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혁명은 '조중동' 없어 가능했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③] 언론, 석유 그리고 포퓰리즘 그 세 가지 오해

등록 2006.12.12 15:31수정 2006.12.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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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는 조중동이 없기 때문에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과 혁명이 가능했다."

맞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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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는 한국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조중동'과 같은 독과점 매체가 없기때문에 차베스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많았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베네수엘라 혁명에 관한 연재 기사가 2회 게재되는 동안 많은 네티즌들이 관심과 격려, 공감을 표시해 주었다.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 가운데는 베네수엘라가 처한 조건과 환경이 한국에 비해 양호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종종 눈에 띈다. 한국에 비해 베네수엘라는 구지배계층이 견고하지 않거나 국제적 고유가로 개혁이 쉽게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등의 질문이다.

다른 한편 베네수엘라가 차베스 집권 후 정치, 경제적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이나 정적에 대한 독재로 유지되는 불안정한 체제라는 이견도 존재한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는 혁명이 아닌 파시즘이나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에둘러 갈 것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의견들은 과히 근거가 없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정보 부족이나 언론을 통해 잘못 전달된 편견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연재 기사를 진행하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현재와 의미를 정치, 경제, 사회, 국제관계별로 상세히 살피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이 자꾸 눈에 걸린다면 아무래도 아름다운 보름달 감상은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막는 몇 가지 오해와 편견에 대해 다루기로 한다.

[첫 번째 오해] 베네수엘라에는 조중동이 없다?

@BRI@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베네수엘라에서 대통령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원수이고 행정부를 대표하며 자국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다. 이런 대통령이 사퇴했다면 모든 언론이 이를 시시각각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그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여 정상 업무를 진행하기 시작하자 모든 언론이 약속이나 한 듯 이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종일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귀여운 여인> 같은 외화나 틀어댄다면?

이 황당한 장면은 2002년 4월 반차베스 군부 쿠데타시에 실제로 벌어졌던 상황이다. 하루 전까지 10분 단위로 차베스의 사퇴와 임시 정부를 선전해대던 베네수엘라 상업 언론은 복귀하는 차베스를 이렇게 차디차게 맞았던 것이다. 베네수엘라 언론은 차베스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1998년부터 8년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도 차베스에 대한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 언론 환경은 기형적 현대사와 함께 조성된 것이다. 대자본이 주도하는 상업 미디어가 베네수엘라 언론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방송언론의 공공성보다는 상업성, 수익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미국식 모델이 일찍부터 이식되었다.

이들 상업 언론은 독재 시절에는 독재 정권과 결탁해서 그리고 군사통치가 종식된 뒤 '푼토 피호 협정'을 통해 양대 보수 정당인 민주행동당(AD)과 기독사회당(COPEI)이 40여년간 권력 돌려먹기를 하는 동안에는 이들 엘리트 지배세력을 지원하거나 때로는 이끌면서 착실히 세를 불렸다.

베네수엘라의 '조중동', 시스네로스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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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네로스 가문은 1920년대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운송업체로 출발하여 베네수엘라 최대의 TV네트워크이자 세계 39개국에 70개 계열사를 거느린 베네비전을 소유하고 있다. ⓒ 베네비전 홈페이지

베네수엘라 상업 언론의 영향력과 규모는 한국의 조중동과 아예 체급이 다르다. 전체 언론의 70% 이상을 시스네로스 그룹 등 몇 개의 대표적 독과점 미디어 재벌이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시스네로스 가문은 1920년대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운송업체로 출발하여 베네수엘라 최대의 TV네트워크이자 세계 39개국에 70개 계열사를 거느린 베네비전을 소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플레이보이 라틴아메리카, 코카콜라, 야구 구단까지 보유했으며 베네수엘라 미인산업을 부추기는 미인대회도 이 회사가 개최한다. 언론만이 아니라 문화, 컨텐츠 산업 전반에 발을 걸치고 국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다. 더구나 그 영향력 범위는 라틴 아메리카 전반에 파급된다. <조선일보>가 아시아 전체를 주무르는 끔찍한 상황을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시스네로스 그룹의 구스타보 시스네로스 회장은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중남미 전체 여론과 언론산업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뉴스위크>지 표지 기사 '2004년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8인'에 선정되었으며 부시 미국 대통령의 낚시 친구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시스네로스 그룹의 연간 매출액은 2002년 기준 35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지상파 방송의 시장 규모(2005년, 3조 5천억원)와 맞먹는 수준이며 국내 신문 중 매출 1위라는 조선일보(2004년 매출액 약 3400억 원 정도로 추산)의 열 배에 해당한다.

이들 거대 언론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는 상업 방송은 빈곤층만 64%에 달하는 베네수엘라국민에게 미국인들의 오락프로와 드라마를 방영하고 자본주의적 소비를 부추기며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과두 지배 엘리트 집단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주류언론, 차베스 지지시위 외면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단 하나 있는 국영 TV방송은 낙후되어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형편이었고 5개 주요 상업 방송 전부와 10개 주요 일간지 중 9개 신문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언제든지 차베스를 집어삼키려 노리는 형국이었다.

언론이 완전히 반차베스 일색인 상황에서 2002년 4월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사퇴한 게 아니라 반란군에게 감금당한 상황임을 숨가쁘게 알린 것은 민중들의 자발성에 의해 지역적으로 소규모로 운영되는 각종 대안 미디어, 공동체 미디어들이었다. 명백한 적대행위를 당하면서도 차베스는 집권 기간 동안 언론을 손대지 않았다.

그러나 쿠데타군은 이들 자발적 언론을 탄압하고 기자를 연행해갔으며 주요 언론사 사주들은 쿠데타군을 정당화하는 보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차베스 지지 시위는 전혀 취급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주류 언론의 작태로 차베스 지지자들은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눈물을 흘리며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고 쉴새없이 핸드폰을 눌러 베네수엘라 전국 각지에 그들의 지도자가 처한 위기상황을 알렸다.

[두 번째 오해] 차베스의 성공은 국제적 고유가 때문이다?

고유가로 인한 막대한 재정수입이 베네수엘라 혁명에 순풍이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2005년 추정치 기준으로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이란, 중국, 멕시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석유 생산이 많은 나라다. 나이지리아와 쿠웨이트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 10개국 가운데 민중이 주체가 되어 혁명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는 베네수엘라 외에는 없다. 석유가 나오기 때문에 혁명이나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면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의 많은 산유국들이 왜 아직까지도 전근대적 왕정이나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설명할 수 없다.

가까이 베네수엘라의 최근 50년을 놓고 보아도 석유로 거둔 이익이 베네수엘라 국가 경제 시스템의 발전이나 국민들의 복리에 사용된 예가 차베스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석유는 베네수엘라의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농업을 몰락시키며 비석유 부문의 생산 기반 시설 미비와 저임금 구조를 고착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았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과거 베네수엘라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페레즈 알폰소는 석유가 가져오는 이러한 효과를 가리켜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국가적 혜택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차베스 정부가 기울인 노력은 정권의 진퇴를 건 도전이기도 했다. 차베스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1998년경 국제 석유가격은 배럴당 10달러가 채 되지 못했다.

그 이전까지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국 기구인 OPEC 회원국 중 가장 미국의 요구에 충실한 국가였다. 석유가격을 유지하려는 OPEC회원국들의 약속을 번번이 어기며 석유감산 협약을 지키지 않았던 나라다.

차베스는 집권 초창기 대외정책의 상당 부분을 OPEC 국가들에 돌려 신뢰회복에 힘쓰고 석유 감산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2002년이 넘어가면서 국제 유가를 20달러 수준으로 올리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다. OPEC이 국제 석유 생산량과 가격 조절 기능을 회복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처음이었으며 이러한 움직임을 이끌어낸 인물이 바로 차베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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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의 석유시추선 ⓒ 베네수엘라 정부홈페이지

석유 수출국 기구의 정상적 가동 및 석유 가격 인상과 함께 차베스는 정말로 어려운 과정 즉, 이전의 신자유주의 정부에서 외국 자본과 국내 기득권 세력에 이권이 전부 넘어가 빈 껍데기만 남아 있던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를 실질적으로 국영화하는 작업에 나서야 했다. PDVSA는 베네수엘라 기득권 세력들의 가장 큰 이익을 창출해 주는 도구였기에 이에 대한 개혁을 착수하는 것은 구지배층과의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을 의미하는 것이다.

차베스 집권 기간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2002년 4월 쿠데타와 12월 자본파업의 핵심적 원인도 PDVSA 개혁에 있었다. 자본가들과 경영진들, 기득권에 취한 노조까지 가세한 파업 와중에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평상시의 10% 수준으로 곤두박질쳐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산업설비를 가동할 석유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할 정도로 곤란을 겪었다.

경영진이 막아놓은 공장문을 열고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공장을 가동시키면서 이 고비를 이겨내고 PDVSA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기에 차베스는 2003년부터 비로소 석유에서 나오는 이익을 제대로 사회개혁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만약 차베스 정부가 석유 판매 이익으로 단지 빈민을 위한 '시혜적 복지' 정책만 사용했다면 베네수엘라 경제구조는 변화되지 못한 채 계속 석유로 번 이익으로 한없이 재정지출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는 철저히 국내 정치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에 연동시켜 석유재정을 투입해왔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석유산업 일변도인 국가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체질 전환하는 경제적 변혁 과정을 수행 중이다. 이러한 경제 혁명은 정치 혁명 못지않게 중요하고 베네수엘라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므로 다음 기사에서 보다 상세하게 분석하기로 한다.

[세 번째 오해] 차베스는 독재자 혹은 포퓰리스트다?

앞의 주제들에 비한다면 이 세 번째 주제는 오해라 하기에는 너무도 의도적이고 졸렬한 왜곡에 가까운, 주로 국내외 언론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에 덧씌운 이미지들이다. 일반적으로 베네수엘라 혁명과 차베스에 대한 폄하나 오도된 정보는 세 단계를 거쳐 양산되고 증폭된다.

첫 단계는 험악하기 그지없는 베네수엘라 언론 자체이다. 다음으로 전세계 여론을 좌우하는 미국의 시각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언론의 안이한 베껴쓰기 또는 악의적인 보도가 가세한다. 이들 언론은 차베스가 빈민들에 선심을 써서 얻은 인기로 반대파를 억누르고 독재를 휘두르고 있으며 장기집권을 획책한다고 선전한다.

이번 12월 대선을 앞두고 국제 통신사인 AP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베네수엘라 국민 25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 방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61%가 '베네수엘라가 현재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63%가 차베스의 공약을 지지했으며 특히 교육정책(75%), 의료정책(74%)에 높은 지지를 보여 가난한 민중에 우선을 두고 개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정부에 적극 호응했다.

차베스는 이를 바탕으로 빈곤층에서 8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으며 중간층에서도 56%의 지지를 얻고 있다. 참고로 베네수엘라 인구의 약 25%에 달하는 백인들이 메스티소(혼혈) 출신의 차베스에 비우호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지지도나 이번 대선에서 얻은 62.89%의 득표율은 거의 전폭적인 국민 지지도라 아니할 수 없다.

차베스가 구세력을 탄압하거나 정치적으로 박해하지 않았다는 점은 2002년 4월 쿠데타 주동자들을 석방하고 그 배후인 언론 재벌 총수들에게 어떤 정치적 보복도 가하지 않은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오랫동안 버려둔 유휴 토지를 빈민들에게 나눠주거나 사주가 경영을 포기한 기업을 노동자들의 자주 관리로 재가동할 때에도 일방적 몰수가 아닌 시가 배상 원칙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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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주요국의 정치 여론과 민주주의 성숙도를 조사해 발표하는 라티노 바로메트로 2005년 자료 ⓒ 라티노 바로메트로

차베스를 '소련 제국 붕괴 후 최대의 위험인물'로 취급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혁명 추진 과정을 국민들로부터 확인하는 다섯 번의 국민투표, 차베스가 승리한 세 번의 대선 그리고 지난 2004년 8월 미국의 원격 조정과 차베스 반대파들의 주도에 의해 실시된 대통령 소환투표 결과까지 모두 공정하고 적법한 선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년 라틴아메리카 주요국의 정치 여론과 민주주의 성숙도를 조사해 발표하는 라티노 바로메트로(www.latinobarometro.org)의 2005년 보고서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현주소가 중남미 전체에서 어떤 정도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국이 민주적이냐는 10점 만점 질문에 베네수엘라는 7.6점으로 전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96년 30%에 불과했던 자국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비율이 2005년 조사에서는 56%로 대폭 늘었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희망과 참여도를 간접적으로 평가해볼 수 있는 정치 냉소주의 항목에서 베네수엘라는 40점으로 냉소 지수가 가장 낮았다. 18국 평균 점수는 55점이었으며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이 58점, 멕시코가 51점으로 나타난다.

또한 민주주의가 발전의 유일한 길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18개국 가운데 베네수엘라인들의 지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베네수엘라인들의 민주정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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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민주화 정도를 묻는 라티노 바로메트로 조사에서 베네수엘라는 7.6점으로 전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96년 30%에 불과했던 자국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비율이 2005년 조사에서는 56%로 대폭 늘었다. ⓒ 라티노 바로메트로


희망과 민주주의를 체험한 국민이 혁명 주체

이상으로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몇 가지 오해 또는 곡해를 살펴보았다. 베네수엘라가 성큼 내딛고 있는 역사의 진전은 결코 그 나라의 지배세력이 허술하거나 오일달러가 풍부해서 또는 국민에게 일시적으로 영합하고 시혜를 준다든가 정적들을 탄압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이 익어 떨어지듯 그렇게 쉽게 저절로 얻을 수 있는 혁명이란 없다. 헌법도 아닌 하위 법률에 불과한 국가보안법 하나 폐지하는 것이, 사학법 하나를 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익히 보지 않았는가. 하물며 혁명은 사회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꿔 나가는 과업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차베스를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불이 붙여졌다고 할 수 있지만 이내 불길은 국민 전체로 확산되었다. 이미 어떤 세력도 인위적으로 그 불길을 잡을 수 없으며 오직 베네수엘라 국민들만이 이를 통제 가능한 수위에 이르렀다.

초기 차베스는 400여개 라디오 방송과 20여개 텔레비전, 100여개 신문 연합세력과 싸웠으나 이제 수백만 국민들이 차베스를 지키며 역사 변화의 전면에 나섰다. 민주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고 희망을 품기 시작한 국민들이 베네수엘라 혁명의 주체로 당당하게 등장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희용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미디어센터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희용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미디어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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