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자주관리 현황을 밀착된 시선으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5개 공장>이 올해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감독_다리오 아젤리니 & 올리버 레슬러, 상영시간_81분 / 제작년도_2006년>제10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올해로 벌써 열 돌을 맞은 서울국제노동영화제(지난 11월 16일부터 19일)에서는 해설자도 가벼운 배경음악도 하나 없이, 공장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 <5개 공장>(5-Factories : Workers Control in Venezuela)이 상영된 바 있다.
영화는 노동자 자주관리로 운영되는 베네수엘라의 다섯 공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6년, 바로 올해 제작된 따끈따끈한 이 영화처럼 새로운 경제 모델을 세우기 위한 실험이 베네수엘라에서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전통이 오래고 노조 조직률과 노동계급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함을 자랑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착수해보지 못한 초유의 실험이다.
'공장 속으로(Fabrica Adentro)'라고 불리는 베네수엘라의 공동경영 프로젝트는 현재 595개 민간 기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 중 120여개 기업이 공동경영 기업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다섯 개의 공장은 그 가운데 이미 공동경영이 정착단계에 들어간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공장이라 할 수 있다.
기업경영 노동자가 주도하고... 지역민도 참여
@BRI@공동경영 도입은 두 가지 경로로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는 국유 기업을 공동경영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휴 공장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기업이 국유 전력회사인 카다페(Cadafe)다. 이 회사는 2002년 자본파업에 경영진이 참가함에 따라 기업 경영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공장 폐쇄 직전인 2002년 12월, 노동자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직접 기업의 보안 계획을 세우면서 기업 운영에 노동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극복한 이후 2003년 4월부터 공동경영이 실질적으로 정착되었고 정부의 지원과 노동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생산과 투자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자의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인베발(Inveval)을 들 수 있다. 밸브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소유주가 2002년 12월 9일부터 공장 폐쇄 조치를 취하고 체불 임금 지급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2003년 3월부터 회사를 점유하고 약 2년 동안 자체적으로 생산하면서 투쟁하게 된다.
정부는 소유주에게 신용을 제공할 테니 공장을 재가동하라고 설득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정부는 의회의 만장일치 결의를 통하여 소유주에게 보상금을 주고 2005년 4월 국유화 조치를 취했다.
정부가 51%의 지분을, 노동자들의 체불 임금은 투자 형태로 전환되어 노동조합이 49%의 비율로 주식을 보유하며 노동자 선출 대표와 정부 파견 경영진이 공동으로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공동경영 도입의 주요한 동력은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2003년 자본파업을 전후하여 PDVSA와 카다페를 비롯한 많은 기업에서 경영진이 폐쇄한 공장을 노동자 스스로 생산 시설을 복구하고 운영한 경험이 공동경영의 실현 타당성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카다페의 자회사인 칼데라(Cadela)의 경우 약 80~90%의 비율로 노동자들이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본사에서 임명하던 경영진들도 노동자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노동자 고용의 경우에도 노조가 결정권의 75%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노조의 부정부패 사례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동 경영이 모든 기업에서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각종 좌우 편향이나 경험 부족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알루미늄 생산 기업인 알카사(Alcasa)의 경우 처음 공동경영을 도입했을 때, "회사를 버리고 도망친 모든 간부와 이사들을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 노선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회사의 CEO인 게릴라 출신의 카를로스 란스 대표는 2000여명의 경영진을 일시에 해고하여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겪었던 국영 석유기업(PDVSA)의 사례를 들어 완강한 간부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공동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회의, 유인물, 신문 그리고 토론 등을 통하여 몇 개월이 지나면서 노동자들이 기업에서 권력을 얻는 것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합됨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점차 공동경영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노동자와 경영진뿐만 아니라 지역의 협동조합들도 '공동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7월 칼데라사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경비, 청소, 계량기 확인, 청구서 전달 등 기업의 외주 사업에 약 575개의 협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기업은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교육을 위해 인근의 야노스 대학과 연대하여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의 지역 사회에 대한 적극적 책임성을 보여주는 이런 사례는 공동경영이 단지 해당 기업 내의 민주주의와 노동자 권리 신장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을 입증한다. 베네수엘라가 지향하는 '자본의 증식이 아니라 인간의 발전을 위한 경제', '연대성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는 정부의 구호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하부 기초 단위를 이루는 기업 단위에서부터 관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200배로 늘어난 자주관리 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