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책보다 우리 그림책이 더 재밌어요!"

일본 민족학교로 '한글 책 보내기 운동' 펼치는 '뜨겁습니다'

등록 2006.12.12 13:13수정 2007.04.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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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 든 시즈오까 조선학교 아이들
책을 받아 든 시즈오까 조선학교 아이들다음카페 뜨겁습니다
'뜨거운' 사건의 시작은 이러하다.

최준혁(38·LG화학 과장), 김종호(36·이지스효성(주) 전자결제사업부팀장) , 김기백(36·ING생명 FC). 이 세 사람은 2003년 휴가차 방문한 일본에서 2명의 아리따운 여교사와 조우한다.

일견 여느 일본의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녀들은 시즈오까 조선초중급학교에 재직 중이던 재일조선인 3세. 4,5세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을 천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재일조선인 사회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세 사람은 당시를 회상하며 재일조선인에 대한 신비감이 녹아내리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었노라 고백한다. 또 서른 중반을 넘기고 있는 자신들에게 '당신들도 뜨거운 사명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질문 하는 것 같아 느낌이 남달랐다고.

미혼이던 3명의 남한 총각과 아리따운 2명의 재일조선인 여교사. 그들 사이에 한창 이야기꽃이 피어날 때 즈음 한 여선생님의 고백이 있었다.

"이렇게 남한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으니, 마음이 뜨겁습니다."

'뜨겁습니다'. 그것은 감동스러운 감정이나 상황의 재일조선인식 표현이었다.


동화책 150권, 무사히 조선학교에 도착하다

@BRI@흔히 재일조선인들에게는 3개의 조국이 있다고 말한다. 태어난 일본, 대다수 할아버지들의 고향인 남한, 그리고 정신적 고향인 북한. 한반도가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후 재일사회는 민족학교의 설립을 결정, 남한과 북한 양측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손을 내민 것은, 당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북한뿐이었다. 이때부터 조선 학교와 북한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됐다.

재일조선인 교사들은 교류가 끊기다시피 했던 남쪽 사람들과 '우리말'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재일조선인 여 교사들과의 만남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세 사람은 한국에 돌아와 조선학교와 교류할 방법을 생각한 끝에 책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기증본으로 들어온 책들을 모아 국내외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덕분에 2003년 9월 초·중·고학생들이 보는 150권의 동화책이 무사히 조선학교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창단 멤버인 김기백씨는 돈이나 비품이 아닌 '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쟁 이후 재일조선인 사회는 우리말 교육과 함께 정체성을 유지해왔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공간인 민족학교야 말로 재일사회의 중심이자 마당(場)이였죠. 민족학교 아이들은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는 이미 열려있습니다. 남은 것은 '한국'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한국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멤버들이 체계적으로 책을 보내기 위해 위해 필요했던 것은 두 가지로,돈을 구하는 것과 책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일단 초창기 멤버 3명이 낸 회비와 지인들을 통해 200여 만원의 지원금이 마련됐다.

자금 확보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책 선정이었다. 이 때문에 책을 선정해줄 사람을 수소문했고, 당시 사단법인 '어린이와 도서관' 이사이던 김소희씨를 만나게 된다.

현재 행당동에서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라는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이들의 뜻에 공감, 적극적으로 책 선정에 동참해줬다. 김소희씨도 지인들로부터 책 후원을 받아 2개월에 한 번 꼴로 안정적인 책발송이 기여했다. 이로 인해 2004년 8월의 두 번째 시즈오까 방문까지 대 여섯 차례 책을 발송할 수 있었다.

책 발송, 조선학교에 큰 반향 일으켜

'뜨겁습니다' 회원들
'뜨겁습니다' 회원들박은영
2004년 8월 두 번째 방문 때는 5명의 인원이 일본을 찾아, 시즈오카조선학교의 교장이던 이영삼 선생님의 주선으로 학교 어머니회 회장의 식사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지난 1년여 동안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내오는 책이 현지 학교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말해주었다.

멤버들이 학교를 찾았을 당시인 2004년은 북한 납치 사건의 파장이 일본 열도를 뒤흔들고 있을 때였다. 조일(朝日)수교를 위한 회담 과정에서 일본은 북한에게 납치문제를 시인하는 조건으로 수교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북의 납치 시인은 정치적으로만 이용된 채 수교는 무산됐다. 북한의 전략은 빗나갔고, 일본 내의 반북(反北) 감정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같은 북한의 처신은 재일사회를 어렵게 했다. 재일조선인들을 타깃으로 한 범죄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일본 우익 단체들이 재일동포들의 영업점과 은행 등에 노골적인 테러를 가해왔다.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한국전쟁 이후 재일조선인들은 북한을 정신적인 고향으로 의지해왔다. 그러나 재일사회에 일어날 파장을 무시하고 정치적 판단을 내린 북한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한국으로부터 늘 소외당해오던 이들은 북한에게마저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남한에서 배달된 책은 재일사회를 위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두 번에 걸친 방문 이후 '뜨겁습니다'와 민족학교 간의 교류는 더욱 끈끈해졌다. '책돼지' 저금통을 제작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 이를 통해 특정한 기업이나 단체만이 아닌 뜻있는 누구나가 후원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3명으로 시작한 다음 카페 모임방 '뜨겁습니다'의 회원수도 어느덧 300명을 훌쩍 넘어섰다. 개설 당시는 동호회 성격의 작은 모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9월 SBS스페셜 <나는 가요-도쿄 제2학교의 여름>이 방송된 후 회원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조선학교에 대한 사이트나 단체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뜨겁습니다'의 그간 활동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

"책을 잘 읽는 한 학생이 '일본 책보다 우리 그림책이 더 재미있어요. 뭔가 일본책하고 달라요'라고 했어요. 단지 우리 책이 좋아서 많이 빌려간 학생도 있어요. 여러분들께서 우리 학교에 이렇게 우리 책을 보내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 학생들은 우리 책 감상 글을 쓸 기회가 없었을 것이에요. 이런 느낌, 재미있다는 느낌, 보고 싶다는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우리 책을 정말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시즈오카초중급학교의 김정애 선생님)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든든한 아군은 일본 현지에 있는 회원들이다. 현재 300여명의 회원 중 30~40%는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이다. 이들이 올려놓은 게시물을 보고, 각 조선학교의 기획행사에 대표를 파견하거나 축사나 현수막 등을 보내 마음을 전하고 있다.

'뜨겁습니다'의 목표, 재일조선학교 세상에 알리는 것

다음카페 뜨겁습니다
지난 1월 사상 처음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보인 오사카조고의 축구 경기에는 뜨겁습니다의 대표 최준혁씨가 직접 가로 세로 10m 사이즈의 플래카드를 들고 일본을 찾기도 했다. 경기 직전에 완성된, 사람 키보다 큰 플래카드를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는 최준혁씨. 한국말로 쓰인 문구를 보며 더욱 힘차게 달렸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원래 축구를 잘 해. 힘껏 달려라 오사카 조고, 꿈☆은 이루어진다."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들을 위한 나라, 아이들을 위한 미래를 위하여…. 이들의 마음은 남한에게 문을 닫고 있던 재일 사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어제 저녁에 모임에서 여러분들이 불러준 노래에 목이 메여 눈물이 자꾸만 나는데… 이제야 남쪽에서도 '우리의 민족교육'을 리해하기 시작했고 우리 1세분들이 하늘에서 한풀이 하셨겠지란 생각도 솔직히 들었어요."(조선학교 학부모 주명미 어머니의 편지)

왜 이 일을 하는가? 멤버들은 자문한다. 질문의 답은 재일조선학교를 한국사회와 세상에 알리는 것.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자발적인 '홍보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뜨겁습니다'의 멤버들은 자신들이 재일사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도움 없이 잘 살아왔고 도움 없이 살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그들을 향한 큰 박수에 불과합니다. 재일 사회에 시선을 보내고, 그들을 주인공 삼아 화제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자 하고 싶은 일입니다. 재일조선인을 만나봐라. 그들의 말을 들어봐라… 그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감동도 목표도 없이 사는 이들의 삶 자체가 변하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 다음카페 '뜨겁습니다' 바로가기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 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뜨겁습니다' 바로가기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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