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어쩌나...일단은 견뎌봐야지"

지난해 화재피해 입은 대구 서문시장 2지구 상인들의 한해살이

등록 2006.12.26 10:28수정 2006.12.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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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서문시장 2지구 임시상가(구롯데마트)
한산한 서문시장 2지구 임시상가(구롯데마트)이화섭
25일, 크리스마스지만 대구 서문시장 2지구 임시상가인 내당동 구롯데마트 앞은 조용했다.

지난 2005년 12월 29일 갑작스런 화재로 생계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2지구 피해 상인들이 임시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조성된 구롯데마트에서 일명 '박커피 아줌마'로 통했던 박희선 씨를 만났다.

"아이구, 얼굴은 찍지 말어"라면서 사진기를 보고 한 말씀 하시더니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시면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미셨다.

박씨에게 "장사 잘 되냐"고 질문하자 어느 정도 예상한 답이 돌아왔다.

"2지구 안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못하지. 못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그러고. 그래도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은 해."

현재 2지구 상인들은 크게는 내당동 구롯데마트와 베네시움 건물 등에 일단 장사를 할 상가를 마련, 롯데마트에는 원단·커튼 가게 위주로, 베네시움에는 원단·포목뿐만 아니라 지하층의 서문프라자와 내의 및 메리야스 도·소매 상가들이 입점해 있다.

그 곳들 외에도 2지구 상인들은 각 지구별로 비어있는 상가에 입점해 있거나 서문시장 주변, 멀리는 유통단지의 섬유제품관 등지에까지 흩어져 생계터전을 마련하고 장사를 재개했다.


임시상가 안 원단 상가들.
임시상가 안 원단 상가들.이화섭
둘러보는 사람도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 상인들은 걱정한다.
둘러보는 사람도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 상인들은 걱정한다.이화섭
"일단 여기로 온 게 5월 중순 쯤이니까, 너무 늦게 왔죠. 예전에는 내복 사러 오신 분들이 커튼가게도 슬쩍 보다가 커튼주문도 하고 상가가 크다보니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 그런대로 장사가 됐는데 지금은 그런 건 기대를 못하죠."

롯데마트에 입점한 'ㅊ커텐'의 주인은 이 곳으로 옮기고 나서의 변화를 그렇게 설명했다.


"어떻게 자금이 좀 남아있는 사람은 다행이었어요. 저리융자도 부담은 부담이니까요."

원단을 취급하는 'ㅈ상회'의 주인은 장사를 할 수 없었던 5개월을 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학자금도 겨우 댔다. 다행히 대학 쪽에서 등록금 감면이 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웠다"고 말하는 상인도 있었다.

'L커텐'의 젊은 부부사장은 "5개월 동안 생활비까지 빚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어떻게 적응은 되더군요. 불 한번 났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시작을 하고 나니 장사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지더라고 말한다.

그렇게 박커피 아줌마를 따라서 상인 몇 명을 만난 뒤 다시 커피를 만드는 곳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2지구 있을 때만큼 커피도 안나간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온 돈은 아마 당시 모인 성금정도밖에 없을 거야. 국가는 고사하고 자치단체의 직접지원도 없었고. 롯데마트 입점도 시에서 보증금을 롯데 측에 100억원을 주고 성사된 걸로 아는데, 그 이행이 늦어서 5월이 다 돼서야 들어왔다니까."

박 씨의 말에는 사고 이후 신경은커녕 빠른 일처리도 해내지 못한 대구시와 중구청에 대한 원망이 들어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죽을 지경"

베네시움 2층 상가.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뜸하다.
베네시움 2층 상가.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뜸하다.이화섭
베네시움 1층은 군데군데 비어있는 곳도 많다.
베네시움 1층은 군데군데 비어있는 곳도 많다.이화섭
롯데마트를 나와 베네시움으로 갔다. 롯데마트에 이어 두 번째로 피해상인들이 많이 모여 장사를 시작하는 곳. 그 곳은 군데군데 빈 상점자리들이 꽤 많이 보였다.

2층에서 내의 및 메리야스 도·소매를 하시는 상인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3월에 겨우 자리를 마련한 상인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여기 입점해서도 전혀 장사가 안돼서 결국 장사를 접어버린 분도 계시지. 손님은 갈수록 줄지, 요새는 단골 없으면 마수걸이도 못할 정도야"라고 말했다. 한때 손님 오시면 시켜서 마시던 커피조차도 거의 끊다시피 했다. 커피값을 낼 돈 조차 없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차비, 관리비 빼고 나면 겨우 수지 맞추는 정도야. 올해는 한 300만원 적자 봤지. 미수금도 해결 못했지, 물건 새로 들여올 때도 외상이 안돼서 현찰로 다 처리했지, 융자 3천 받으면 뭐하나. 불나기 전에 외상 잔금처리나 겨우 했다니까."

화재 이후 단골은 더더욱 줄어버렸다. "멀어서 못 오겠다거나 어디에 갔는지 몰라서 못 오시는 단골 분들도 허다해. 많이 놓쳤지"라고 말했다.

다른 상인들의 답도 마찬가지. "아이구, 어떻게 살 방향을 모르겠네"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내년 3월에 계약기간이 끝나는데, 장사가 너무 안돼서 큰일이야. 옮길 수 있다해도 겨우 만들어 놓은 단골 놓칠 수도 있고. 어쩔 때는 접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후속조처가 너무 지지부진한 것 아니냐는 성토도 이어졌다. 한 60대 상인은 "내가 죽기 전에 재건축 되는 거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다들 "옛날자리에서 다시 장사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라고 소원했다. "아예 옛날자리에 천막치고 장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까지 말하는 상인도 있었다.

롯데마트에서건, 베네시움에서건,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건 2지구 피해 상인들은 한 해를 힘겹게 견뎌냈다. 이러저러하게 한 해는 견뎌냈지만, 화재가 그들에게 남기고 간 상처는 아직도 극복되지 않고 있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짐 하나를 더 얹고 가게 한켠에 앉아있는 그들의 어깨가 펴질 날은 언제일까.

2지구 터, 다시 부활할 것인가
재건축 추진위 구성...2~3년내 재건축 완료 목표

▲ 터만 남은 2지구 상가. 뒤로 보이는 기둥은 아케이드 공사를 위해 설치한 것들이다.
ⓒ이화섭

현재 2지구 상가 화재 터는 철거가 완료돼서 터는 다 잡혀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 재건축에 대한 명확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중구청은 '서문시장2지구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설립을 승인한 상태다. 그 전까지 각 층별로 재건축에 관련해 임원을 구성했고, 7월에 각 상인들로부터 추진위 구성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

지금은 운영규정을 정하고, 각 상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진위원장 정청호씨는 "각 층간의 임원 및 상인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재건축에 관한 절차를 밟느라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지만, 2년 안에 2지구 상가를 완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 위원장은 "운영규정에 대한 동의를 다 받고 나면 조합인가를 받고 총회를 열어 사업자를 선정하는 등의 절차가 남았다"고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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