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중인 한국의 아파트 - 고층, 대단지에 고급화가 추세다이봉렬
둘째 정부의 정책에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사회 분위기를 들 수가 있다. 싱가포르의 언론 통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상당한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국민들 역시 정부정책에 대한 조직적 반대는 엄두를 내지 않는다(리콴유 수상 이후 싱가포르 정부의 모습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대와 매우 흡사하다).
때문에 싱가포르 정부가 결정한 정책은 별 어려움 없이 현장에서 시행될 수 있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며 인구도 40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 개발할 수 있는 크기이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한 숫자이며 실제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단 인구가 싱가포르의 열 배가 넘는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신도시를 짓는다거나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는 거기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거의 모든 집단과 개인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조율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개발 지역에 미리 땅을 확보 한 뒤 비싸게 되파는 이른바 알박기나, 떳다방이라 일컬어지는 투기 세력들 때문에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천문학적인 토지보상 비용이 곧 아파트 원가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정부정책에 방해가 되는 위와 같은 행위는 상상하기 힘들다. 1966년 토지수용법이 제정된 이후 싱가포르에서는 토지 보상비가 시가보다 높은 경우는 없다. 국가 정책보다는 개인의 이해 관계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행동으로 표출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싱가포르의 HDB 공급과 같은 정책이 별 저항 없이 그것도 50년 가까이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정부 정책에 군말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치 판단을 떠나 싱가포르와 한국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뿐이다).
[한국과 싱가포르의 차이③] 땅에 대한 집착도
세 번째는 땅에 대한 일반적 정서를 들 수가 있다. 싱가포르 국민의 80% 이상이 중국계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땅은 황제의 것이라는 정서로 인해 땅에 대한 집착이 그리 크지 않다. 때문에 토지임대부 주택공급정책에 대한 저항이 그다지 크지 않다. 현실적으로도 싱가포르의 땅은 완전히 개인소유가 아니다. 30년 임대, 99년 임대, 999년 임대, 이런 식으로 실제로는 소유하지만 법적으로는 임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싱가포르 토지의 90%는 국유지다.
땅에 대한 집착이 그 누구보다 강한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땅이 정부 혹은 시행사의 소유라 해서 입주자가 땅에 대한 임대료를 매달 내야 한다면 거기에 입주할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집은 없어도 땅은 사라' 이런 식의 제목을 단 부동산 관련 책들이 서점의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서민들도 오랜 경험을 통해 땅에 대한 투자는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은 지 오래다. 땅에 대해서 만큼은 (한국에서 마치 하나의 신앙처럼 여겨지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포기하겠다는 혁명적 발상 외에는 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집착을 막을 수 없다.
주거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집값이 잡힌다
그렇다면 왜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을 소개했었던가. 그건 싱가포르 주택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을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주택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대상이다.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주거 이외의 목적을 가지고 주택을 취하려고 하면 각종 규제를 한다.
그 규제 안에는 토지환수법과 같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나 연기금의 전용같이 돈이 되지 않는 정책 등 한국에서는 도입 자체가 불가능한 항목들이 다수 들어있다. 주거 안정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철학과 주거 안정을 위해 개인 소유의 땅마저도 헐값에 내놓을 수 있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와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을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마냥 따라 하다가는 되레 혼란만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주택정책이 분명 있다. 하지만 세금을 통한 투기소득의 환수, 분양가 완전 공개 등 이미 숱한 논의가 이루어진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의지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국민들 역시 다수의 주거안정을 위해 자기 소유의 집이나 땅 값이 떨어지는 걸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배워야 할 것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집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시각이다. 주공이나 토공은 집을 수익사업의 대상으로, 거대 건설사들은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국민들은 유일한 재테크 수단으로 보고 있는 한 서민들의 주거안정은 요원한 일일 뿐이다. 정책을 바꾸기 전에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집값이 잡힌다. 그래야 서민들이 산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