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해 드라마를 보면 시청률과 좋은 드라마는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욕먹으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현상이지만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드라마일수록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비판의 강도도 높았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SBS <하늘이시여>와 KBS <소문난 칠공주>, MBC <주몽>이다. 이외에도 이 세 드라마는 연장을 하며 내용을 질질 끌었고, 출연진들의 탁월한 연기력과는 별개의 질적으로 떨어지는 내용 전개로 비판받은 공통점이 있다.
@BRI@물론 좋은 시청률과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고, 호평을 받은 작품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이 시청률 1위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청률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뜨거운 지지를 받아 열기만큼은 시청률 1위 드라마와 다름없는 그런 드라마도 많았다.
그래서 시청률과 상관없이 새로운 시도의 실험성과 지지도, 호평을 받은 작품들 위주로 선정해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실험성이 돋보였던 작품 <궁>을 이야기하겠다.
스핀오프 성격을 띤 <궁S>가 제작되면서 저작권 시비로 다시금 <궁>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궁>이 제작하기 전에도 <궁S> 제작 모습 못지않게 내우외환에 시달렸던 작품이다.
우선 <궁>이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드라마화를 시도한다는 소식으로 인해 네티즌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 <궁>은 상당한 인기를 얻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궁>의 주인공 신이, 율이, 채경, 효린 역을 두고 배우들의 섭외부터 캐스팅 완료 이후까지도 비난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발생했다.
이처럼 여러 우려 속에서 드라마는 제작되었고 방영되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신인연기자들의 연기에도 상당한 호감을 드러냈고, 내용과 영상미에도 많은 호응을 보내며 시청률 20%를 가뿐히 넘으며 인기 작품 대열에 올랐다.
가상의 대한민국입헌군주제 실험성 돋보여
<궁>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새로운 시도를 한 실험성에 있다. 만약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면?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한 이 작품은 그야말로 2006년 입헌군주제라는 설정 아래 황태자와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다.
기존 사극드라마라고 하기엔 2% 부족한 듯한 이 드라마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황태자 신이와 평민출신 채경의 로맨스와 주변 황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 정통 사극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사실 첫 방송에는 소재 자체가 워낙 생경한 나머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욱이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어 드라마 전개 또한 만화적 구성이 곳곳에 배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견이 양분되었지만 차츰 내용이 전개되면서 '신선하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색다른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여기에 황인뢰 감독은 신과 채경이의 로맨스와 함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특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런 이유들로 채경이 신분 상승 이후 많은 특권을 누리기 전에 배워야 할 의무가 있었고, 황실 사람들의 삶도 상당부분을 할애하며 그들이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만큼의 어려운 의무도 이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극 후반으로 흐를수록 신과 채경의 로맨스를 좀 더 시청자들이 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소재고갈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트랜디 드라마가 늘 보던 것들을 재탕해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궁>은 트랜디 드라마의 탈출구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는 점이 <궁>의 가치가 큰 이유이다.
중견 연기자와 신인연기자의 조화
당초 드라마에 주인공 신이 역을 맡은 주지훈, 채경 역에 윤은혜, 율이 역에는 김정훈, 효린 역에는 송지효가 캐스팅돼 일대 비난을 온몸으로 받았다. 하지만 첫 회에서 어느 정도에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더니, 급기야 내용이 흐를수록 네 명의 연기자의 연기력도 일취월장해 비난을 호평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극 중에서 첫 회에는 뻣뻣함으로 일관하던 모델 출신 주지훈은 빠른 적응력으로 극 후반부에서는 극 중 인물 신과 주지훈의 거리를 상당히 좁혔으며, 능청스럽기까지 한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내며 인기스타로 발돋움했다.
이와 함께 채경 역을 맡아 비판의 대상 1호였던 윤은혜도 특유의 재기 발랄한 채경의 모습을 어색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특유의 매력으로 톡톡히 제 몫을 해냈으며, 연기자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발군의 연기력 향상보다도 극의 흐름을 단단히 잡고 있는 중견 연기자들의 연기 내공이 더욱 빛났다. 김혜자, 강남길, 임예진, 심혜진, 윤유선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집합해 신인연기자들의 연기 견인차 구실을 해냈다.
그중에서도 황실 트로이카 황태후마마 역을 맡은 김혜자, 중전을 맡은 윤유선, 태후마마 역의 심혜진의 연기가 돋보였다. 극 중에서 인자하면서도 약간의 푼수끼와 명랑함을 지닌 황태후마마의 캐릭터를 김혜자는 베테랑 연기자답게 훌륭히 소화했고, 외유내강의 중전을 연기한 윤유선은 그녀의 연기 인생 중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와 함께 '윤유선의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이끌어 냈다.
또 악역인 태후마마를 연기한 심혜진도 악역 연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으며, 채경의 부모로 등장한 강남길과 임예진도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처럼 신구연기자의 조화가 <궁>의 인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 빼어난 영상미와 고급스러운 세트, 한복의 우아함과 전통의 멋을 섬세하게 살려낸 점도 드라마 인기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매력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시너지로 발산되어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인기를 얻었다. 당시만 해도 신과 채경이의 러브모드가 형성되어 명동의 키스 신은 아직도 회자가 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궁>은 2006년 한해를 빛낸 드라마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궁S>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신과 채경이의 로맨스가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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