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려면 산꼭대기에 올라라

흰 눈을 뒤집어 썼으니 백봉산이라...

등록 2006.12.14 14:41수정 2006.12.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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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등산로 초입의 소나무숲

등산로 초입의 소나무숲 ⓒ 김선호

조금 특별한 산행을 계획합니다. 마을 뒤편에 펼쳐진 고래산 자락을 넘으면 백봉산(590m·경기도 남양주)에 닿습니다. 정상을 넘어 백봉산 서편에 자리한 묘적사까지 걸어가 보는 산행입니다.

고래산 아래 동네에 어느새 번듯한 아파트가 또 하나 늘어 있습니다. 상전벽해의 현장을 눈앞에서 봅니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논과 밭이 있었고, 배경처럼 산자락이 펼쳐져 있었던 곳입니다.


@BRI@지금은 도로가 뚫렸고 도로 양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꽤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마을 뒤편의 산자락을 야금야금 파먹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지난해 달랐고 올해 또 다른 모습입니다.

입지가 좁아져 한없이 작아 보이는 고래산 초입에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 초입은 숲으로 내딛는 발길을 행복하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숲이 고사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파트를 짓느라 소나무 숲 일부가 잘려나가는 중입니다. 나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 테지요.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소나무 숲이 유난히 황폐해 보이는 까닭입니다.

소나무 숲 입구에 있던 작은 채마밭에 정체불명의 건물이 또 지어지고 있으니 이 아름다운 소나무 숲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겨우내 잎을 떨어낸 참나무군락이 시작되는 길입니다. 다양한 수종의 낙엽 활엽수 속에 단연 넓은 군락을 차지한 참나무 이파리들이 눈에 띕니다.

a 갈잎 떨어진 겨울 숲길

갈잎 떨어진 겨울 숲길 ⓒ 김선호

백봉산에서 '낙엽 밟는 일'은 특별한 맛을 전해 줍니다. 백봉이 흙 산이기 때문입니다. 바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혹자는 지루하게 완만한데다 흙 산인 까닭에 백봉은 산을 오르는 맛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가파름보다는 완만함이, 바위보다는 흙에 더 천성이 맞는 내겐 더 없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산입니다.


지루하긴 합니다. 590미터의 비교적 낮은 산인데도 정상에 도달하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을 요하는 산이기도 합니다. 백봉산 정상까지 약 5킬로가 넘습니다.

아, 백봉산의 원래 이름은 '잣봉산'이었다고 합니다. 잣나무가 많은 관계로 잣봉산이었던 것이 일본강점기를 거치면서 '백봉산' 되었다고요. 한자로 명기하면서 엉뚱한 이름을 얻는 백봉산, 아니 잣봉산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백봉산으로 부르면서 왜, 그리되었는지 생각하는 일조차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오늘(10일)만은 백봉산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흰 눈을 뒤집어쓴 봉우리가 있는 산'이 되었습니다.

a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또다른 나무의자, 잠시 쉬었다 가세요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또다른 나무의자, 잠시 쉬었다 가세요 ⓒ 김선호

하루 전 우리 마을에 비가 내렸습니다. 마을에 비가 내리는 동안 산봉우리엔 눈이 내렸던가 보았습니다.

백봉산 정상을 앞두고 7부 능선부터였을까, 조금씩 눈이 쌓여 있는 게 보입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지요. 앞서가는 누나의 엉덩이에 눈덩이를 던지는 동생에게 질세라 누나도 열심히 눈덩이를 뭉칩니다. 그래도 엄마보다 쳐지는 법이 없는 걸 보면 우리 두 아이 이젠 산행 실력이 보통은 넘은 것 같아 지켜보는 내가 다 뿌듯합니다. 건강한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 내지 않을지요.

a 이상하게 가지를 뻗은 밤나무, 나무를 올라보기도 하고....

이상하게 가지를 뻗은 밤나무, 나무를 올라보기도 하고.... ⓒ 김선호

때마침 눈앞에 이상하게 가지를 뻗은 밤나무를 발견한 아들 녀석이 손에 든 눈 뭉치를 팽개치고 나무를 타느라 낑낑댑니다. 예전에 우리 그러지 않았는지요. 집앞에 혹은 마을 앞에 아름드리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를 한두 번쯤 타보지 않았던가요? 그 생각이 나서 나무를 타는 아들을 그냥 지켜보기로 합니다. 나무한테는 미안한 마음 없잖아 있었습니다만.

a 눈이 쌓여 눈사람도 만들면서 산을 올랐지요

눈이 쌓여 눈사람도 만들면서 산을 올랐지요 ⓒ 김선호

백봉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는 아예 설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 덕분에 눈 구경 한번 하기 참 힘들다 싶었는데 백봉산에서 만난 눈이 참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눈을 만나려면 높은 산에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씁쓸한 마음도 있었지요.

a 오늘은 그 이름에 걸맞게 백봉산 정상이 온통 하얀세상입니다,

오늘은 그 이름에 걸맞게 백봉산 정상이 온통 하얀세상입니다, ⓒ 김선호

정상석이 있는 바로 아래쪽에 넓은 터가 있습니다. 먼저 온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닭싸움을 하느라 왁자합니다. 눈이 쌓였으니 동심이라도 발동한 것일까요? 닭싸움을 하는 어른들 옆에서 우리 두 아이는 눈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럴 때 그만 가자는 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묘적사를 다녀오려면 시간이 넉넉지 않을 것 같아 아이 둘을 챙겨 다시 산 정상을 내려섭니다.

백봉산이 품어 안은 묘적사는 남서쪽에 있는 작은 절입니다. 사명대사의 전설이 내려오고, 승군을 비밀리에 조직했다는 비밀결사의 장소였다고 전해지는 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절의 분위기가 조금은 묘연하기도 합니다.

묘적사 가는 백봉의 줄기는 다소 험합니다. 줄곧 느긋한 오르막을 올라서인지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진 묘적사 가는 길은 적잖이 다리가 팍팍해져 옵니다.

내리막길엔 낙엽만이 쌓인 한적한 숲길입니다.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오후의 해가 머리맡에서 기분 좋게 내리고 있어 다리의 팍팍함 즘은 잠시 접어 두어도 좋을 듯싶습니다. 언제 보이나 싶었던 묘적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은 팍팍했던 다리가 저려져 올 즈음이었습니다.

a 산사의 뒷모습이 고즈녁해 보입니다.

산사의 뒷모습이 고즈녁해 보입니다. ⓒ 김선호

묘적사 뒷마당이 보였습니다. 규모가 작아 단아한 절, 두 해 전 여름에 가 보았던 절을 뒤편에서 바라보니 그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게다가 앙상한 겨울이 배경이어서 인지 녹음의 풍요로움에 둘러싸여 있던 여름의 묘적사와는 그 느낌이 상당히 다를 수밖에요.

a 단정한 가람배치의 묘적사

단정한 가람배치의 묘적사 ⓒ 김선호

그래도 단아함은 여전합니다. 묘적사를 특별히 인상적이게 만들었던 절 마당의 대빗자루 자국도 선명합니다. 묘적사의 겨울도 나뭇잎을 떨어뜨린 겨울나무 같은 느낌입니다. 생긴 그대로 나무둥치가 법당과 요사채의 기둥으로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는 때이기도 합니다.

a 이 연못에 여름이 오면 보랏빛 꽃창포가 이쁠 겁니다.

이 연못에 여름이 오면 보랏빛 꽃창포가 이쁠 겁니다. ⓒ 김선호

백봉산에서 발원했을 물줄기가 묘적사 앞마당을 거쳐 작은 수로를 통해 빨래터를 지나 시원하게 흐르는 광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다시 묘적사 뒷마당을 거쳐 백봉으로 향합니다. 묘적사는 아무래도 여름이 와야 제격입니다. 그래야 수로를 타고 넘는 물이 연못으로 흘러 꽃창포가 신비한 남보랏빛으로 피는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내리막을 흘러서 왔으니 이젠 거슬러 오르막을 올라야 할 차례입니다. 묘적사 뒷마당이 보일 때 즈음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가 다시 요란스럽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로 알아듣고 다시 산길을 오릅니다. 돌아서서 바라본 산사의 뒷마당에도 겨울이 깊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백봉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와부읍에 걸쳐 있는 해발 590m의 산입니다. 수도권에 가까운 이 산은 높지 않은 대신 넓게 펼쳐진 산이어서 가족산행을 하기에 좋습니다. 지난 일요일(10일)에 화도읍의 고래산을 출발, 백봉산을 거쳐 묘적사를 밟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 6시간여를 걸었던 길입니다.

덧붙이는 글 백봉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와부읍에 걸쳐 있는 해발 590m의 산입니다. 수도권에 가까운 이 산은 높지 않은 대신 넓게 펼쳐진 산이어서 가족산행을 하기에 좋습니다. 지난 일요일(10일)에 화도읍의 고래산을 출발, 백봉산을 거쳐 묘적사를 밟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 6시간여를 걸었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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