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병'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중동 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국가 경제에 해가 될 수도 있지만 베네수엘라 차베스는 석유를 경제의 토대로 만들었다.PDVSA 홈페이지
석유 수익을 정권과 관료, 이에 유착한 소수 자본가들이 커넥션을 형성해 독식하면서 국가 체제 전반이 석유 이권을 둘러싸고 운영되는 것을 '석유-국가 체제'라 한다. 베네수엘라의 석유-국가 체제는 악명 높은 군부 독재자 '고메스' 집권 시절인 1910년대에 탄생했다.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에 더욱 강화되는 이 체제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지배 정당인 민주행동당(AD)과 기독사회당(COPEI)이 1958년 푼토 피호 협정을 맺어 이후 집권당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득표율만큼의 정치적 지분을 다른 당에 할당해 왔다. PDVSA와 연관된 이권의 안정적 배분 역시 유지되었다. 이런 오랜 관행으로 PDVSA의 관리자들과 노동조합은 제어장치 없이 특권화되었다.
석유-국가 체제는 급격한 도시화, 빈민의 양산 그리고 농업의 몰락과 함께 진행되었다. IMF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한 페레즈 집권 2기의 약 3년(1989-1993) 동안에만 60만 명의 소농과 빈농이 도시로 이주했다. 이들은 대부분 영세한 노점상으로 연명하는 거대한 도시 빈민층을 형성하였다.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된 국가이면서 동시에 역내 유일의 농산물 수입국이자 농업 비율 최하위의 국가로 전락했다. 농업 인구는 1935년 전체 노동력의 60%에서 1960년 35%, 현재는 약 12%로 급격히 감소한 상태다.
이처럼 국민을 소수의 석유산업 수혜자와 다수의 빈민으로 양분화시킨 데에는 석유 산업 호황기였던 1970년대 포퓰리스트 통치자들의 정책 실패도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 1976년에서 1995년 사이에 베네수엘라는 거의 2700억달러를 석유로 벌어들였으나 대부분 늘어나는 소비재 수입과 서비스 수지 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했을 뿐 고용과 내수 시장 확대를 위한 경제 구조 개혁은 손대지 않았다.
1994년에 이미 외채는 GNP의 53%에 이르게 되고 1996년 베네수엘라는 1인당 소득이 1960년보다 낮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국내 언론 상당수가 차베스를 '풍족한 석유수입으로 빈민에게 인심을 써 권력을 강화하는 포퓰리스트'라고 지칭하고 있으나 이는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실제 남미의 포퓰리스트들은 경제 구조 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그들의 정책은 국민의 빈곤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차베스, 석유를 '혁명의 씨앗'으로 만들다
오일 붐이 끝나고 경제가 경색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1980년대의 긴축 정책과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특권과 석유 이익의 분배 왜곡을 개선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사유화, 공공지출 감소, 자유화와 탈규제를 정부의 기본 정책으로 채택하고 통신, 항만, 석유, 철강, 항공 등 기간산업이 사유화되면서 외국자본에게 소유권이 이전된다. 공언했던 인플레이션 차단은 지킬 수 없었고 오히려 빈민층은 더욱 확대되었다.
차베스 정부는 먼저 석유 산업에서부터 경제 개혁을 시작했다. 1999년 제정된 신헌법을 통해 PDVSA의 완전한 국유화를 명시하고 이전 시기의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분명한 단절을 선언한다.
차베스가 PDVSA를 완전 국유화하기 위해 최초로 행한 간단하면서도 통렬한 조치는 이사회를 PDVSA 출신이 아닌 석유 전문가로 구성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PDVSA는 지나치게 국가로부터 독립되어 '국가 안의 국가'로 군림했고 이사회는 거의 완전히 관리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었다.
차베스가 관리자들의 내부 승진이라는 수십 년 전통을 깨어버리자 이들은 즉각 반발해 나섰다. 경영진, 관리자는 물론이고 어용화된 노조 간부들이 주축이었다. 차베스가 석유 산업의 지배력을 보다 확고히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반 차베스 진영이었다.
2002년과 2003년의 자본 파업 기간 동안 PDVSA는 약 4만 명의 임직원 중에 무려 1만 8천에서 9천 명의 인원을 대량 해고했다. 이것은 결코 차베스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PDVSA의 기득권층을 몰아내는 계기가 되었다.
관리와 조직 구조를 개편하자 중남미 석유 기업 중 최하위였던 PDVSA의 효율성과 이익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PDVSA의 개혁과 함께 차베스 정부는 세금 개혁을 통해 국내외 석유 기업들의 부당 이익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한다.
세금 개혁은 소득세를 줄이고 로열티를 올리는 조치를 주 내용으로 한다. 비용을 부풀려 소득세를 적게 내고 각종 협상을 통해 로열티를 거의 무력화시켜 왔던 국내외 석유 기업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차베스 정부의 석유 산업 개혁은 석유 산업 그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차베스 정부는 석유 산업과 비석유 산업의 연계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기금을 조성해 석유 수익을 다른 산업 발전의 종자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거시 경제 안정화 기금'과 '사회 경제 발전 기금'이다.
특히 사회 경제 발전 기금은 PDVSA의 자체 결정을 통해 결성되었으며 사회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에 사용된다. PDVSA는 2005년에 수익의 50%를 웃도는 미화 69억달러를 이 기금에 출자했다. 또한 로열티와 소득세에 해당하는 191억달러를 이미 정부에 납부했기 때문에 국내 총 매출의 약 57%가 비석유 부문에 재투자된 셈이다.
PDVSA의 매출액 규모는 삼성전자와 비교할 수 있다. 2005년도에 PDVSA는 국내 매출액 456억 달러, 총 매출액 999억 달러를 기록했고, 삼성전자는 단독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약 610억 달러, 연결재무제표(계열사와 해외법인 포함) 기준 약 900억 달러 수준이다.
비슷한 규모, 자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삼성전자는 PDVSA가 다른 산업의 균형적 발전, 국민경제의 총체적 발전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기여도를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석유 경제에서 사회적 경제로
PDVSA 개혁으로부터 시작된 차베스 정부의 경제 구조 개혁은 최근 분명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경제 성장 추세는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높은 GDP 성장률이 그 증거다.
GDP가 2003년의 자본 파업 이후 1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4년 후반기부터 10% 안팎에서 안정적이다. 10%라는 수치는 웬만한 충격이 없는 한 반전되기 어려운 값이며 일정 경제 규모 이상의 국가에게는 가까운 미래의 성장을 약속시켜 줄 수 있는 대단히 고무적인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