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바다에서 닻그물로 새우잡이를 하는 배김준
칠산바다에 기대어 살던 뱃사람들은 갯골을 타고 나가 잡은 고기를 가까운 법성포나 목포 멀리 영산포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큰 중선배를 가지고 많은 선원들을 부리는 선주들이야 상고선에 넘기고, 객주에게 넘기면 되지만 작은 풍선배를 가지고 새우, 조기, 갈치, 장대, 꽃게 등 닥치는 대로 잡는 뱃사람들은 염장 질을 하거나 말려야 했다. 특히 돈이 되었던 것은 새우젓이었다. 물때와 바람에 맞춰 갈무리를 해둔 젓동이와 건어물을 배에 가득 실고 목포와 영산포로 향했다.
칠산바다의 작은 섬에서 만난 팔순 노인의 이야기다. 아버님이 꽤 큰 중선배를 가지고 배를 부렸다. 칠산바다에서 새우를 잡아 젓을 담아 영산포와 법성포 등지에 팔고 올 때면 옷, 쌀 등을 가지고 왔다. 간혹 물건을 가져다 섬사람들에게 팔기도 했다. 장사수완이 좋았던 아버지는 배에 가득 새우젓을 싣고 나가면 달포가 지나 한 달이 되어서 오시는 때도 있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알았지만 영산포에도, 법성포에도, 우리 섬 앞 큰 섬에도 여자가 있었다. 작은 각시가 여럿 있었다. 물론 어머니도 다 아는 일이다.
칠산바다에서 조기를 잡았던 송이도 사람들은 작은 풍선배로 군산, 목포, 여수에서 올라온 큰 중선배보다 많은 조기를 잡았다. 이들이 큰 배를 제쳐두고 많은 조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칠산바다의 물길을 알기 때문이다. 조기라는 놈은 물길을 따라 줄지어 들어온다.
칠산바다에서 태어나 자랐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기에 어느 풀등에 새우가 많고, 어느 모래밭에 꽃게가 많은지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다. 흑산도를 돌아 칠산바다로 돌아오는 조기 길목을 이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주벅 하나로도 늘 만선을 누리던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진정한 칠산바다의 주인들은 큰 배를 가지고 조기를 훑어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기가 사라지면서 외지배들은 더 이상 칠산바다를 찾지 않았다. 칠산바다 사람들의 또 다른 희망은 꽃게였다. 칠산바다를 외지 배들에게 내준 섬사람들이 이제 제대로 주인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바다도 오래가지 않았다. 조기가 파시를 이루던 시절에는 누렇게 알밴 암게 정도는 되어야 거들떠 봤던 녀석들이었다. 수컷은 고추나무 옆에 꽂아 거름으로 사용했다.
아직도 칠산바다 인근 작은 섬 송이도와 안마도에는 꽃게를 잡아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근 낙월도에서는 멍텅구리배를 이용해 젓새우를 잡았다. 지금은 낙월도 앞 갯벌에 괴물처럼 육중하고 못생긴 멍텅구리배를 붙잡아 두던 닻만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다. 꽃게잡이는 새우잡이에 비해서 일하는 사람이 작을 뿐 아니라 그물이나 어구를 준비하는 비용도 싸다.
칠산바다로 통하는 중요한 뱃길이 법성포구였다. 지금은 물이 쓰면 배가 뻘에 얹혀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토사가 쌓여 고기잡이를 나가려면 배가 움직일 수 있는 물때에 배를 포구에서 빼 놓아야 할 형편이다. 칠산바다가 조기의 모태라면 법성포구로 이어지는 갯골은 탯줄이다.
황금조기를 기다리는 칠산도 괭이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