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들 사이선 우리가 인기 짱"

은발의 '밴드'에서 노인들의 '오마이뉴스'까지... "제2의 인생을 산다"

등록 2006.12.19 10:50수정 2008.02.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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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실버밴드 공연 현장 강동실버밴드 공연 현장 ⓒ 김혜원

▲ 강동실버밴드 공연 현장 강동실버밴드 공연 현장 ⓒ 김혜원

우울한 노년, 무기력한 노년, 늘어진 주름살을 끌어안은 뒷방 노인….

 

이런 건 이제 옛말. 자신의 특기를 살리거나 또 다른 노인들을 위해 봉사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멋진 '실버'들이 있다. 겨울 추위도 녹일 만한 열정을 가진 이들을 만나보자.

 

인기 높은 은발의 '밴드'

 

"사아고옹에에 뱃 노오래 가아무울 거어리이며~ 앗싸 신나고~"

 

어깨춤을 덩실 덩실 추는 할머니.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할아버지, 흥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유명한 '돌리고 춤'을 추는 할머니.

 

매주 금요일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소재 강동 노인 종합복지관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인기 만점이라는 신나는 음악교실이 열린다. 지난 8일은 실버밴드의 2006년 마지막 공연 날이었다.

 

강당을 꽉 채운 어르신들에게 매주 흥겹고 즐거운 음악을 선사하는 이들은 '강동실버밴드'. 이미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비틀즈 뺨친다.

 

"신나시죠? 올해 마지막 시간입니다. 신나고 즐겁게 즐기시고 내년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시자구요."

 

실버밴드라고 해서 노년에 취미 삼아 몇 년 배운 실력으로 급조된 팀이려니 상상한다면 오산. 미8군 무대나 동아방송, 이봉조 악단 등 메이저부터 카바레, 요정, 룸살롱 등 '언더그라운드 무대'까지 한때는 날리던 연주자 출신들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트로트부터 컨트리 음악, 재즈, 블루스, 보사노바, 트위스트까지 뭐든 주문만 하면 바로 나온다.

 

"우리가 한창때 함께 음악을 하던 음악인 중에 이봉조 선생, 길옥윤 선생, 김광섭 선생 등이 있었지. 우리도 한때 방송국이나 미군부대에서 알아주는 실력을 가진 잘 나가는 '딴따라'였다구. 지금이야 쉽게 음악을 하지만 우리 때만 해도 어디 그랬나? 어렵게 배운 음악이고 또 음악이 우리의 삶이거든. 요즘 젊은이들은 참 편하게 음악 하는 거야."

 

"그럼, 음악 하던 사람은 음악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요. 나이 들어서 이렇게 마음에 맞는 멤버들을 만나 그룹을 결성하고 노인들을 위해 봉사도 하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안산에서 오는 멤버도 있는데 즐겁지 않으면 못하지. 보는 사람도 즐겁고 연주하는 사람도 즐거우니 이 보다 더 좋은 게 또 있겠나 싶어요."

 

"정말 멋있지 않우?"... '할머니팬'들에게 인기'짱'

 

a '강동실버밴드' 멤버들. 노인팬들에게는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밴드다.

'강동실버밴드' 멤버들. 노인팬들에게는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밴드다. ⓒ 김혜원

 

복지관에서 할머니는 물론 할아버지들까지 폭넓게 인기를 얻고 있는 강동실버밴드의 멤버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단장 송학봉(66)씨를 비롯해 이경호(65·전자오르간), 황운현(65·기타), 김희윤(65·드럼), 주한철(66·섹소폰), 이현종(79·베이스)씨 등 모두 6명이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누가 봐도 평범한 노인들이지만 일단 연주를 시작하면 요즘 잘 나가는 젊은 밴드가 부럽지 않다.

 

연주 중간에 살며시 음료수를 사다놓고 가는 할머니, 중간 중간 환호와 함성으로 호응을 하는 할머니들을 보면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윤도현 밴드를 연상케 한다.

 

일주일 중 실버밴드의 공연이 가장 기다려진다는 한 할머니는 멤버들 모두가 멋지고 실력도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살짝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소녀팬과 다르지 않다.

 

"얼마나 고마워요. 우리들을 위해서 저렇게 즐겁게 해주시니 말이에요. 노래하고 박수치고 춤도 추고 그러다보면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확 풀려요.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젊어지는 것 같아. 그러니 고맙지. 그리고 정말 멋지잖아요. 젊은이 보기에는 안 그래요?"

 

강동실버밴드는 철저히 무보수 자원봉사를 자처한다. 복지관의 한 관계자는 실버밴드의 공연으로 복지관 분위기 많이 밝아지고 즐거워졌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열의를 다해 강의를 하거나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 최소한의 교통비나 식비조차도 해결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늘 죄송하다고 설명한다.

 

실버밴드는 늘 즐겁다. 내 돈 들여 차 타고 오고 내 돈 들여 점심을 먹으면 어떠랴. 노인들의 '윤뺀' 강동실버밴드는 행복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음악을 하니 즐겁고 그 음악을 듣고 행복해 하는 팬들이 있으니 또 기쁘다.

 

노인들의 '오마이뉴스', <실버넷뉴스>

 

a 실버넷 뉴스(www.silvernews.or.kr)

실버넷 뉴스(www.silvernews.or.kr) ⓒ 김혜원

'실버 밴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버 기자'도 있다. 노인들의 '오마이뉴스', <실버넷뉴스>(www.silvernews.or.kr)가 그렇다.

 

지난 13일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만난 변노수(66) <실버넷뉴스> 편집국장은 흰머리에 넉넉한 웃음을 지닌, 누가 봐도 마음좋은 할아버지다. 그러나 이웃을 돕는 봉사정신과 일에 대한 열정, 배움을 향한 집념은 어지간한 젊은이들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대단하다. 이날도 한 장애인의 집을 직접 찾아가 3시간 동안 컴퓨터 교육을 해주고 오는 길이란다.

 

<실버넷뉴스>는 실버들에게 인터넷 무료 교육을 실시했던 실버넷운동본부가 비정치 비상업적인 실버언론을 기치로 2001년에 창간한 인터넷 신문이다.

 

창간 당시 5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1기 기자단을 모집했고 변 국장은 1기 기자단에 뽑혀 활동하면서 5년째 편집국장이라는 중책까지 함께 맡게 됐다. 변 국장의 일과표는 빡빡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장애인에게 컴퓨터 교육봉사를 하고, 주말에는 마포 복지관에서 무료 컴퓨터 교육을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각 지역의 경로당을 찾아가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자신도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고.

 

"하루 종일 나가서 가르치고 배우고 봉사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저녁때가 다 돼요. 저녁 먹고 컴퓨터를 켜고 새로 올라온 기사를 살펴보고 만지고 데스킹(기사 다듬기)을 하다보면 새벽 1~2시는 금방이에요. 안사람은 뭐 돈도 안 되는 일에 그리 바쁘냐고 하지만… 하하하."

 

현재 <실버넷뉴스> 기자로 활동하는 모두 51명이다. 미국 캔사스에 거주하는 기자회원도 있다. 하루에 올라오는 기사는 많은 편은 아니지만 평균 5~6건씩 꾸준히 올라온다.

 

미국 캔사스에도 '노인 시민기자'... "노인들의 권익 우리가 대변"

 

a <실버넷뉴스>의 변노수 편집국장

<실버넷뉴스>의 변노수 편집국장 ⓒ 김혜원

 

논란이 많은 정치뉴스나 상업적인 내용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는 <실버넷뉴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신문 등에선 볼 수 없는 실버세대와 관련된 정책과 제도에서부터 따뜻한 실버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실버넷뉴스>의 기자와 독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기사는 역시 노인복지관련분야라고.

 

변 국장은 "아직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전국에 거주하고 있는 노인들과 해외거주 노인들까지 참여하고 있으니 노인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힘있는 매체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실버넷뉴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렇다 할 재정지원이 없다는 점이다. 기자회원들에게 소액의 원고료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취재경비도 기자들 스스로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철저히 자원봉사에만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실버넷뉴스> 현재 5기 기자단을 모집하고 있다. 55세 이상이며 어느 정도의 컴퓨터 활용능력과 기자로서의 열정을 가진 실버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변 국장은 "무보수 자원봉사이지만 대한민국 실버를 위해 뭔가 뜻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지원해달라"고 강조한다.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2006.12.19 10:5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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