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 분단의 그늘서 휴식처로...

등록 2006.12.05 14:52수정 2006.12.0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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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조강리 경계에 있는 산. 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높이 155m,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 애기봉은 그렇게 솟아 있었다. 첫 눈 내리는 스산한 겨울바람에도 임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조강리의 애기봉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녘 땅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에 관심이 쏠리는 요즘 애기봉을 찾았다.

김포에서 국도 48호선을 따라 강화 쪽으로 20여분을 달리다 보면 그곳에 작은 산, 애기봉이 있다. 현재 애기봉은 군 주둔 지역으로 해병대 2여단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출입통제소에서 신고서를 작성하고 위병 검문소를 지나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에게 인사를 건네도 웃음 없는 말로 “필승! 수고 하십시오” 라는 대답 뿐이어서 긴장감마저 감도는 듯했다.

위병소를 지나 주차장까지는 차로 가지만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다. 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북녘 산하가 바로 발밑에 펼쳐진다. 전망대가 생긴 이후 한해에 20여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며,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더욱 많은 실향민들이 찾아와 안타까운 한을 달래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의 위장용 선전마을이 지척에 있고 개성 송악산의 연봉이 손에 잡힐 듯 이어져 있다. 우리의 산에 비하면 북한의 산은 갈퀴에 할 퀸 듯 흙빛이 도는, 민둥산이 많았지만, 들판의 논들은 우리와 같이 추수를 끝낸 황량함이 감돌았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해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여서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 특이한 경관을 보여준다.

서해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삼각 지점에 솟은 애기봉의 강 쪽은 절벽을 이루어 마치 부여의 낙화암을 연상케 하고 서해바다 쪽으로 강화도의 해안이 수평선과 맞물려 아름답게 펼쳐진다. 북한은 지난 수해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애기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은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 추석 애기봉에 올라섰을 때는 이미 많은 실향민이 망배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대부분이 나이든 사람들로 송편이며 절편까지 여러 음식을 가지고와 애환을 달래고 있었다. 북쪽 억양이 심했던 한 할머니는“여기가 북쪽이 제일 잘 보여”하곤 술잔을 넘겼다.

통일부에 따르면 할머니와 같은 이산가족은 약 767만 명으로 추정된다. 1985년‘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고 이후 15년이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역사적인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어 현재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방문 상봉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2005년 8월 15일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수원·대전·대구·광주·부산 등 남쪽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활발한 이산가족 상봉 속에도 그들의 애절함은 이곳 애기봉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BRI@이 산은 애환을 달래는 장소로서 의미도 있지만 남북 대치상황이니 만치 이곳을 찾는 이들의 사연은 갖가지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6년. 한반도 서부 휴전선 경계 중 일반인이 다가가 북녘 땅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인 애기봉에서 손만 뻗으면 금세 닿을 것만 같은 북녘 땅이지만 그곳엔 지금도 분단의 벽, 이데올로기의 벽이 철조망의 가시가 되어 여러 사람의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다.

애기봉에서 안보교육을 하고 있는 관리소장 정노엽(56)씨는 70년대에 이곳에서 중대장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정씨는 탁해진 애기봉앞 강을 보며 “모래가 쌓여서 그래. 준설작업을 해야지 예전에는 깊이가 20m 되는 곳도 있어서 숭어를 막대기로 때려서 잡았었는데”라며 세월의 무게만치 늘어나는 훈장 같은 주름 속에 담겨져야 할 것이 무엇일까 하는 아쉬움을 얘기했다.


북 핵으로 싸늘하기만 한 남북 관계 속에 정씨의 얘기는 한탄으로 들렸다. 이제 두터운 외투의 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이다. 성탄절과 연말행사가 얼마 남지 않는 이때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고 휴식을 가져도 좋은 계절인 것이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그리 멀지 않는 이곳으로 가족들과 함께 가볍게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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