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못해, 요리 못해... "한국 남자는 어떻게 살지?"

[호주에서 열달14] 한국 남자의 설거지 지수는 세계 몇 위?

등록 2006.12.06 14:50수정 2006.12.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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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에서 10달 동안 지냈는데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ganic Farm, 일손이 필요한 현지 농가가 자신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제도) 생활을 했다. 우프의 특성상 호주인 가정에 들어가서 그들의 생활모습과 문화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는데 호주 가정 내 남녀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었다. <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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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우프 일을 할 때. 여자인 나에게 이런 일을 시켜 처음엔 당황했지만 호주에서는 남자 일, 여자 일 구분을 하지 않아 당연한 일. 베이지색 모자를 쓴 사람이 바로 나다. ⓒ 김하영


한국은 성차별이 참 심한 나라이다.

지난달 22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남녀 격차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92위로 캄보디아(89위) 튀니지(90위) 요르단(93위) 나이지리아(94위) 인도(98위) 등과 함께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이 결과는 미국 하버드대학과 영국 런던대학 연구진이 교육· 보건·고용·정치 4개 부문에서 남녀 격차지수를 산출해 순위로 매긴 것이다.

나는 이 조사결과를 보면서 이에 덧붙여 '세계 남자들의 설거지 지수'를 조사하면 어떨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한국 남자는 아마 100등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우프 호스트들도 한국 남자의 특별함(?)을 잘 알고 있다.

호주 식탁에서는 손놓고 있는 사람이 없다

@BRI@호주 가정 속에서 우퍼(wwoofer, 우프를 하는 사람)로 지내며 내가 가장 놀란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남자가 설거지를 하고 요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잘!

호주 가정에서는 보통 한 사람이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게 보편적이다. 부인이 요리를 하면 설거지는 남편이 하고, 남편이 요리를 하면 부인이 설거지를 하는 식이다. 아들이라고 아껴두지 않고 설거지를 시키는데 군소리 없이 오케이다. 우퍼인 나도 당연히 부엌일을 돕고 말이다. 식탁도 다 같이 치우지, 누구 하나 손놓고 있는 사람은 없다.

'설거지는 여자 일이니까 엄마 몫이야'라거나 '남자가 무슨 부엌일이야'라는 생각은 찾을 래야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 80살의 할아버지도 나보다 더 깨끗이 설거지를 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보기 힘든 모습이라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한국 가정 내의 모습은 어떤가. 당장 우리 집만 보더라도 설거지하는 남자는 없다.

아빠에게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고 그나마 남동생(23)은 한 달에 2~3번 할까 말까다. 그것도 나의 협박·회유·파업으로 겨우겨우 하는 거다. 혼자 자취할 때는 분명히 스스로 요리도 하고 설거지를 했을 것이다. 다시 여자가 있는 집으로 와서는 할 줄 아는 집안일도 엄마와 누나에게 미루기 일쑤다.

"난 한국 남자야, 설거지 못해"

이런 한국 남자가 한국 가정과는 정반대인 호주 가정에서 생활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실제로 이런 한국 남자를 받아 본 호주 우프 호스트들의 말을 들어보자.

샐리(40대 중반, 가명)와 비키(30대 중반, 가명)는 시드니 근처 고스포드에서 살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집에 우프를 하고자 신청하는 모든 사람을 받고 있어서 그동안 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고 했다.

한 번은 한국인 남자 A가 왔는데, 밥을 먹고 설거지를 부탁하자 "여자들이 하는 일을 남자에게 시킨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당황한 비키는 이번에는 A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프린트된 종이를 잘라 다른 곳에 붙이는 일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에도 화를 내며 "이런 일은 더욱 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비키가 "그럼 그동안 다른 우프 호스트 집에서는 무슨 일을 했냐"고 물어보자 "나무심고 잡초뽑는 일을 했다면서 그런 일을 시켜달라"고 했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레즈비언 커플은 집을 증축하던 중이라 비키가 창고에서 전기 날과 드릴 등을 이용해 직접 바닥과 문 등을 만들고 있었단다. 그 모습을 A가 보고 깜짝 놀라며 "왜 남자가 하는 일을 하느냐"고 물었단다.

비키가 나에게 하는 말이 "왜 내가 여자라고 해서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냐"면서 "나는 여자지만, A보다는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비키는 이어 "A를 제외한 다른 한국 남자들은 대체로 괜찮았지만, 다들 설거지만 시키면 당황해 내가 더 당황했다"고 말했다.

블루마운틴에 사는 존(가명·55세)과 베키(가명·38세)도 한국인 남자 B를 우퍼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식사 후에 도통 설거지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아 하루는 "우리가 요리를 했으니 설거지를 해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래서 B가 설거지를 했는데, 나중에 베키가 싱크대를 보니 설거지를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어지러 놓기만 해 다시 설거지를 했단다.

베키는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또, 하루는 B가 자신의 빨래감을 가져와 베키에게 세탁을 부탁해 아주 황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존과 베키는 외국인 우퍼가 오면 그 나라 음식을 한 번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B는 "요리를 한 번도 안 해 봐서 못한다'고 했단다. 존과 베키는 "그럼 도대체 한국 남자는 어떻게 사느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남동생 먼저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첫 우프 경험은 '정원 울타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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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의 집에서 우프를 하던 2명의 독일 여자 우퍼가 자신들이 자른 큰 나뭇가지를 나르고 태우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내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방대한 양의 일을 1달 만에 끝냈다고 해서 놀라웠다. ⓒ 김하영

그런데 한국 남자만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남녀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 여자에게 힘쓰는 일은 아예 시키지 않고 여자 스스로도 이건 남자가 할 일이라며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호주에서 우프로 처음 한 일은 날이 큰 정원 가위와 톱을 이용해 멋대로 자라버린 거대한 울타리를 자르는 일이었다.

호스트인 마르셀(가명·50)이 처음에 그 일을 시켰을 때는 나도 황당했다. 여자인 내가 하기에는 좀 험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울타리 가지가 단단해서 자르기 쉽지 않았고 자른 울타리는 잡아당겨 한쪽으로 분리해야 했는데 겹겹이 엉켜 있어 잡아당기기도 힘들었고 또 자칫 잘못하면 다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첫 호스트가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2달이나 같이 지낸 정말 좋은 호스트였다. 일 하는 시간도 적었고 울타리 자르는 일이 너무 힘들까봐 쉬운 일도 번갈아 시켜주었다. 단지 일에 있어서 남자·여자를 구분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아예 여자라고 저런 일은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 역시 못한다고 했을 텐데 말이다.

이후에 다른 우프 집에서도 삽질·나무 옮겨심기·손수레에 벽돌 나르기·기타 무거운 것 나르기 등 힘이 많이 드는 일들을 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호주에 오기 전에는 스스로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조차도 내 안에 차별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약해서 힘든 일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행동을 제약하는 것 같다. 힘든 일도 계속하다 보니 늘더라. 나부터 남자 일, 여자 일을 구분하지 말고 편견을 없애야 진정한 양성평등 아닌가.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 보다는 '사회적 편견 속 여자는 약하지만 편견 밖 여자는 강하다'가 맞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일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 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덧붙이는 글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일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 중 8개월 동안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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