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검증되지 않은 '역사지도' 문제있다

<주몽> 작가들의 위험한 국수주의

등록 2006.12.12 17:02수정 2006.12.1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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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11일) 방영된 MBC 역사드라마 <주몽>에서 '고조선의 강역지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고조선의 옛 역사를 알고자 하는 주몽이 찾아간 한 상단에서 고조선의 유물로 등장한 것이다.

지도가 공개되자 자리에 배석한 주몽과 그 수행원들은 지도에 표시된 고조선의 영토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자아낸다. 같은 시간(?) 드라마를 통해 저 너머 미래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던 필자도 깜짝 놀랐다.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는 물론 중국 대륙의 대부분이 고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 영토, 정말 맞나

<주몽>에 나온 고조선 지도. 만주, 연해주, 한반도, 중국 전체를 고조선의 영토로 그리고 있다.
<주몽>에 나온 고조선 지도. 만주, 연해주, 한반도, 중국 전체를 고조선의 영토로 그리고 있다.MBC드라마
그렇다면 지도에 표시된 영토는 정말 고조선의 것일까? 답은 논란은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로 해야 맞다.

영토 관념부터가 다르다. 일정한 선을 근거로 하는 오늘날의 영토 개념이 정해진 것은 근대의 산물이다. <삼국사기>등의 옛 사서를 보면 고대 삼국의 국가 개념은 자연 지형물인 산과 강에 의지한 상태에서 '성' 혹은 '취락'을 중심으로 매겨진다.

그리고 그 주변의 지역은 주인없는 땅이거나 성을 소유한 세력의 지배권이 간접적으로 미치는 지역일 뿐이다. 오늘날의 영토와 같이 선을 그어 그 선 내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건 아니다.

또 고조선의 강역 또한 많은 논란이 있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발생한 논란이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인류학이나 고고학 등의 여러 학문을 이용해 고조선의 국가적 발전단계를 규정하고 이를 사료해석과 연관시키는 조심성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체로 현 통설에 따르면 국사교과서에 나와 있는대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부, 요동 지역을 소유한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조선이 행사했다고 한다.

북한학계와 우리학계의 일부에서는 통설보다 상당히 넓은 지역인 한반도 북부와 남부, 연해주 일부 만주 대부분, 요동, 요서 지역까지를 고조선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다지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고학적 성과나 인류학적 발전과정에 얼마나 부합하느냐, 사료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느냐 하는 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설을 인정해놓고 봐도 중국대륙 전체를 먹어버린 <주몽>의 고조선 지도는 그야말로 '오버'다.

물론 그 당시에 그런 지도가 있을 리도 없다. 동아시아 정도 이상의 범위를 그린 지도는 조선 초기, 중기가 되어서야 겨우 나타난다. 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여러 가지 고려하지 않고 방송을 내보내는 것일까? 벌써부터 <주몽> 시청자게시판이나 네이버 등에서는 그런 지도가 정말로 있었는지, 그 영토가 사실인지를 묻는 독자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BRI@ 물론 역사드라마는 작가에 의해서 쓰여진 픽션이다. 그 허구적 성격을 인정하기에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합리성과 기본적 전개가 부합한다면 특히나 사료가 적은 우리 고대사에서는 드라마의 원활한 전개를 위한 역사적 상상력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그 역사드라마의 소설적 상상력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이 기본적인 사실을 규정하는 데까지 근거없이 남발되는 것은 옳지 않다. 주몽이 판타지 적인 성격을 가지는 역사물이라고 홈페이지에 규정되어 있다 해도, 사실까지 '판타지'로 왜곡해서 아직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헛된 망상을 심어놓는 것은 공중파 드라마의 책임있는 작가로서 할 일이 아니다.

철저한 학문적 검증과 합리성에 입각한 근거로서 다뤄야 하는 일을 헛된 카타르시스를 자극하기 위해 왜곡하다니, 답답할 따름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고구려의 고유 왕호인 '태왕'을 버리고 부여(왕)나 고조선(단군)의 통치자까지도 '황제'라고 칭하는 거며, 몽고 이후에 수입된 '마마'라는 단어를 시중들이 유화부인이나 대소왕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읊조리고 있는 걸 보노라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유로 많은 고구려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사료가 부족한 관계로 많은 부분 픽션에 깃댈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제대로 다뤄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고구려 역사를 보는 것 또한 올바르게 우리 역사를 인식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국, 혹은 자기 민족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 일본과 같이, 역사적 학문적으로 제대로 근거도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그저 넓은 게 보기 좋으니까, 황제라는 이름이 높아 보이니까 지도를 왜곡하고 왕 칭호를 왜곡한다면 그것이 일본의 우익과 중국의 동북공정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그것을 보면서 나중에 어떤 생각을 가지겠는가? 끔찍한 일이다. <주몽>을 비롯한 드라마 작가들은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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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우진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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