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내들은 폭력에 신음한다

가정폭력방지법 9년을 돌아보다

등록 2006.12.05 14:49수정 2006.12.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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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정폭력에 반대하는 중국 여성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베이징네트워크'는 매년 여성폭력추방기간에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정폭력에 반대하는 중국 여성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베이징네트워크'는 매년 여성폭력추방기간에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두 가정 중 한 가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발생하고 있는 한국의 가정폭력.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도 아내에 대한 폭력이 가정폭력 상담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각 국가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필리핀의 폭력 발생률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BRI@<메트로마닐라(Metro Manila)>의 무작위 표본조사에 따르면 여성 12명 중 11명이 적어도 한 번 이상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가해자는 남편이거나 친밀한 관계의 사람인 것으로 드러났다. 약 6천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 필리핀 비자야 지역에서도 여성 응답자 9백21명 중 59%가 대부분 배우자나 친척에 의해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몽골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최근 국민폭력방지센터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여성 3명 중 1명이 폭력을 당하고 있고, 10명 중 1명이 육체적 학대를 받고 있었다. 또 여성에 대한 폭행으로 신고된 사건의 88%가 무혐의 처리되고 있어 몽골 여성 활동가들은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26.7%가 남편으로부터 신체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6%의 여성들이 언어폭력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한 피해 여성은 3%에 그쳤다.

중국에서는 전국 23개 지역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4만8천장에 이르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0.9%가 '항상'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종종' 구타를 당하는 여성들도 8.2%나 됐고 구타 경험이 있는 여성은 20%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은 이처럼 한 국가나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따라 한국, 일본, 몽골,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여성폭력추방 한마당'을 동시 진행했다. 올해는 필리핀을 제외하고 4개국에서 국제 캠페인을 동시 진행했다.


a 최근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2006 여성폭력 추방한마당'모습.

최근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2006 여성폭력 추방한마당'모습. ⓒ 우먼타임스

중국에서는 중국가정폭력반대전국네트워크(China National Network on Anti Domestic Violence)가 '가정폭력과 여성의 정신 건강 및 아동폭력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여러 여성단체들과 함께 길거리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몽골에서는 여성폭력과 관련된 유엔 연구를 소개하고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화이트리본 캠페인을 진행했다. 또한 교육부와 함께 중학교에서 인권교육도 실시했다.

일본은 전국쉼터네트워크에서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 등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고 11월 22일에는 12시간 동안 상담을 무료 제공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김유은경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국제연대팀 활동가는 "여성폭력이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하에 지난해부터 국제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며 "이메일과 전화를 이용해 각 국가의 정보를 공유하며 국제 캠페인 진행 과정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에서도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18개월 동안 이어질 가정폭력근절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럽 인권감시기구인 유럽평의회는 "유럽 여성의 25%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난 11월 27일 스페인에서 캠페인을 개시했다.

스페인에서는 올해 들어 가정폭력으로 26명의 여성이 숨졌으며 프랑스의 경우도 94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유럽 여성 10명 중 1명이 부부강간을 포함한 성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유럽평의회는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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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가정폭력=강력범죄 인식 심어야
김수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아내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제기된 이후 한국사회는 법 제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해결책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가족 보호' 관점에서 만들어진 법은 아내폭력 근절에 한계를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자가 상담치료를 받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이혼하지 않을 거라면 고소를 취하하라고 하거나 끊임없이 남편을 처벌할 것인지 물어보고(이미 피해자는 처벌할 마음이 있어서 고소나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여성에게 인내와 용서를 요구한다.

이러한 현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경미한 신체 폭력을 경험한 가정폭력 피해자가 연간 1백79만2천명에 이르는데도, 경찰이나 검찰에서 처리된 사건은 1만7천2백94건으로 약 1%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위기 개입이 실로 미미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정폭력 사범의 구속률은 1.4%, 연간 구속 인원은 2백40여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가정보호사건으로 보내졌을까?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어 보호처분을 받는 가해자는 연간 2천7백여명에 불과하다. 결국 대부분의 가정폭력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고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온적인 가해자 처벌은 아내폭력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역할을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권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폭력을 통한 남성의 통제권은 강화되고 있다. 결국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은 약화되고, 아내폭력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아내폭력은 피해자의 일시적인 상담과 보호, 가해자의 교정ㆍ교화로는 해결되기 힘들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처 방식으로는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해자 처벌은 처벌의 전 과정에서 피해자가 당당히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보상받는 것까지 포함해야 하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아내폭력이라는 범죄는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을 다룰 때 살인 예방 차원에서 대처한다. 폭행이 발생한 시점부터 소송 및 보호관찰기관을 통해 최우선으로 다뤄지는 것은 피해자의 안전이다. 또 가정폭력 사건을 살인사건 소송처럼 다루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반드시 피해자 안전 계획을 세우고 위험성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정폭력은 다른 폭력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가정폭력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발생률은 60%를 상회하며 폭력 가정 자녀의 30%는 자라서도 자녀를 학대하고 남성은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특히, 학교폭력과도 연결되는데 신체적 학대를 경험한 청소년은 상해 위험이 높은 폭력 비행을 자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가정폭력은 사회폭력과 아주 높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정폭력을 사소한 가정문제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 학교폭력, 성폭력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만들어내지만 폭력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폭력에 대한 사후 통제 중심의 형사법적 접근이 아닌 폭력 자체를 실질적으로 줄여줄 사전 예방 전략이 긴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폭력 발생의 메커니즘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해와 폭력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폭력의 사회적 재생산 기제로서의 가정폭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전체 폭력의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고 통합적으로 볼 때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학교폭력에 대한 해결의 단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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