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에서 러시아통으로, 윤새라 기자.오마이뉴스 조경국
2005년 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을 때, 세계 곳곳에서 함께 분주하게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오마이뉴스>의 해외통신원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 거주하던 해외통신원들은 각국의 줄기세포 권위자 취재에 열을 올렸다. 국내보도가 너무 비이성적으로 흘러간다는 게 이들을 움직인 이유였다. 미국 인디애나에서 유학 중이던 윤새라(35) 기자도 황우석 폭풍에 뛰어들었다.
"'황우석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란자 박사에게 접촉했는데 바로 연결이 안 돼서 우선은 뉴욕 본사를 통해 인터뷰 요청을 넣었다. 요청을 전해들은 란자 박사가 곧바로 나에게 전화했는데 정작 내가 전화를 못 받았다. 그랬더니 란자 박사가 몇 번이고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까지 접촉했던 취재원 중 가장 '화끈'했다."
덕분에 윤새라 기자는 황우석 박사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당시 국내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던 란자 박사를 독점 인터뷰할 수 있었다. 지난 2002년 잡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의 표지 기사로 실린 란자 박사를 봤을 때는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며, 꽤 유쾌한 경험이었음을 비친다.
윤 기자는 이어 <사이언스> 부편집장 인터뷰를 비롯해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취재를 도맡았다. 어느덧 황풍은 잠잠해졌지만 '윤풍'(?)은 2006년까지 이어졌다. 윤새라 기자는 영화·대학·스포츠 등 분야를 막론하고 미국의 최대이슈의 이면을 들춰내는 솜씨를 발휘했다. '미국인들은 왜 <나니아연대기>에 열광하나'나 '문선명 목사는 미국 최대 생선장수?' '올림픽 금메달이 뭐길래?'등이 그렇게 탄생한 기사들이다. 여타의 외신보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기사 쓰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던 해외통신원 생활은 지난 8월로 막을 내렸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것. "이제 귀국했으니 전공인 러시아와 구소련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다"는 게 윤새라 기자의 바람이다. 그의 제2의 활약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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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주민 공식지정 '대추리 리민 기자'입니다
[2007 2월22일상⑪] 평택 대추리로 이주한 문만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