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거리는 술집 불야성을 이룬 리장 따옌전고성의 한 술집. 365일 넘치는 관광객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에 열중인 소수민족 종업원들로 밤새 흥청거린다.모종혁
세계문화유산 지정후 불어닥친 개발열풍
오늘날 중국 각지와 전 세계에서 한 해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루는 리장. 이곳은 중국에서도 비교적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인 나시족 30여만명의 거주지였다.
@BRI@ 나시족은 본래 간쑤(甘肅)성과 칭하이(靑海)성 일대에 살던 유목민족이었다. 지금도 '남녀 모두 양가죽을 걸치는'(男女皆披羊皮) 유목민족 특유의 복식문화가 남아 있는 나시족은 티베트인, 한족, 창(羌)족 등 강대한 주변 민족에 밀려 안전한 목축지를 찾아 윈난성과 쓰촨(四川)성으로 내려왔다.
11세기에는 윈난성에 진입하여 송말 원초에는 리장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기 정착지인 바이샤(白沙)를 비롯하여 슈에충(雪崇), 수허(束河) 등지에 자리를 잡은 나시족은 분지 형태인 따옌전에 비교적 큰 성시를 이뤘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여행객인 서하객(徐霞客)이 리장을 둘러보고, "민가가 촘촘히 군락을 이루고 멋진 기와집들이 풍요로움을 뽐냈다"고 <서하객여행기>에 남길 정도로 번성했다.
이런 아름답고 풍요로운 리장을 기자가 처음 찾은 것은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 리장은 96년 2월에 발생한 진도 7의 초대형 지진의 후유증을 갓 벗어난 상태였다.
사망자 293명, 중상 3700여명에다 많은 건물을 붕괴시킨 지진의 대참사는 리장의 전통 마을들을 모두 초토화시키지는 못했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수백년 된 목조 건축물들이 지진의 충격을 잘 흡수했기 때문이다. 기둥과 대들보를 사개맞춤식으로 결합한 나시족의 전통 건축양식은 내진 설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진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국정부는 리장의 매력을 발견했다. 놀라움을 가져다 준 건축물 뿐만 아니라 치밀하게 조성된 도시 계획이 그 가치를 주목받은 것이다.
칭무여행사 무궈준 사장은 "세 갈래의 수로가 따옌전 3.8㎢ 전체를 가로지르며 흐른다"며 "어느 집이든 문이나 창문을 열면 이 수로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친화적이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 배낭족과 중국인 단체 여행객이 간간히 찾던 리장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대대적인 관광 개발의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