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개옥문 적선지가'를 실천한 어초은 윤효정의 묘정윤섭
그런데 적선(積善)의 가풍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안이 녹우당 해남 윤씨가다. 해남 윤씨가 족보를 보면 맨 앞에 녹우당의 개시조인 어초은 윤효정을 ‘삼개옥문(三開獄門) 적선지가(積善之家)’로 묘사하고 있다.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생활이 어려워 나라에 세금을 내지 못하고 옥에 갇힌 사람을 윤효정이 세 번이나 대납하여 그들을 풀어나게 해주었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녹우당에서는 이를 하나의 가훈처럼 여기고 늘상 말하곤 한다.
고산의 ‘충헌공 가훈’을 보면 이 적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주 최부자집에서 여섯 가지의 가훈이 내려온 것처럼 녹우당 해남 윤씨가에도 가훈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고산의 시호를 따서 붙인 ‘충헌공 가훈’이다.
충헌공 가훈은 고산이 74세에 멀리 함경도 삼수로 귀양을 떠나면서 아들인 인미(仁美)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남긴 교훈서다. 가훈의 내용은 주로 소학(小學)의 실천윤리를 강조하면서 ‘적선’과 ‘근검’이 집안의 융성을 위한 최고의 덕목임을 내세우고 이를 꼭 지켜나가기를 당부하고 있다. 그런데 가르침 중엔 최부자집에서 말한 것과도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어 당시 유교사회가 지향하는 윤리의식을 읽을 수 있다.
고산은 충헌공 가훈을 통해 아들 인미에게 이르기를 방(榜, 과거합격자 명단)이 붙을 때마다 낙방하는 것은 근면하지 못한 소치로 하늘의 도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적선을 하는 데에 있다. 너희는 수신(修身)과 근행(勤行)으로 적선하고 인자한 행실을 제일 급선무로 여기라 한다. 그리고 적선을 하고, 하지 않는 것에 따라 대가 끊기고 이어지는 것이 결정된다고 할 정도로 적선을 강조하였다.
충헌공 가훈에서 항목으로 명시한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먼저, 의복이나 말 등 몸을 치장하는 모든 구습을 버리고 폐단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여러 번에 걸쳐 노비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우대해주고 구휼해 주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노비에게 거두어들이는 세금으로 그동안 기준이 없던 것을 ‘노(奴)는 평목(平木) 2필, 비(婢)는 한필 반’으로 하고 역(役)이 많은 사람은 역을 덜어주고 부자는 더하지 않는다고 그 기준을 정해주고 있다.
그리고 소학(小學)은 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고산이 소학을 실천윤리로 중요시하는 것은 유학에서의 이상적인 정치인 도치(道治)를 실현하기 위해 백성을 위한다는 애민(愛民)사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에서 요구하는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 논리로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절대적 경제논리는 이윤의 극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공유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인위적으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없는 자에 대한 배려가 이러한 사회윤리로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베푼다는 것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고 소위 서구에서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사상이 우리의 전통윤리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 적선의 사회윤리는 베풀 줄 아는 자만이 대를 잇게 된다는 고산의 충고처럼 부의 지속도 이를 통해 보장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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