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 잃은 것도 서러운데 사문서 위조죄?

수사 경찰관의 법집행과 법의 눈물

등록 2006.12.05 16:48수정 2006.12.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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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에 살고 있는 고달파(가명, 여, 만69세)할머니는 지난 10월 2일 아들을 잃었다. 7년전 이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 공사현장에 나가 돈을 벌어 오던 아들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장 아들이 사망하자, 아들 명의로 된 통장이며 사고 보상금 수령이며 정리해야 할 일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한 번씩 경험한 사람들은 있겠지만, 보통은 인감증명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동사무소에 가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뒷일을 처리하였다.

@BRI@얼마 뒤 고달파 할머니는 입건이 되었다. 사문서위조와 위조문서행사죄의 혐의다.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벌금형으로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본인이나 본인의 동의를 얻어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고달파 할머니의 혐의는 아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위임받은 것처럼 위임장을 위조하여 발급신청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동사무소에서는 죽은 사람의 명의를 이용하여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들을 의무적으로 경찰에 고발해 오고 있다. 동사무소의 고발은 정당하고 불가피하다. 고발하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사건의 경우, 기계적인 법적용을 하게 되면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족들이 벌금을 물고 전과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수사경찰관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동대문경찰서 수사과 경제 4팀 윤기원 경사 등은 '비슷한 사건에 대한 법적용 토론'시에 논의되었던 결과를 토대로 고달파 할머니를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구성요건에는 해당하나(행위는 위법하여 처벌되어야 하나), 부정한 곳에 쓸려고 발급받은 것이 아니고 아들의 생전에도 어머니인 고달파 할머니가 아들을 대신해서 인감증명서 등을 발급받는 등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위법성조각사유를 상세히 기재하여 불기소(처벌하지 않음)로 의견을 낸 것이다.

수많은 경찰의 수사사건에 대해 일일이 지휘할 수도 없는 검찰에서는 보통 경찰의 의견서대로 처분한다. 그래서 국민과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수사에 있어 경찰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수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의 관용에 대해서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주로 서민을 상대로 법집행하는 경찰관의 눈에는 반드시 '법의 눈물'이 늘 적셔져 있어야 한다.


고달파 할머니처럼 갑자기 가족을 잃은 분들은 될 수 있으면 상속절차를 밟아서 뒷처리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망사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사망자의 인감증명서를 아예 요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혹 있을지 모르는 입건과 기소를 피해 나가는 방법이다.

혹 입건이나 기소를 당하면 평소 사망자와의 관계와 일처리 관행, 그리고 부정한 곳에 쓰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위법은 하나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소명하면 위법성이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법은 엄정하지만 법에도 눈물이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현직 수사과장입니다.  최근 이러한 사례가 많아 정보 제공 차원에서 이 기사를 적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현직 수사과장입니다.  최근 이러한 사례가 많아 정보 제공 차원에서 이 기사를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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