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밥맛 이상한데... 혹시 수입쌀?"

[칼로스 주부체험단 그 후] '밥맛' 없는 수입쌀, 동네 곰탕집까지 야금야금

등록 2006.12.31 11:54수정 2007.01.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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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쌀'의 대명사였던 미국산 칼로스를 비롯해 우리 품종과 유사한 중국산 쌀까지. 올해부터 시판용 밥쌀이 처음 수입돼 소비자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밥맛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에 초기 찬밥 신세였지만 저가공세 끝에 음식점 등 외식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5월 주부체험단을 구성해 생생한 칼로스쌀 체험기를 올렸던 김정혜 시민기자가 올 한해 수입쌀이 우리 식탁에 몰고온 파장을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a 지난 4월 미국쌀이 보관중인 서울 노량진 농수산물유통공사 창고에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미국산 쌀 수입과 시판에 항의하는 모습.

지난 4월 미국쌀이 보관중인 서울 노량진 농수산물유통공사 창고에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미국산 쌀 수입과 시판에 항의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엄마. 밥 더 주세요!"


김치와 된장뿐인 저녁 밥상. 그래도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딸아이가 빈 밥그릇을 내민다. 먹성 하나는 타고난 듯하니 그 또한 복이 아닐 수 없다. 또래 엄마들은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라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아이의 왕성한 먹성이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아이의 식습관 중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처음 두어 숟가락은 그저 맨밥만 먹는다. 그것도 오래오래 꼭꼭 씹어먹는다. 마치 무슨 희귀한 음식을 시식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의 그 습관은 남편 때문이다.

남편은 '쌀밥 예찬론자'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윤기 자르르 흐르는 금방 지은 밥이라고 침 튀기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해서 밥상에 앉으면 언제나 첫 두어 숟가락은 맨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그 달디달고 고소한 밥맛을 음미하곤 한다. 그런 아빠이니 아이도 무관하지는 않을 터. 남편과 아이는 늘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이 세상에서 밥이 제일 맛있어!"

수입 쌀밥, 우리 입맛에도 맞을까?


@BRI@세상에서 밥이 제일 맛있다는 남편과 아이가 그 밥 때문에 일주일 아주 호되게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바로 미국산 칼로스쌀 때문이었다.

칼로스쌀 수입으로 국내 쌀 시장이 한창 떠들썩하던 지난 5월 난 10명의 '칼로스 주부체험단'을 구성했다. 목적은 단 한 가지. 직접 먹어보고 평가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체험담을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름으로는 아줌마 시민기자로서 보다 생생한 체험을 전하고픈, 꽤나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준비단계에서부터 몹시 흥분되기도 했다.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어 인터넷경매 사이트에서 칼로스쌀 20kg 한 포대를 주문했다. 도착하자마자 이웃 주부 열 명에게 세 끼 먹을 양만큼 봉지에 담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느낀 밥맛을 묻기 위해 사나흘에 걸쳐 집집마다 전화를 해댔다.

결국 칼로스쌀은 우리 쌀보단 밥맛이 덜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세 주부는 밥맛이 좀 떨어지긴 해도 싸다면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결론을 내려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하여튼 온갖 설로만 떠돌았던 칼로스 밥맛의 실체를 생생하게 전달한 덕에 독자들의 반응 역시 지금까지 쓴 어느 기사보다 폭발적이었다.

칼로스 밥맛에 질린 '밥사랑' 가족

a 지난 5월 10가족에게 나눠준 칼로스쌀 보따리.

지난 5월 10가족에게 나눠준 칼로스쌀 보따리. ⓒ 김정혜

주부체험단을 구성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 것까진 좋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바로 남은 칼로스쌀 처리였다. 열 명의 주부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20kg 중 절반은 남은 것이다. 결국은 남은 쌀은 고스란히 우리 식구 몫이었다.

하루 이틀은 그런대로 아무 소리 없이 밥을 먹어주던 남편과 아이가 일주일쯤 지나자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해버렸다. 도저히 못 먹겠다는 것이다. 늘 먹던 그 고슬고슬하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맛있는 쌀밥이 눈에 아른거려 도대체 그 푸석거리는 밥그릇에 숟가락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 궁여지책으로 집에 있던 우리 쌀과 칼로스쌀을 반반씩 섞어 밥을 해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질려버린 칼로스 밥맛이었다. 비록 우리 쌀과 섞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밥이라던 남편과 아이는 영 밥맛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혹시 이거 수입쌀 아니에요?"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동네 큰길가에 곰탕집이 새로 생겨 모처럼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게 되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이라 그런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빨간 국물이 침샘을 자극하는 먹음직스런 깍두기와 구수한 김이 피어오르는 곰탕, 금방 지어 뜨끈뜨끈한 공기밥이 상에 차려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밥그릇 뚜껑을 여는 순간, 묘한 냄새에 내 예민한 코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버지. 밥맛 좀 보세요."
"왜? 밥이 어때서?"

"글쎄 한번 드셔보세요."
"음…, 밥이 와 이리 매가리가 없노?"

칼로스쌀로 지은 밥을 친정아버지도 사나흘 드셨다. 그 때 아버지께서 맨 처음 하신 말씀이 바로 '밥이 와 이리 매가리가 없노?'였다. 밥이 찰기가 없고 푸석거린다는 아버지식 표현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을 내는 우리 쌀과 달리 칼로스쌀로 지은 밥은 쫀득거리는 맛이 없었다.

삼시 세 끼 밥이 보약이라며 예순여섯 해를 살아오신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주부체험단의 칼로스 쌀에 대한 공통적인 결론도 우리 쌀에 비해 바로 그 찰기가 월등히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밥집 주인 아저씨 마음은 이해되지만

a 대형마트 등이 수입쌀 유통을 꺼리면서 소매상이나 인터넷에서나 구할 수 있었다.

대형마트 등이 수입쌀 유통을 꺼리면서 소매상이나 인터넷에서나 구할 수 있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조용히 주인아저씨를 불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밥맛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상한데요?"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밥이 많이 푸석거리는 것 같은데…. 혹시 이거 수입쌀 아닌가요?"
"수입쌀요?"
"실은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입쌀로 밥을 해먹어봐서 그 밥맛을 좀 알거든요."
"네. 그러세요? 밥맛이 차이가 많이 나요?"
"좀 그런 것 같은데요."
"실은 많이는 아니고 조금 섞었어요. 우선 손님들의 반응부터 좀 보려고요. 아직까지는 밥맛 가지고 타박하는 손님들은 없었는데 아주머니 입맛이 꽤 예민하신 것 같네요."
"글쎄요. 곰탕도 이렇게 맛있는데 밥맛까지 좋으면 일석이조 아닐까 싶네요."
"네. 그렇긴 한데…. 요즘 무슨 장사든 워낙 어려워서요. 하긴 어려울수록 맛있는 음식으로 승부를 걸어야겠지요.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장 수입쌀을 섞지 말아야겠네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는 주인아저씨의 꾸부정한 등이 씁쓸해 보였다.

그 아저씨인들 왜 모르실까. 우리 쌀로 지은 밥이 맛있다는 걸, 그럼에도 수입쌀을 섞어야만 하는 식당 아저씨의 현실적인 고달픔도 이해되면서도 문득 불안했다. 결국 밥맛 없는 수입쌀이라 해도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서 우리 쌀시장을 야금야금 파고들지도 모른다는….

2006년 수입쌀 판매 현황 및 2007년 수입 계획

구분

2005년도분(2006수입)

비율

평균낙찰가
(1등급 20kg 기준)

2006년도분(2007 수입)

비율

미국산(중립종)

5504t

25.5%

22,760원

10414t

30.2%

중국산(단립종)

12767t

59.2%

25,480원

23015t

66.8%

태국산(장립종)

3293t

15.3%

11,100원

1000t

2.9%

합계

21564t

34429

(자료: 농수산물유통공사)

ⓒ 오마이뉴스 김시연
가격 앞세워 저가쌀시장 파고들어

결국 그 당시 불안은 현실로 나타났다. 시판 초기 찬밥 취급을 받던 수입쌀이 소리 소문 없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지난 3월부터 들여온 뒤 유찰을 거듭했던 의무시판용 수입쌀 2만1564톤이 지난 7월경 모두 공매됐다. 중국산 1만2767톤이 가장 먼저 동났고 이어 미국산(5504톤), 태국산(3293톤)으로 이어졌다.

현행규정에 따르면 20kg이나 10kg 단위 포장으로 들여온 수입쌀을 3kg이나 5kg 등으로 재포장할 수도 있고 혼합표시만 정확히 하면 국산 쌀과 섞어파는 것도 합법이라고 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유통업자들이 혼합비율도 표시하지 않고 순수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법유통이 이뤄지다 보니 수입산이 국산으로 둔갑하거나 혼합판매가 기승을 부려 국내 쌀 시장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7월 충남 금산의 한 양곡상은 중국산 쌀 20kg들이 32포대를 국산 쌀 포대에 재포장해 국산처럼 팔다가 형사입건되었는가 하면 경북의 한 정미소는 중국 쌀 25t과 국산 쌀 40t을 섞은 뒤 국산처럼 표시해 시내 슈퍼마켓 등에 팔다 걸렸다.

비단 이들뿐이겠는가. 심심찮게 뉴스거리에 오르고 있는 수입쌀의 변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오늘 당장 밖에서 점심을 해결한 내 남편도 수입쌀로 지은 밥을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며, 질 좋은 국산 쌀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우리 집 쌀독의 쌀이 언제 수입쌀로 둔갑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믿고 살 수밖에 없는 가정주부 처지에선 밥상머리에 앉은 내 남편과 아이가 오늘처럼 맨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이 세상에서 밥이 제일 맛있다'고 늘 이구동성으로 외쳐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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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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