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국제포경회의(IWC)에 맞춰 문을 연 '고래박물관'김준
포항과 함께 공업한국을 이끌었던 도시 울산을 생태도시로 바꾸려는 노력의 중심에 '고래'가 있다.
호미곶을 지나 구룡포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장생포까지 오면서 이곳저곳 포구 마을을 기웃거렸다. 포구의 아침은 분주했다. 한두 척 오징어 배들이 들어와 오징어를 쏟아내고 식구미를 챙겨 총총히 사라지고, 소라를 잡은 배들은 경매를 하는 판장에 상자를 쏟아놓는다.
물안개를 헤집고 떠오른 아침 해가 바다를 깨울 무렵, 물질하는 해녀의 오리발이 허공을 가른다. 바닷가로 밀려온 해초를 줍는 할머니의 느릿느릿한 발걸음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흔든다. 배가 고프다.
일부러 늦은 점심을 각오하며 장생포를 찾은 것은 고래고기를 먹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먹어보지도 못한 고래고기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생리적으로 가능한 현상인가.
고래, 신화와 전설을 벗다
@BRI@'고래'라는 낱말 뒤에서는 수백 년 동안 신비와 공포가 따라 다녔다. 고래에 관한 최초 기록은 성경이지만, 고래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16세기 무렵이었다.
중세 아일랜드 선원 중에는 '악마고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고래라는 말이 두려워 '대어'라는 말로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사람고기 맛을 본 고래는 같은 장소에서 1년 내내 사람사냥을 하기 위해 기다린다고 믿고 있었다. 이들은 고래가 배를 침몰시킨 적이 있는 얕은 여울목은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뱃사람 중에는 잠든 고래 등을 섬으로 잘못 알고 올라갔다가 익사했다는 말도 전한다.
처음 고래를 포유류로 분류한 사람은 B.C. 4세기 무렵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 후 1600년 동안 고래가 물고기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다시 포유류로 분류한 것은 1758년 프랑스 박물학자 샤를 드 린네였다. 이 후 프랑스 동물학자 퀴비의 "고래는 뒷다리가 없는 포유동물이다"라는 주장이 나왔고, 18세기 동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고래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학자들은 고래의 뼈와 육지동물의 뼈를 비교해 고래가 육지에서 시작된 포유동물임을 밝혀냈다. 앞다리가 가슴지느러미로 변했지만, 그 속에 포유류의 원형인 5개의 발가락뼈(퇴화되어 4개인 경우도 있다)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뒷다리가 변형된 꼬리지느러미는 물고기와 달리 수평으로 달려, 수면과 바다 속 깊은 곳을 자유로이 오르내릴 수 있다. 고래가 주로 먹는 것은 젓새우 등과 갑각류와 무리를 지어 서식하는 작은 물고기 등이다. 이빨고래류는 민물에 사는 새우·게·오징어 등을 먹는다.
고래는 금실이 좋고, 가족애와 동료애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폐로 호흡하며 자궁 내에서 태아가 자란다. 암컷은 배 아래쪽에 한 쌍의 젖꼭지가 있어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운다. 고래는 한 번에 한 마리씩 출산하며, 새끼 고래가 태어나면 동료고래들이 수면 위로 밀어 올려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래는 일부일처이며 임신기간은 보통 1년이지만 향유고래는 16개월, 혹등고래 10개월 등이 걸린다. 모성애가 강해서 새끼고래가 잡히면 어미고래나 아빠고래가 배 주위를 떠나지 않다가 포경선에 잡히기도 한다. 고래의 모성애에 감동해 일본의 한 사찰에서는 잡은 고래에서 나온 새끼를 화장해 납골하고 공양하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허파로 숨을 쉬며 바다에 사는 고래는 얼마나 깊은 곳까지 잠수를 하며, 물 속에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수심 1000m까지 긴수염고래류는 150m까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수기간도 긴수염고래는 10여분, 소형 이빨 고래는 3~10분, 항유고래는 30~60분 정도에 이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2가지 맛의 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