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기도 드리는 아이들장승현
87년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이었다. 내가 교회를 그만둔 게 거의 20여년이 지난 셈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이 마음이 약해져야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누구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주 심하게 들었던 때였다. 후두쪽 병이 폐쪽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병원에서든 집에서든 모두들 나한테는 쉬쉬하고 있던 때였다.
그 후 대전으로 이사 간 나는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교회에 나가게 됐다. 그때는 교회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집에 처박혀 세계문학전집이나 읽고 외롭게 골방에서 하루 종일 살던 때였다. 일부러 햇빛 밝은 낮이 싫어 창문에 온통 이불을 뒤집어 씌어 어두컴컴하게 만들어 놓고 살아가던 때였다. 포로수용소라고 하는 2층 연립주택 살 때와 게딱지처럼 납작한 지붕 밑에 살 때 생각났던 것은 정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100권짜리였다.
그때 87년 6월항쟁 때문에 교회를 그만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대규모 시위대들이 대전 시내를 휩쓸고 다닐 때 나도 그 군중들 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후배 둘과 또 다른 친구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그때는 멀리서 부러움으로 바라보던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이야기 하다보니까 6월항쟁을 주도했던 친구들이 함께 청년운동을 조직하게 된 동료들이었다. 그때 나도 6월 항쟁을 참여하다 보니까 의식이 깨지기 시작해 나중에는 민중신학, 해방신학 등 서적들을 탐독하고 그러다가 유물론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