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산타

날마다 산타할아버지가 오던 시절

등록 2006.12.24 09:57수정 2006.12.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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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시절. 크리스마시 전날 밤이 깊어지자 나는 발뒤꿈치 구멍 난 양말을 창문가 못에다 걸었답니다. 공책 한 장을 찢어서 <양말>이라고 크게 써서 양말 위에다 겹쳐 놓습니다. 행여 산타할아버지가 양말을 못 알아볼까 걱정에서입니다.


@BRI@새벽녘 문득 잠에서 깨 양말을 보면 찬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아직 안 오셨구나'하며 다시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어도 그냥 텅 빈 양말 그대로 그대로였습니다.

학교에 가면 큰 굴뚝이 있는 집에 사는 부잣집 아이들은 스케이트와 장난감 칼이며 만화책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소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우리 집 굴뚝은 내 몸이 들어가기도 어려웠으니까요.

"정말 굴뚝이 큰집에서 살고 싶어."

산타 할아버지는 그 뒤로도 작은 굴뚝 집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굴뚝큰 집으로 이사를 가려나."

그후 산타가 선물을 줄 명단에는 어린 어린아이들의 이름만이 적혀 있다고 했으며, 이제 훌쩍 자란 아이들의 이름은 다 지워졌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해 초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나는 집 동네의 큰 교회에 혼자 갔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오지 않으니 찾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있고, 신문봉지에 든 사탕을 준다고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교회는 크고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탕 한 봉지의 유혹은 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검정 신발을 벗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구멍 난 양말 뒤꿈치에 마룻바닥은 유난히 차가웠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보이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아주 무서웠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없는지. 다들 어디 갔는지. 어디선가 찬송가가 들리는 듯, 누군가 '거기 서라!'고 외치는 것 같아 도망치듯 빠져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다시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잊지 않으려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부터 동네 이층집 작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신작로를 지나 퇴계로 4가 동국대학 입구 앞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길을 4살 여동생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교회는 낡은 목조 건물 2층입니다. 바로 앞에도 큰 교회가 있었지만 큰 교회는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못 갔습니다. 작은 교회가 작은아이에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한쪽 구석에 사탕봉지가 있었습니다. 사탕봉지들이 쌓인 모습을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사탕을 생각하면서.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리네."

예배를 마치고 동생과 집까지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 알사탕을 입에 넣었습니다. 별빛은 초롱하고 목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은 차고도 달았습니다. 오시지 않는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기보다 교회로 찾아가 사탕 한 봉지의 행복을 얻었습니다.

세월은 흘렀습니다. 청년이 되고 어른 되어 내게는 교회에 다니던 내 나이 또래 아들딸이 생겼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차 트렁크에 감추고 한 밤중 아이들이 다 잠들었을 때 몰래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놓았습니다.

그 양말은 너무 작아서 선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양말에 나는 사탕 몇 알씩을 넣습니다. 어린 시절에 먹던 그 사탕을 생각하는 아빠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작은 소망을 담고요. 다음날 아침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아들딸들이 소리소리 지릅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왔었네. 와, 신난다. 가지고 싶은 것 다 두고 갔네.”

a 산타가 오지 않는다고 슬퍼했으나 정작 산타는 늘 왔었다.

산타가 오지 않는다고 슬퍼했으나 정작 산타는 늘 왔었다. ⓒ 황종원

아이들의 집 굴뚝은 내가 자랄 때 보다 큰 굴뚝이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나 내게 산타할아버지는 오지 않습니다. 다시 크리스마스입니다. 사탕 한 알의 달콤했던 추억과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크리스마스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산타할아버지가 되기에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부모님의 내리 사랑은 크리스마스에 받던 알사탕보다 소중한 선물인 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크리스마스였고 부모님 사랑이 가득하였던 하루하루가 산타할아버지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아득한 그 시절 속 추억이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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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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