다. 천왕봉은 눈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멀리 광주의 모습도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날리는 눈발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합니다.

능선은 완전하게 하얀 세상으로 변하여 있습니다. 무수한 무등의 가을을 날렸던 억새꽃은 아직도 하늘거리는데 그 꽃잎마저 하얗게 눈발들이 붙어 있어서 하얀 눈 도금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철쭉의 잔가지들도 모두 하얗게 변하여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a 우리들은 무등산 중봉에서 하얀 눈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들은 무등산 중봉에서 하얀 눈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 서종규

간혹 눈앞에 주목나무가 보입니다. 주목의 푸른 잎에도 달라붙은 눈으로 인하여 영락없이 크리스마스 추리가 되었습니다. 완전한 크리스마스 나무인 것이지요.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져 있는 삼각형의 그 나무 말입니다. 파란 눈에 덮인 주목나무, 나뭇잎에 달라붙은 눈들은 얼음과자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얼음과자를 떼어서 입에 넣고 즐거워했습니다.

능선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눈보라가 귀를 시리게 만들었습니다. 오후 5시 우리들이 도착한 무등산 중봉(925m)엔 더욱 바람이 새었습니다. 겨울에는 오후 5시면 해가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더구나 눈보라가 날리는 날씨는 금방 어두워집니다.

a 우리들은 첫사랑을 만난 설렘을 안고 눈 속을 걸었습니다.

우리들은 첫사랑을 만난 설렘을 안고 눈 속을 걸었습니다. ⓒ 서종규

눈발이 날리는 날씨였지만 우리들은 무등산 중봉에서 하얀 눈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내려가는 것도 잊고 멀리서 불려오는 눈보라며, 잔가지에 붙어 있는 눈꽃이며, 새로 심어놓은 주목 군락지에 하얗게 서 있는 크리스마스 추리들의 행렬이며, 모두 첫눈의 세상은 설렘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야간 산행을 준비했습니다. 증심사까지 내려가는 길은 완전한 어둠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준비한 아이젠까지 차고 전등을 꺼내 증심사 주차장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저기 눈발 속에 서석대와 입석대가 숨어 있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들은 첫사랑을 만난 설렘을 안고, 거의 말도 하지 않고 하얀 눈 세상 속을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밤길은 많이 미끄러웠습니다. 하지만 하얗게 변한 무등산 중봉의 모습을 간직한 첫눈의 발길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a 하얗게 눈발들이 붙어 있어서 하얀 눈 도금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하얗게 눈발들이 붙어 있어서 하얀 눈 도금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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