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신년사에서 희망가 부를 수 있을까?

[지역언론 별곡-164] 대통령 신년사에 주목하는 이유

등록 2006.12.23 15:23수정 2006.12.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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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고 깊이 생각합시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합시다. 그리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책임을 함께 지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 스스로 만든 규범을 존중하고, 약속은 협력하여 실천해 나갑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신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들 사이에 믿음이 쌓일 것이고 마침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밝은 미래도 보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BRI@이런 때문에 각급 기관과 단체들의 병술년 새해 화두는 통합, 희망이 단연 키워드였다. 그런데 2006 병술년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불거진 노 대통령 발언 파문이 쉬 봉합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오히려 분열과 갈등국면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1년 앞둔 대선정국은 더욱 혼미해지는 양상이다. 21일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서 쏟아낸 노 대통령의 말들 때문이다. 마치 대국이 다 끝나가는 바둑판에 결정적인 패착을 둔 꼴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한해 복기하는 찰나에 던져진 ‘패착’

지나온 한해를 차근차근 복기하려는 찰나에 불쑥 내 던진 수가 화근이 됐다. 복기를 하려던 언론사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때문에 며칠 후면 공개될 대통령 신년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젠 어떤 희망가를 들려줄지 자못 궁금하다.

10대뉴스를 이미 선정해 발표한 언론사들은 황당해한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순간에 벌어진 파문이기 때문에 판갈이를 못한 것이다. 지역 언론사들도 다 짜놓은 송년특집 판갈이를 하느라 분주하다.


부메랑의 법칙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보수, 진보언론과 지역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대통령의 패착을 송년단상의 화두로 올렸다. 특히 적대적 매체들에겐 더 없이 좋은 기사거리와 자료사진을 제공한 셈이 됐다.

‘당초 예정된 20분을 넘겨 1시간10분간이나 계속된 대통령의 발언에 가시가 돋힌 내막은 뭘까.’ ‘두 주먹을 불끈 쥐는가 하면 연단을 내리치기도 한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예상대로 신문사설에 비친 노대통령의 발언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됐다. 전국지와 지역지 모두 긍정적인 대목을 찾아볼 수 없다. 저리도 같은 공통분모는 여느 세밑 사설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 <중앙>, ‘김정일’, ‘황소’거론하며 야무진 질타

a 노 대통령 발언파문을 연일 핫 이슈로 다루고 있는 조선일보.

노 대통령 발언파문을 연일 핫 이슈로 다루고 있는 조선일보. ⓒ 조선닷컴

가장 흥분한 쪽은 역시 보수신문. <조선일보>의 22일 사설 ‘갈 데까지 가버린 대통령을 바라보며’는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듯하다. 야무지게 쏘아붙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날의 대통령처럼 국민을 이렇게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비하하고 깔본 대통령은 없었다”는 <조선> 사설은 “이날 대통령의 무차별 공격을 유일하게 비켜갈 수 있었던 행운아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뿐이었다”고 표현했다.

사설 마지막 “국민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라는 표현에선 전운이 감돈다.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23일 사설 '노무현이 돌아왔다'에선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거친 막말을 쏟아내자 노사모가 '노무현이 돌아왔다'고 환호하고 있다”고 했다.

“이 나라가 지난 4년간 비틀대며 걸어온 길도 노 대통령의 그 본심대로였다”는 이 사설은“정상 궤도를 벗어난 노 대통령의 정책노선도 문제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치적 본심도 앞으로 1년 남은 대선 국면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풍파를 낳을지 걱정이다“고 했다.

a 노 대통령 발언파문을 사설과 일반기사 모두에서 크게 부각시킨 중앙일보.

노 대통령 발언파문을 사설과 일반기사 모두에서 크게 부각시킨 중앙일보. ⓒ 조인스닷컴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 ‘남은 1년이 걱정스럽다’에서 대통령이 국민의 얼굴에 흙탕물을 튀겨 놓았다고 했다. ‘도자기 가게에 뛰어든 황소’에 비유하기도 했다. “‘나랑 한번 붙어볼래’라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는 대통령. 핵실험. 주사파 세력에게 내려쳐야 할 주먹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90%의 국민에게 내려치는 대통령.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도자기 가게에 뛰어든 황소 같다”고 <중앙>은 격한 어조로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가 4년간 수없는 막말로 국가의 위신을 부숴 놓았는데 앞으로 무엇을 더 부술지 국민은 불안하다” 면서 “70분짜리 연설은 신문에 잘 인쇄돼 있다”고 경고했다.

<경향>, <한겨레>, ‘부박한 언어’, ‘말 전쟁’ 비유 꼬집어

<문화일보>도 22일 사설 ‘대통령의 ‘막말’과 국민의 충격‘에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품격, 평상심,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음을 또 보여줬다”고 힐난했다. 또한 “지지도가 10% 초반 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1년2개월 동안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암담하다”고 사설 말미에서 성토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크게 흥분한 보수신문 사설은 막말을 막말로 되받아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신문의 호된 질타에 진보신문과 지역신문들이 한목소리로 가세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우려의 수준이지만 레임덕현상을 크게 염려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경향신문>은 23일 사설 ‘너무도 부박한 대통령의 언어들’에서 노 대통령이 구사한 언어들은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못 박았다.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산다’,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놈, 흔들어라’ 등의 저열하고도 부박한 언어들이 전달한 것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파편들뿐”이라는 것.

그것도 모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연단을 내려치는 등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깝고도 암울하다고 했다. <경향>은 사설서 “제발 대통령으로서 격을 갖추고 중심을 잡아주기 바란다”고 전례 없이 주문했다.

<한겨레>도 ‘절제되지 않은 노 대통령의 언행, 민망스럽다’란 사설에서 대통령 발언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대통령도 자연인으로서 쌓인 울분과 감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를 절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 사설은 “대통령이 필부들과 같아서야 되겠는가”라며 나무랬다.

지역신문들, “국민들 아슬아슬... 불안하다”

a 국제신문 23일 사설

국제신문 23일 사설 ⓒ 국제신문

그러면서 이 사설은 “한나라당 등 야당은 ‘개구즉화(입만 열면 화를 부른다)’니 ‘막말의 극치’니 하면서 노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며 “또 벌어지고 있는 ‘말의 전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걱정했다.

지역 신문들도 불안과 우려감을 일제히 사설서 나타냈다. 부산경남지역이 특히 주문하는 바가 크다. <국제신문>은 23일 사설 ‘대통령 격앙발언 국민은 불안하다’에서 “달아오른 얼굴로 격정을 토해내는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지켜보듯 가슴을 졸였다”고 솔직히 표현했다.

또한 이 사설은 “정치권이나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왕따'당하고 있다는 좌절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며 “그러나 그럴수록 국가 최고지도자의 언행은 신중하고 절제돼야 한다. 대통령이 분노와 격정에 휘말려 이런 식으로 불을 지르면 국민만 불안해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일보>는 ‘대통령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건지’라는 제목의 사설서 “노 대통령은 이제 임기 말로 접어들고 있다”며 “사정이 이러하다면 노 대통령은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함께 남은 임기 동안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고 꼬집었다.

노 대통령이 여전히 '남의 탓'만 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고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공통된 지적이다. <매일신문>도 사설 ‘'날 감정'으로 국민을 원망하는 대통령’에서 “막다른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격해져 있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도 1년 이상 남아 있다”고 나무랬다. 한마디로 너무 심했다는 투다.

대통령신년사에 주목

a 광주일보 23일 사설

광주일보 23일 사설 ⓒ 광주일보

<광주일보>도 23일 사설 ‘노대통령의 ‘작심 발언’ 앞날이 걱정이다‘에서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우려했다. 특히 “고 건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총리 기용을 ‘인사 실패’로 규정한 노 대통령을 정면 비난하고 나섰고 정치권도 소란스럽다”고 했다.

<광주>는 이날 사설서 “대통령이 특유의 오기와 독선으로 ‘남의 탓’만을 늘어놓아서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국민들은 먹고 살기에도 힘에 부친다. 임기 말에 접어든 대통령이 국민통합에 힘쓰기보다 국론분열에 앞장서서는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대전일보>는 ‘대통령의 좌충우돌 앞날이 걱정이다’에서 가히 충격적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임기 말 국정의 마무리에 충실하고 정치권에 대해서는 조용히 지켜보는 게 국가를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이 사설은 “대통령이 매우 소외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좌충우돌하는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처럼 노대통령 발언파문이 전 지역에 고루 확산되는 양태다. 올 한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불거진 파문이라는 점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희망을 주제로 신년호를 제작하는 신문사들마다 대통령신년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며칠 후면 나올 신년사에는 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내년에도 올해처럼 희망과 통합을 노래할 수 있을까. 임기를 1년여 앞둔 지금은 갖가지 회한이 들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신년 화두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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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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