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D그룹 회장이라도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

목에 힘빼고 돈은 벌었지만... 리더십 강사로 나서다

등록 2006.12.21 15:57수정 2006.12.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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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제대 후 선물 가게인 A팬시용품 체인점을 차려 장사를 시작한 후부터 너무 바쁘고 피곤해 군 개혁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87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와 88년도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날 대목 때는 물건이 엄청나게 팔렸다. 일정 금액의 봉급만 받아오다가 이렇게 많은 돈을 만져보긴 처음이었다.


내 평생의 꿈인 군 개혁을 이룩하려면 국회에 진출해 국방 분과 위원이 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정치를 하려면 자금이 문제라고들 하던데, 이런 식으로 벌면 별 걱정 없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BRI@그러나 뜻하지 않던 일이 발생했다. 우리 가게의 경계 상태가 너무 허술해서 손님들이 들어와 북적거리는 동안 값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나가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아예 우리 가게로 훔치기 원정까지 몰려간다며 자신들의 영업에 지장을 주니 철저히 단속하라는 인접 점장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혹시 훔쳐가지 않나? 잘 감시하라"고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당부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고객들을 바라보는 이런 일은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당초의 목적대로 목을 부드럽게 하는 훈련을 10여 개월 실시했음에 만족하고 작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 벌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마침 아내도 25년의 교사직을 그만두고 퇴직하여 연금 이외 받은 퇴직금이 있어서 이를 몽땅 털고 가게를 해서 번 돈 등을 긁어모아 완도에 내려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사전 준비를 했다.

군사독재시대였던 당시는 장관들이 야당 국회의원이 하는 말은 신청방청 무시 깔아뭉개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군대개혁에 대한 대안을 제시, 이를 제도화 하도록 영향력을 미치려면 야당으로의 진출은 의미가 없었다. 여당 공천을 받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때마침 전쟁기념사업회가 발족해 2군에서 모시고 있었던 오자복 국방부 장관의 추천으로 사업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앞 연재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기념관의 성격을 결정함에 있어 일본군대에 몸담아 식민사관에 세뇌되어 있는 분들과 민족적 자존심을 표현하고자 하는 나와의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커 늘 충돌하니 괴로운 나날이었다.

팬시용품점 → 국회의원 공천 실패 → 전쟁기념사업회 거쳐 강사로 나서다


그러던 참에 아버님께서 여행 도중에 과로로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니 너무나 허전 허무했다.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인데 이렇게 날마다 출근하여 갈등 속에서 시간만 소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조바심이 일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육사 동기생 이종택씨가 위로 차 사무실에 찾아왔다.

나의 괴로워하는 심경을 듣고는 "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특출한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특기를 살려 기업체의 의식개혁 관련 특강을 하는 것이 더 보람 있고 좋을 것 같아!"라고 조언해주었다. '능률협회'라는 곳에 가면 대환영일 거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난 다음날 한국능률협회를 찾아갔다. 본부장이란 분이 희색이 만면 "좋은 선생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전문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조치해주었다.

개별적으로 교육을 받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모든 계층교육 과정 교육 내용을 거의 이수했다. 군대개혁은 제도개혁이 핵심으로서 그 주 내용은 간부 의식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양성과정에서의 훈육, 그리고 간부평가와 진급제도라 할 수 있다. 기업체에서의 의식개혁교육은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접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교육 과목은 현장 근로자들에게 바람직한 직업의식을 심어주는 '근로자 정신 함양과정(Workmanship Training Course)'이었는데 협회에서는 "경영자 및 관리자 등 고급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며 세계적인 의사 결정과 문제해결 과정인 'KT 프로그램'을 맡겨주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D그룹의 전 사장 및 임원에게 용인에 있는 그룹 연수원에서 여러 차례의 교육을 한 적이 있다.

하루는 첫 시간 강의가 끝났는데 교육담당자가 "지금 회장님께서 사장 및 임원들과 면담을 하러 오고 계시니 교육시간을 몇 시간 늦추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이런 정도의 수준인가? 하는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연수원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이 교육의 중요성을 얼마나 크게 인식했으면 이렇게 전 임원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회장이라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수고한다는 격려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사전 양해를 구하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나의 시간 계획이 있지 않겠는가? 사전에 시간 조절을 하든지 해야지, 회장이 아무 때나 찾아와 전체교육 진행을 흐트러뜨려도 상관이 없느냐?"

내가 불쾌감을 표시하며 거칠게 항의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 했다. '저 친구 군대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대기업의 회장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눈치였다.

기업이나 군대나... 경영층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잘못

그 후 다른 경영자들에 대한 리더십 특강에서 나는 가끔 그야말로 감히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로서 내가 경험한 이 이야기를 통해 그런 기업이 융성할 수 있겠느냐 했지만 그렇게까지 빨리 사실로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경영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지금은 일시적으로 특별한 어떤 여건이나 이유 때문에 성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장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결과는 뻔하다.

KT교육은 경영 및 관리의 방법론적 내용이지만 매우 합리적(Rational)이고 체계적(Systematic) 사고를 전제로 한다. 경영주 자신들이 이러한 냉철한 사고로 전환하지 않고는 부하들을 아무리 교육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이 도구적 교육프로그램을 통해서 전혀 본래의 목적이 아닌 의식혁신 교육에 활용하고자 무진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미 선진국이나 이웃 일본에 비해서 이 교육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보급률이 극히 저조한 실정이었다. 경영층의 민주적인 열린 사고의 문화와 조직 풍토가 없는 곳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급간부들이 문제인 것은 군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기업체의 경영자들이나 관리자들도 대부분 격변의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바꾸겠다는 반성의 각오나 실천다짐은 하지 않으면서 아랫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부하직원들에게 들려 줄 그럴 듯한 새로운 말이나 내용이 없을까?에 주로 관심을 두는 편이었다.

새로 나온 외국의 유명하다는 경영 컨설팅 관련 이론이나 기법을 비싼 비용을 지불하여 교육하고 구호를 내걸어 요란하게 강조하는 등 형식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업은 결과로 나타나 확인되기 때문에 결국은 바람직하게 변하지 않을 수 없지만 군대는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나라가 IMF관리 체제에 놓이기 전, 세계 기업인들이 '한국의 기업은 21세기의 칭기즈칸인가?'라고 칭송했다며 일부 신문에서 한국 경영인들의 도전정신이 자랑스럽다고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13세기 한때 세계정복의 꿈을 가지고 유럽을 전율케 했던 칭기즈칸이지만 그 후예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들이 인류를 이끌어 갈만한 정신문화와 그것을 키우고 가꾸어 갈만한 리더십이 있었다면 세계사는 지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한때 '세계경영'이다 하며 요란했던 D재벌그룹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경영층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잘못되어 있으면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군대는 직접 전쟁을 치르지 않는 한 허물어지지 않으니까 더욱 큰 문제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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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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