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넷의 행복한 이야기

[2007년을 빛낼 공연예술기대주 연속 조명 4]가야금 앙상블 <여울>

등록 2006.12.22 19:40수정 2006.12.2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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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발게 웃는 가야금 앙상블 여울 멤버들. 왼쪽부터 안나래, 이수은, 박민정, 기숙희

발게 웃는 가야금 앙상블 여울 멤버들. 왼쪽부터 안나래, 이수은, 박민정, 기숙희 ⓒ 김기

20세기 후반부터 국악이라는 큰 강은 변화를 원하고, 또 그 변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 시내들에 의해 그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있다.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도 결국은 산골짜기를 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물들이 모인 것이 듯이…. 두 해 전 데뷔한 가야금 앙상블 <여울>도 그들 중 하나로서 주목받는 신인들이다.

@BRI@여울은 네 명의 발랄한 여성들로 구성된 아주 깜찍한 그룹이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문수학한 선후배 사이로 오랫동안 함께 한 까닭에 호흡은 넷이 해도 하나인 듯 맞아 떨어진다.


여울이 데뷔 2년을 넘기고 처음 내놓은 음반 ‘행복한 이야기’는 그들의 호흡을 제대로 과시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듣는 사람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여울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제 각각이겠으나, 적어도 그들이 12월 10일 내놓은 음반엔 놀라운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울의 음반에 담긴 연주들에선 도저히 넷이 연주했다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연주호흡을 느낄 수 있다. 네 대의 가야금이 각기 연주되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조화로운 소리를 내 듣는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일단 합주의 기본인 조화를 완벽하게 이룬 여울의 연주는, 대중에게 선사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소곤소곤 이어간다. 여울 음악의 특징은 봄날의 처녀들의 사뿐한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발랄함, 상쾌함 등에 있다.

국악 아닌 음악이라는 보편성은 국악 대중화의 첫걸음

a 가야금 앙상블 여울의 첫 음반 '행복한 이야기' 커버

가야금 앙상블 여울의 첫 음반 '행복한 이야기' 커버 ⓒ C&L MUSCI

음반 리스트만을 본다면 누구도 국악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여울이 연주하는 음악들은 슈베르트, 슈만 등 클래식부터 재즈, 락까지 다양하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 재즈 Fly to the moon 등 여울이 아니라면, 혹은 국악이 아니라면 한 음반에 모이기 어려운 곡들을 한 데 모아놓은 것이 이채롭다.


국악이라면 우선 고개부터 돌리는 사람이라도 여울의 음반을 듣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게 만들 것이라 여겨진다. 이처럼 최근 젊은 국악인들이 국악이라는 엄격한 테두리를 벗어나 음악이라는 보편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국악대중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여울이 이토록 국악이라는 경계를 넘어 보편의 음악가치에 다가서게 된 데는 우선 그들의 스승 황병기 가야금명인의 영향이 크다. 일찍이 가야금 창작곡을 통해 가야금의 대중화와 음악적 지평을 넓힌 황 명인의 애제자들로 구성된 그들이기에 과거를 답습하기보다는 자연 새로운 음악을 향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25현 가야금을 통해 국악이 아닌 음악을 만들게 되기까지는 여울의 힘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이 음반에는 두 명의 마스터가 참여하고 있다. 국악음반 최고의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C&L MUSIC의 오대환 음악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고 얼마 전까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지휘자였던 김성진씨가 음반을 위한 해석, 연주기법 등을 섬세하게 지도했다. 그리고 여울은 가야금 연주자답게 침착하고, 치밀한 연주를 통해 그들의 지도를 음악으로 완성했다.

음반에 요구되는 최우선의 덕목은 우선 음악 자체이다. 다음은 음악을 담는 도구와 방식이 중요하다. 여울의 음반은 국악 음반 사상 최초로 96Khz/24bit Mastering 고음질 레코딩 CD와 2005년 이화여대강당 공연을 수록한 보너스 DVD로 구성, 발매됐다.

발매 초기인지라 아직 일반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문오디오 판매점에서 여울의 음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세운상가에 즐비한 오디오 판매점에서는 이 음반을 20장을 구매해 고객들에게 테스트용으로 들려준다는 것. 오디오의 성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이용할 정도로 음질이 우수한 것은 물론이고 음향의 방향, 거리감이 분명하다.

여울의 '행복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a 데뷔 3년을 맞는 2007년에는 큰 활약을 하겠노라 말하는 가야금 앙상블 여울

데뷔 3년을 맞는 2007년에는 큰 활약을 하겠노라 말하는 가야금 앙상블 여울 ⓒ 김기

국악이 우리 것이기에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론은 21세기 들어 전혀 통하지 않는 공허한 외침으로 전락했다. 글로벌시대의 문화상품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기대에 부응할 때만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는다. 그런 면에서 여울의 ‘행복한 이야기’는 호감을 가지기에 적합한 음반이다. 게다가 한국 전통의 가야금 음률을 감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올해는 21세기 가야금역사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사건들이 있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이 활발한 크로스오버를 통해 대중과의 간격을 대폭 줄였고, 거기에 여울의 합세가 이어졌다. 가야금 앙상블 여울은 2006년 막바지에 음반을 내놓으면서 내년 활발한 활동은 예고하고 있다.

흔히들 21세기를 해금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처럼 가야금 특공대들의 활약으로 해금이 독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점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유쾌하다. 해금도 잘되고, 가야금도 잘되고 또 다른 국악기들도 더 열심히 활약하면 외래에 안방을 내어놓은 우리 문화는 비로소 주인의 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2007년에는 여울의 '행복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행복한 이야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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