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경제시스템에서 확인되는 그래프. 이영훈 교수는 이 그래프를 근거로 자신이 새로운 그래프를 작성했다.한국은행
흔히 학술 논문에서 다른 책의 그래프를 인용할 때에는 그 출처를 밝힌다. 그리고 그 다른 책의 그래프를 자신이 개조했을 때에는 그런 사실도 함께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글에서는 그 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연구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그래프가 독자들에게 착오를 줄 수 있다는 점은 한국은행 그래프와 비교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위 그래프에서는, 농림수산물과 공산품 두 분야의 가격지수가 모두 다 가파른 상승을 보이고 있음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영훈 교수의 말대로 농림수산물이 공산품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행 그래프에서 육안으로 그 점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그래프에서는 '공업이 농업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았다'라는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표를 이영훈 교수의 방식대로 바꾸어 놓으면, 공업이 농업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한국은행 홈페이지의 그래프에 근거한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이 임의로 표를 바꾸었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그래프가 이영훈 교수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그래프는 사실이고 공산품 가격지수보다 농산품 가격지수가 더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지난 40여 년간 농산품 가격지수가 공산품 가격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을 근거로 '농업이 공업보다 더 많이 특혜를 받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분명히 지난 40여 년간 공산품 가격지수는 농산품 가격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강하였다. 이는 공산품이 그만큼 가격인하에 성공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그만큼 공업분야의 생산성이 향상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정부의 지원이 공업 생산성 향상에 집중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가격의 상대적 인하'라는 경제적 사실로부터 추론되는 직접적 사실은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이다. 그런데 경제학자인 이영훈 교수는 '가격의 상대적 인하'라는 경제적 사실로부터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이라는 경제적 명제를 추론한 게 아니라, '공업분야에 대한 차별'이라는 정치적 명제를 추론하였다. 그러므로 '가격의 상대적 인하'로부터 엉뚱한 명제를 도출한 것이다. 가격 상대적 인하가 생산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공업분야에 대한 차별'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려면 추가적인 증거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가격의 상대적 인하에 성공하지 못한 농업 분야는 그만큼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에 실패한 것이고, 농업 분야가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에 실패한 것은 정부의 지원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근거는 오히려 공업이 특혜를 받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영훈 교수의 농촌 특혜론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한국은행 통계자료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자신이 임의로 개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밝히지 않았다(연구 윤리의 문제). 둘째, 통계기법을 통해, 공업이 농업보다 차별을 받은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그래프 처리의 문제). 셋째, 가격의 상대적 인하라는 사실은 생산성의 상대적 향상을 나타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공업 차별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하였다(통계 분석의 문제).
이러한 점들을 볼 때에, 뉴라이트의 일부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논리가 상당 부분 학문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이 과거 군부정권 시절의 경제정책을 합리화하고자 한다면, 연구 윤리-통계 처리-통계 해석상의 문제점부터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도농 차별에 관한 문제는 굳이 학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더라도,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 충분히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와 실증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바로 그 통계와 실증 때문에 학문적 착오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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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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