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정적인 모습를 보인 혜인의 자작곡 '그러나' 연주 모습김기
최근 <주몽> <대조영> 등 고대사의 남성 영웅들을 중심으로 한 사극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인지를 높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 전쟁영웅 이야기가 아닌 기생 황진이를 다룬 드라마가 오롯이 약진하고 있어 흥미롭다. 우리사회가 이제는 경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성의 배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 현재의 한국문화 기상도는 치우친 정도를 벗어나 상업성 일변도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음반시장이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쇠락한 대중가요시장이지만 그조차도 기초음악의 형편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특별한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기초예술음반이 제작되어 팔리는 숫자는 대단히 미미하다. 특히 국악음반시장은 암울하기만 하다.
요즘 국악인들은 더 이상 '우리 것이니까, 당연히!'를 외치지 않으려 한다. 대중이 다가와주길 바라는 대신에 대중에 맞는 음악으로 무장하고 외롭게 음악시장에 몸을 던진다. 그런 시도와 세월이 더해져 근래 들어서는 희망적인 소식들도 간간히 들리고 있다. 그러나 앞서 TV드라마의 예처럼 우리의 문화환경이 다양성을 안배하는 현상은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의 세 번째 리사이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국악대중화는 현대 들어 국악계의 숙원이자 지상목표로 인식되고 있고,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민족음악의 당위이다. 그렇다고 모두 대중적 음악에 매진하는 것까지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 흐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또 다른 발상으로 음악에 대한 고민을 견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